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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조선판 브리태니커, 임원경제지 / KBS 20090801 방송 

KBS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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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지식, 임원경제지 어떤 지식을 담았나
임원경제지는 당시의 지식을 농업, 기계, 과수, 어류, 식물, 천문, 요리, 건축, 의학, 수학, 천문, 음악, 그림, 관혼상제 등 16개의 분류로 정리했다.
◼︎ 집은 어떻게 지을 것인가?
서유구는 한옥을 발전시키고 진화시켜야한다는 입장에서 글을 썼다.
그는 "... 바람이 스며들고 비가 새는 걱정과 참새가 구멍을 뚫고 쥐가 파고드는 우려며, 뱀이 서리고 고양이가 뒤척이는 걱정을 피할 길이 없다"고 한옥 지붕구조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오늘날 건축가들도 임원경제지에서 제기된 여러 문제의식을 받아들여 현대의 상황에 맞게 개선, 진화시키고 있다.
◼︎ 삼각함수를 이해하다
임원경제지에는 오늘날 사용되는 수학원리들을 소개하고 있다.
[設如正方體積一百二十五尺, 開立方, 問每一邊線長, 幾何]
이 문장은 [ⅹ³=125]를 표현한 것으로 x의 세제곱이 125일 때, X는 얼마인가를 계산하는 법을 다룬 임원경제지의 수학부분이다. 그리고 sinx, cosx, tanx를 나타내는 정현, 여현, 정절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여 삼각함수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 약주의 기원 약산춘을 만들다
우리가 흔히 “약주 한 잔 하자”라고 할 때, 약주의 어원은 임원경제지에 등장하는 약산춘이다. 약산춘은 보통 술과는 다른 누룩을 써서 발효하기 어려운 겨울철에도 안전발효를 할 수 있다. 과학적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임원경제지에만 소개 되어있는 특이한 술도 있다. 술이 만들어졌을 때, 연꽃향이 난다고해서 이름 붙여진 하향주, 부드러우면서 향이 좋다.
임원경제지에 소개된 240여 가지의 전통주 제조 방법은 전통주를 복원하는데 지침이 되고 있다. 복원과 더불어 전통주를 현대화한다면 충분히 상품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 조선시대에도 카스테라를 먹었다?
임원경제지 정조지에는 각종 음식, 밥, 죽, 구이 등 당시 한 성인 남자가 알았다고 보기에 믿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음식 정보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외국의 음식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카스테라를 만드는 법과 양귀비가 즐겨 먹었다는 동남아 과일 여지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서유구의 지적 관심이 얼마나 다양하고 넓은지 알려준다. 이 책 한 권으로 조선시대 의식주를 완전히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서유구가 임원경제지에 전하는 지식은 현실 속 관찰을 통해 수집된 정보였던 것이다.
◼︎ 임원경제지는 농업백과사전이다
임원경제지에서 농업을 다룬 본리지는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토질, 논 종류, 수리, 곡식의 종류, 곡식의 재배 시기와 절차, 농기구 사용법 등 당시 조선에서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이 담겨있다. 양반 사대부가였던 서유구가 농업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서유구는 정조 때 규장각 초계문신을 지내며 개혁정치의 핵심에 있었다. 정조의 어명을 좇아 농업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정조의 죽음 후에도 화성유수를 맡아 정조의 뜻을 계승해 국영시범농장을 경영하고 적극적으로 발전시킨다. 임원경제지는 19세기 조선의 농업을 혁신하려했던 정조의 이상이 스며든 책인 것이다.
◼︎ 임원경제지 완성의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18세기 유럽에서 편찬된 백과사전은 당시 유럽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고양된 대중의 지적 수준은 근대 시민혁명의 토대가 되었다. 영국의 브리태니커, 프랑스의 백과전서는 당시의 계몽주의자들이 공동집필한 저서였다. 유럽 최고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전문지식을 기고해 편집한 것이다. 그런데 서유구는 혼자, 그것도 손으로 써서 113권에 달하는 임원경제지를 완성했다. 물리적으로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렇게 방대한 양의 정보를 모으고 분류하는 것은 인터넷이 발달한 현재에도 어려운 일인데, 서유구는 이 일을 어떻게 해냈을까?
신역사스페셜 5회 - 조선판 브리태니커, 임원경제지 (2009.8.1.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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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фев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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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омментарии : 40   
@user-do6wv4yb3o
@user-do6wv4yb3o 2 года назад
임원경제지 책자 이런분들이 애국자중에 애국인 입니다
@kanghyunyoo6690
@kanghyunyoo6690 2 года назад
맞습니다.
@user-ib8tt6xg1b
@user-ib8tt6xg1b 2 года назад
고마워요 ! 😄
@johnathanha9340
@johnathanha9340 2 года назад
지금 이 방송에서는 농, 수산업, 건축을 주로 이야기하지만 임원경제지가 다룬 것들은 이런 것들을 훨씬 뛰넘고, 이를 다 이야기 할려면 허루 이상이 걸릴 겁니다.
@jamesreal3723
@jamesreal3723 2 года назад
서유구 할아버지 정조때서명응의 보만재 총서도 어마어마한 백과사전 저작입니다
@user-nj5pq4rp1l
@user-nj5pq4rp1l 10 месяцев назад
역시 조상들의 덕을 많이 본다. 기초를 잘 해놔서 응용하기애 편하게 한거 같다. 지혜로운 사람들.
@jamesreal3723
@jamesreal3723 2 года назад
영조때 할아버지 서명응
@user-yf2jl9or9k
@user-yf2jl9or9k 2 года назад
유튜브로 역사스페셜 보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진짜 대단한 민족이고 나라임은 분명 절대 무시할 나라도 아니고 절대 없어질 사라질 나라도 아님 옛 선조들 존경스럽고 후손으로서 더 발전시켜야 함
@user-hn7xp2cw1o
@user-hn7xp2cw1o 8 месяцев назад
그래서 그의 글이 언제 출판되었고. 어디에 사용되었나요.
@user-oo6yj3sk6z
@user-oo6yj3sk6z 2 года назад
서유구씨의 신문물이 빨리 많이 전파 됐다면 우리나라는 망하는 시간은 많이 짧아 졌을겁니다~~~~~(건축 지붕 담장 관련만 벽돌사용) 또 하나의 설명은 지혜롭고 총명한 지도자 인물들이 안 나왔을겁니다~~~~~ 정형적으로 학문적으로 하면 망합니다~~~ 너무 답답하고 안타깝네요~~~~ 한 장군의 잘못된 판단으로 전 병사를 잃을수가 있는거죠! 거 말 하시는분들 약간 겸손하게 얘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적해서 연락주세요~~~~~ 시원한 답변과 기쁜소식을 들을수 있습니다~~~~~~수고하세요!
@user-gr9fk5ct3v
@user-gr9fk5ct3v Год назад
정조가 둔재 정약용을 끼고 놀아난거죠.
@user-iy8qp9oy4o
@user-iy8qp9oy4o 9 месяцев назад
최근 풍석 서유구 선생님의 얘기를 접하면서 많이 놀라고 있습니다. 뛰어난 집안의 역사, 사리사욕을 자손들에게 대물림 하는게 아니라 올바른 지식과 삶을 전하려 했던 집안의 역사에 너무나 감사함을 느끼고 존경스럽습니다. 그 위대한 임원경제지를 복원시키려 애쓰시는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user-ng2xs4qj3l
@user-ng2xs4qj3l Месяц назад
이 집안에 서기순 자신을 포함. 5대에 정승3명 대제학4명의 명가 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비를 피할수 없을. 정도록 청빈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순조때 청백리로서. 국가권익위원회에서 홍보자료로 안내 되는분 입니다
@user-nk4vh2nz4i
@user-nk4vh2nz4i 2 года назад
백과사전을 만들려면 자료도 모으고 분석하고 기재해야 하는데 혼자하진 않았겠죠
@jamesreal3723
@jamesreal3723 2 года назад
저집안 내력입니다 어마무시한 실용학문 집안입니다
@user-xv6js8df2n
@user-xv6js8df2n Год назад
아들이 도왔다고 합니다.
@user-tx2no8nj4c
@user-tx2no8nj4c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전통시대엔 스승이름으로 저서를 내는게 흠이 안되었는데 협조자가 있었겠지요. 지금도 책을 쓰는데 후배, 제자들이 도와주는 경우가 많음.
@Sinra1999
@Sinra1999 2 года назад
😁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2 года назад
조선판 위키피디아 군요. :)
@user-dk3rd8sw2h
@user-dk3rd8sw2h Год назад
엔딩곡이 유인촌이 진행할때 나오던 음악임
@user-tz5fu4lr8x
@user-tz5fu4lr8x 2 года назад
빙허각.규합총서도있지요.
@sung-ahim1070
@sung-ahim1070 2 года назад
빙허각 선생의 규합총서는 진짜 실사구시의 실학의 극치! 일 것입니다 :) !!
@user-sv4bj4bl3m
@user-sv4bj4bl3m 2 года назад
실학자인 형수님이 가르친 시동생 집안이 ㄷㄷㄷ
@user-gr9fk5ct3v
@user-gr9fk5ct3v Год назад
외할아버지 덕택이었습니다.
@user-gr9fk5ct3v
@user-gr9fk5ct3v 2 года назад
정약용에 대해 찬사를 보낸 정인보 그리고 실학의 완성자라고 썰푼 천관우는 정약용과 2살 차이로 동료였던 서유구에 대하여 알기나 했을가?
@user-ng2xs4qj3l
@user-ng2xs4qj3l Год назад
정조때 종종 정조가 당시 현직에 종사하는 초계문신들을 상대로 시험을 내었는데 이 시험 문제에 늘 1등은 서유구 였고 2등은 정약용이었는데 서유구는 압도적으로 1위를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약용은 늘 이 시험에서의 시험 결과를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합니다. 서유규의 대제학이 그냥 대제학이 아니었지요 . 즉 경학에 관한한 독보적 위치에 있었지만 그는 경학보다 민생의 생활고와 직결되는 문제에 늘 관심을 가졌던것 같습니다.(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LzolP_ANiDc.html)
@user-xv6js8df2n
@user-xv6js8df2n Год назад
@@user-ng2xs4qj3l 서유구1등, 정약용2등 이얘기는 어디에 나옵니까?
@user-gj3zc5mq2c
@user-gj3zc5mq2c Год назад
서유구 글중에 정약용에 대한 글이 나옵니다. 둘이 친하지는 못했지만 정약용을 위한 상소문을 써줬다는 글이 정조지에 있네요
@user-ng2xs4qj3l
@user-ng2xs4qj3l 4 месяца назад
1792.10.2 정조의 초계문신 590항목 시험에서 서유구 181개 정약용 117개 답안체택~~~ 늘 압도적이었다고 함ru-vid.com/video/%D0%B2%D0%B8%D0%B4%D0%B5%D0%BE-LzolP_ANiDc.html
@user-cr6zu2tl7h
@user-cr6zu2tl7h 6 месяцев наза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당대가 두려워서 퍼지지 못하고, 그게 이미 현대사에 해당하는 1966년에 처음 출간됐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게다가 그 당대의 문제점은 어디까지나 외세가 아닌 조선 내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user-pz3hl9um7o
@user-pz3hl9um7o 8 месяцев назад
이 책이 한글로 저술 돼었더라면....
@Isg3677
@Isg3677 2 года назад
지금도 벡과사전이 없어 정치가 이꼴인가. 희망사항. 마지막멘트는 아깝다.
@user-tx2no8nj4c
@user-tx2no8nj4c 5 месяцев назад
요즘 시대에 전통운운하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정작 이 책이 나온건 18세기인데 지금에 이르러 번역되고 사람들이 알아 보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단순히 한문으로 적혔기 때문일까? 임원경제지 내용중에는 중국의 자료를 참조한 것도 있을 것이고 우리나라 학문풍토가 그간 과학기술을 천시하고 관념과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탓도 있을 것이다.
@ryanking2484
@ryanking2484 2 года назад
조선시대 실학이 좀 만 더 일찍 연구가 되었으면 나라의 미래가 바꿨을지도...
@user-rl3dq5wr4f
@user-rl3dq5wr4f Год назад
씨브 뭔 소린지 요점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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