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물리학을 공부했던 사람인데 물리학을 하려면 출발점이 움직임을 표현해야 하고 움직임을 표현하려면 미분적분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분 적분학 의 출발점인 점의 정의가 재미있어요. 위치만 있고 크기는 없는 것 , 그것이 점이고 , 그것은 생각 속의 존재이지 시공 속의 존재는 아닙니다. 물리학의 모든 용어의 정의는 생각 속의 존재입니다. 위 선생님들의 대화에서 이 점이 선명하게 전제되지 않은 듯합니다.
유학을 계속 유지했다면, 한민족은 원시시대를 못 벗어났을 것! 망국의 조선 유학은 북한에 변질 이식되어 또다시 북한을 망국의 길로 이끌고 있고! 남한에서는 여전히 유치원에서도 나이 타령을 하고 있네!! 유학은 21세기 당연히 없어져야 할 사고체계이다!! 유학을 사고체계로 삼은 조선에 깊은 반성없이는 절대 진보는 없다!!
1. 공자는 그가 살던 봉건시대의 지배층/피지배층을 군자/소인으로 문자상징화하였고 그의 삶 또한 면천 혹은 신분상승 입신출세를 지향한 삶이었으므로 논어에 적힌 말들은 고도로 추상화된 철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통치적 이념을 반영한 군주론 매니페스토와도 같다 2. 그 당시 군주인 왕이나 천자를 섬기기 위해 천지인天地人우주론에 나오는 종교적 의식 (점치기)를 통해 유교체제를 갖춘 종교국가가 조선에서도 생겼고, 힌두 종교국가인 인도에서는 아직도 볼 수 있는 카스트제도를 사농공상과 같은 카스트제도로 기존의 지배계층적 서열을 유지하고 체제를 존속하려는 것이 합당하고 내츄럴하다 라는 인식이 강했었다 3. 근대로 오면서 이러한 서열과 체제는 불합리하다는 것이 혁명을 통해 보여졌지만 혁명 이후 또다른 서열이 생겼고 오히려 현대로 오면서 사회적 질서를 잃게된 나머지 고대의 종교국가체제를 복고하자는 움직임이 있는데 과거와 현재에 대한 비판적 사고 없이 미래는 위험하다 선생님의 영상을 보고 나름 정리해 봤습니다. 이러한 비판적 사고를 통해 가치를 상실한 현대인에게 있어 천지인天地人우주론은 과학의 도구적 이성을 어떻게 극복하고 21세기 종교는 어떻게 진화할까가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 차원에서 더 많이 숙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士>편에서도 댓글을 다신 분이신데, 한자를 매우 깊게 연구하는 분이신 듯합니다. 저를 겉핥기만 하는 사람으로 꾸짖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는 답을 제시하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답이라는 게 있을 수도 없고요. 깊게 공부하고 또 훌륭한 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선생님같은 분을 뵈면 부러울 따름입니다.
본질이라는 게 있다는 주장치고 권력지향적이지 않은 주장이 없습니다. 굳이 현대 철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본질이 이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본질이라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본질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한자를 그런 식으로 破字해서까지 해석하는 경향은 한왕조부터 시작됩니다. 그처럼 관념적인 해석 방식은 얼핏 보면 논리적인 듯하지만 황당한 허구에 불과합니다. 한자의 기원에 대한 지식을 갖춘다면 그런 방식을 학술적인 방식으로 볼 수 없게 됩니다. 중국에서 그처럼 관념적인 해석은 주역이 유행한 뒤로 더욱 성행하였습니다. 전형적인 책이 바로 허신이 지은 설문해자입니다. 그 책은 황당한 관념론으로써 한자를 해석합니다. 오늘날 한국에는 주역으로써 논어를 해석한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등장합니다. 반지성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의 학계가 워낙 얇기 때문에 그런 반지성적인 태도들이 세력을 떨치게 됩니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연기법과 유학의 가르침은 전혀 방향이 다릅니다. 유학은 통치술이고 연기법은 세상을 觀하는 방식입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무렵 유교 불교 도교 세 교단이 서로 우열을 겨루다가 마침내 三敎의 근원은 일치한다는 황당한 결론으로 합의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도교의 도관인지 불교의 사찰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서로 섞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사찰에 명부전이니 칠성각이니 산신각이니 하는 것들이 한데 있는 것도 그런 경향의 연장입니다. 섞는다고 상호작용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섞어도 좋은 것과 섞일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知의 출발일 것입니다
하나마나한 얘기, 아이구/ 고대 옛날에 그만하면 대단하신 분들이지// 운동권들이 평생 남 비하만하고 나라 깽판내고 해놓은것도 없고, 입만 사회 공산주의 외치고, 중국 우주가고 앞서갈 동안 한국사회 이간이해놔서, 이것도 저것도 안되고, 미국놈 욕했다가 미국놈 개노릇했다가, 교회 개노릇했다가 한귝 역사전통 다 망가뜨리고, 뭐야// 맨날 하나마나한 얘기들.
한국의 학자로, 논어의 "유붕자원방내"를 바르게 읽은 이가 없었는데, 선생께서 처음으로 바르게 읽으셨습니다. 즉, 하고 많은 한국 학자들이 "자원" "방내"락 띄어서 잘못 읽고 있었었지요. 선생만이 "자""원방내" 라고 바르게 띄어 읽ㅇ셨습니다. 한국의 언어 문화의 타락상이 하 분하여 "눈물로" 쓴 책이 "한국 어문을 고발함"이옵니다. 고국의 지성인들께 정중히 권하오니, 이 책을 조용히 읽어 주시옵소서.
한국어의 장단음에 유의하시는 분을 뵈니 반갑습니다. 그런데 현대 한국어에서 장단음 규범은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1988년 표준어 규범에 마지막으로 명시되기는 했지만, 그때도 사실상 의미가 없음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존재하는 규범이기 때문에 방송국의 아나운서는 아직 규범으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분들도 실제적으로는 거의 지키지 않습니다. 제도교육에서도 1977년 규범화 시도가 실패한 뒤 사실상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장단음이 맡았던 낱말의 의미 구분 기능은 요즘 된소리가 대신합니다. 예컨대 ‘적다’(書)는 [적따]로 ‘적다’(少)는 [적ː따]로 발음하는 것이 규범이지만, 현대 한국어에서는 [적따]와 [쩍따]로 구분합니다. 다만 ‘밤’, ‘눈’, ‘말’, ‘굴’처럼 외글자 낱말에서는 어느 정도 장단음이 의미 구분의 기능을 어느 정도는 하고 있습니다. 한국어에서 장단음은 애당초 중국어의 四聲만큼 결정적인 규범도 아니었습니다. 결정적인 규범이었다면 표기법이 있었겠지요. 선생님처럼 규범을 따진다 하더라도 士는 단음입니다. 자전에 의하더라도, 현대중국어 발음에 의하더라도 去聲이므로 단음이 됩니다. 언어는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세월에 따라 바뀝니다. 바뀌어 가는 것을 ‘틀렸다’고 나무라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현재 한국어 장단음은 사전마다 그 규범이 같지도 않습니다. 훌륭한 강의라는 칭찬에는 부끄러움과 부족함을 느낍니다. 더욱 더 공부하여 내놓겠습니다. 졸저에는 <논어역평>(현암사)이 있을 따름입니다.
유교의 본질에 대한 좋은 강의 감사합니다. 오늘 강의 중에 잘못된 지식 부분을 점검코자 합니다. 1. 한자의 발달 순서는 일반적으로 갑골문 -->금문으로 알고 있으나 갑골문 보다 더 오래된 금문이 새겨진 청동그릇이 발견되어 있는 만큼 문자 발달의 순서를 재정립 바랍니다. 2. 천 天을 설명하시면서 大자 위에 ㅇㅁㅡ이 있다고 하였는데 청동 그릇 속에 새겨진 그림에는 머리와 팔과 다리를 벌린 그림으로 나옵니다. 왕이 천이라는 뜻이지요. 따라서 큰 대자라고 설명하면 부족합니다. 짧은 의견, 올려보았습니다..
'도가' 가 자연으로 부터 배운다고 했는데, 결국은 도덕경을 통한 배움입니다. / 물론 자연- 현실에서 배움이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어서 유가와는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 도덕경도 그 내용을 살펴보면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재미 있는 책입니다. 잘 살펴보세요.
귀한 강의 강사드립니다. 왕에게 충성하는 동시에 모두의 이로움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의'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양혜왕장구 하(下)를 보면, 맹자는 의를 행하지 않는 왕은 왕이라고 볼 수 없으며, 따라서 폐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 대신 의로운 왕을 세워서 충성해야 한다고 보았던 걸까요?
배워봅시다 트랜스유라시아어족 : 한국, 일본, 몽골, 만주족... 인도유럽어족 : 유럽, 인도, 이란... 오스트로계 어족 : 중국, 태국, 베트남, 필리핀... 유전학적 분류 동북아 그룹 : 한국, 일본, 몽골, 만주족... 코카소이드 그룹 : 유럽, 인도, 이란... 동남아 그룹 : 중국, 태국, 베트남, 필리핀... 결론 조상님은 DNA와 언어를 같이 물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