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원 역대 최고의 투구 크하 죽이네 당시 나는 국민학교 5학년 시절 티비에서 생생히 본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멋진 엄청난 투수가 있다는 것을 정말 감명깊게 봤다 특히 다이나믹한 투구폼이 지금봐도 진짜 예술이다 무지막지한 강속구 괴랄한 낙폭의 커브 당대 최고의 제구력까지 우리나라 최고의 투수는 최동원이지 지금도 나의 스포츠 영웅은 최동원 한 사람 뿐이다
최전성기인 연세대 시절의 구위는 어마무시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거의 90도 가까운 팔각도의 높은 타점에 가속이 붙으면서 타자앞에서 10cm정도 떠서 들어가던 이른바 라이징 패스트볼‥TV화면으로 보면 저걸 어덯게 치나? 저공은 못친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직구 자체가 마구인데 간간이 변화구를 섞어 던지니 타자들이 제대로 대처를 할수가 없었죠~국대와 실업리그를 거치면서 너무 혹사를 당해 이후 그 라이징 패스트볼은 더이상 볼수가 없었습니다 이틀에 27이닝을 투구했던 적도 있을만큼 너무너무 혹사를 당했습니다 프로인 롯데 자이언츠 입단시 깜짝 놀랬던 기억도 납니다 총알같었던 직구가 밋밋하게 들어가는걸 보고 최동원이 완전 맛탱이가 갔네라고 느낄만큼 공의 위력이 현저하게 떨어졌죠~최동원의 공을 많이 받았던 심재원 포수는 프로시절 최동원 공은 아마때와 비교하면 50% 수준이라며 얘기했고 타자 김일권 선수는 직구가 워낙에 빠른데다가 떠올라 들어와서 공략이 불가능하다는 인터뷰도 했었습니다 특히 푹쉬고 나오면 1점 뽑기도 어려울 만큼 말그대로 언터쳐블이었습니다 지금 이 동영상도 최동원 최전성기는 아니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81년도이면 실업롯데 시절인데 한창 좋을때의 자동 라이징 패스트볼은 볼수가 없네요 개인적으로 어깨가 싱싱했던 경남고와 연세대 1~2학년 시절이 최전성기라고 생각되며 선배의 구타로 인한 허리부상으로 3학년때는 거의 통으로 쉬었고 4학년때도 공이 좋았던 걸로 기억됩니다 연세대 시절 최동원의 투구를 야구장에서 그리고 TV중계로 숱하게 봐왔던 제 기억속엔 최동원 앞에 어떤 선수도 올리기는 힘듭니다 어제 완투하고서 오늘 등판해서 완투하고 팀 승리를 위해 밥먹듯이 완투하면서 정면승부를 마다하지 않았던 근성과 희생 선수시절 내내 스캔들 없이 오직 야구밖에 몰랐던 투수 프로시절엔 2군 선수를 비롯해 선수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최전선에 나섰던 최동원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고 생각됩니다
맞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프로시절 롯데의 모습으로만 기억하는데 그의 최전성기는 고교 대학 실업 시절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했 습니다 그가 등퍄 하는 날이면 상대팀으로선 1점 내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느껴졌지요 무엇보다 경외감을 느끼는건 혼자의 힘으로 연투하며 팀을 우승시겼던것 84년 한국시리즈의 모습을 이미 아마때 여러번 보여줬습니다
프로야구 선수 노조 결성으로 선수들 신분보장과 복지의 기초를 잡았던 위대한 선수입니다. 본인은 롯데에서 삼성으로 트레이드되는 보복을 당해 마음고생이 심했지요. 그 당시 프로구단을 운영하는 대기업들의 마인드로는 선수노조가 눈에 가시였지요. 단순히 야구 성적만 본다면 선동열도 거론되겠지만, 프로 선수들이 지금의 대접을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최동원 선수 덕입니다.
우선 일개 개인의 작은 요청에도 불구하고, 해당 영상을 찾아 이렇게 좋은 영상으로 만들어주신 KBS 스포츠 유튜브 담당자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업로드 이틀만에 조회수가 16만 이상이 나온 걸 보면, 사람들이 과거 유명 선수들의 전성기 모습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에 한번 더 부탁을 드리자면, 당시 1981년 대회 동안 최동원 투수는 미국전에서 8이닝, 도미니카 전에서도 완투를 하였습니다. 만약 해당 경기의 영상도 존재한다면 업로드 시에 조회수가 굉장히 높게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한번 알아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눈을 한번도 안떼고 다본 영상이네요 눈물이 찔끔거릴정도로 감격적인 영상 잘 보았습니당 우리나라 최고 최곱 다시는 나타나지않을 대한민국 최곱 투수 최동원 ~♡ 지금 롯데팬으로서 안타깝지만 최곱의 롯데 야구선수지만 우리나라 최곱 투수라고 두말할 필요없는 최동원 어릴때 본 기억이지만,,, 영원히 기리기리 기억될 대한민국 최고투수 영상 너무 고맙고 그의 모습에 감동이 넘쳐 먹먹한 밤이네요 💌
제가 알기로는 최동원 선수는 거의 채식주의자라고 할만큼 고기보다는 채식을 좋아했다는데.. 저렇게 엄청난 스테미나를 보여준것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선수시절 시합전에 항상 어머니가 해주시는 된장찌게랑 나물반찬 먹고 나갔다는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네요 ㅎㅎ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신 레전드중에 레전드.. 최동원 선수!
귀한 영상이군요.. 고교야구가 인기절정의 시대라서, 몸도 그렇게 일찍부터 혹사했던 시기라서.. 아마도 대학초반까지의 최동원의 모습은 국내 역대 누구도 견줄수 없었던 살아있던 모습이었습니다. 뒤늦게 갑자기 출범된 프로야구로의 진출은 이미 몸이 다 조기 소진된 상태여서..특히 한국씨리즈 4연승도 격찬 할만하지만, 마지막 불꽃과 투혼만 남았을 뿐, 절정기의 그의 실력과는 이미 멀리 있었습니다. 둘도없는 오직 하나뿐인 한국 최고의 투수였습니다. 마운드의 모습이 그립군요~^^
컨디션 좋은날 포심 직구만 던지면 구위눌려 타자들 아무도 못침..그리고 다음날 나오면 커브비율 높이며 타자들 또 아무도 못침. 커브 컨트롤이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자유자재 였음... 최동원의 수준은 단순히 역대급 기록을 재단할 수 있는게 아니었음...투구 내용을 보면 아시아에서 돋보적임.. 직구 구위, 커브 통제, 당시 슈트라고 불린 변형 패스트볼.. 딜리버리를 수시로 바꾸는 능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간 한계를 넘는 연투능력...
슈트는 요즘 용어로는 역회전 볼을 지칭하는 거죠. 일본에서 이걸 슈트라고 불러서 우리도 그대로 따라 불렀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최동원은 팔 각도도 수시로 바꿨는데 어떨 땐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는 오버형이었다가 갑자기 쓰리쿼터로 커브를 던지기도 했고, 투구폼도 세트 포지션에서도 그냥 킥킹 다 하며 던졌다가 갑자기 퀵모션으로 던지기도 해서 타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었죠. 정말 불세출의 에이스였는데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진짜 야구의 레전드로 팀을 구성했네요 몇 선수만 빼고 82년 세계선수권 야구대회 맴버들이 거의 있네요 서울 잠실에서 벌어진 82년 세계 선수권 대회때 관람간게 엊그제 같은데 ㅎㅎ 벌써 세월이 ㅠㅠ 최동원 선수는 롯데 격리단 시절 피칭한게 기억이 나네요 이런 영상 감사 합니다
해태타이거즈 원년 팬이지만... 최동원선수 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선동열 투수이전에 한국 최고의 투수 였고 그둘은 우열을 가릴수없는 한국야구사의 국보급 투수입니다. 선동열 선수의 롤모델이 최동원 선수였지요. 인성도 훌륭하셨고.. 특히 요즘 시대 젊은 선수들이 본받아야할 롤모델 같은 분입니다. 만약 지금시대에 관리 받으면서 투수하셨다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최고 투수중 한명으로 남으셨을겁니다. 너무 일찍 돌아가신 최동원 선수를 다시 영상이나마 다시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최동원 선수의 가족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안이 늘함께 하길 기도하겠습니다.
@@user-xf8cu5wp4d 캐나다전 이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최동원에게 제안했던 오퍼가 4년간 61만달러에 25인 로스터 보장이었습니다. 당시 토론토의 에이스였던 1선발 데이브 스티브가 2년간 50만달러 재계약이 진행중이었으니 토론토에서는 최동원을 루키로 본게 아니고 1,2선발급으로 보고 계약을 진행했던겁니다. 토론토 스카우터들도 대회 당시에 최동원이 당장 MLB에서 통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캐나다 총리까지 나서서 최동원의 영입에 나섰고 이후에 최동원이 40살이 넘었을 때에도 토론토의 스카우터들이 최동원에 대한 언급을 여러차레 했던걸 보면 현지에서도 최동원이 MLB에서 통할거라고 확신했던걸 알 수 있습니다.
저당시 아직 한국에는 프로가 출범 하지 않은것으로 아는데....암튼 최동원 선동렬 백인천........최동원은 메이져 갈 능력이 되지 않았을까!걍 롯데에서 혹사로 전세계 유래 있을까나!코리안시리즈서 최동원의 4승..우승. 아마 전대미문 아닐까 싶다!나머진 다 졌어도....이때부터 야구는 투수놀음!!!!!
제가 화면상 보기에는 직구구속은 140킬로 중후반에서 150킬로 초반으로 보이며 전성기시절 라이징 퍄스트볼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리고 한해 전에 동경 세계선수권대회 미국전에서 경기중 갑작스런 어깨통증으로 4회에 나가기전까지 보였던 직구 구위는 가히 대단했습니다. 공이 타자앞에서 훅훅솟아오르데 미국타자들이 스피드에눌려 공과 확연한 간격차이를 보이며 연방 헛스윙날리는데 . 그날은 직구컨디션이 좋으셨는지 커브를 거의 안던지셨어요. 아마 그경기가 최동원 투수의 전성기시절 마지막 경기라고 보시면됩니다. 그리고 최동원 선수가 구속을 잰 경기로서 직구가 158 킬로 나왔다는 경기는 78년도 이탈리아 선수권때입니다. 실업시절은 구속을 잰 경기중에 증명된 최고구속 155킬로엿습니다. 최동원선수 팬으로서 너무 안타까운 것은 최동원선수가 구속이나 구위가 제대로 알려지고잇지않은것입니다. 박찬호 메이저시절구속과 구위도 대단했지만 최동원선수의 전성기시절 직구도 특히 구속를떠나 종속의 구위도 대단햇습니다. 제구력과 파워커브의 구위는 최동원선수가 전성기시절이 박찬호보다 나아보여요. 전성기시절 최동원선수 파워커브는 카메라바로뒤에서 가끔 잡아주었는데 공 구위가 떨어질때 원낙 위력적이라 떨어질떼 공이 흔들리는게 보일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영상에도 그런 위력은 이미 혹사로 없어졌습니다 최동원선수는 변화구는 커브와 슬라이더 그리고 슈유트라고 지금의 투심패스볼과 유사한데 공이 위로 솟아가는특이한 구질이었습니다.물론 프로와서는 변형된 변화구를 추가로 던지셨어요 슬라이더 구속은 김시진 감독님이 롯데감독시절 방송에서 130킬로 후반정도나온 것같다고말씀하셨고 우리가 말하는 커터거아닌 정통슬라이더였는데 당사자가 그구종을 별로 좋아하지않아서 실제경기때는 많이 던지시지않은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최동원투수 국내경기중 제생각으로 최고의 구위를 보인 경기는 84년도 한국시리즈 가 아니고 연세대 2학년때 백호기대회에서 최강 경리단과의 4강전과 같은해 다른 대학대회에서 보인 한양대와의 경기인것으로 알고잇습니다. 그 한양대와의 경기에서 구속이 엄청났다는 얘기가 야구기자들 사이에서 돌았다고합니다. 그다음이 4학년때 백호기 성무전과 2학년시절 역시 백호기결승에서 만난 성무전으로 생각됩니다. 2학년 성무전에 2실점하고 졌는데 그전날 전력이 좀더강한 경리단과의 준결승전여파가있었어요. 그리고 그날 재있던 일화는 성무의 천보성 고참 선수가 ``야 니네 동원이 공 오늘 보이냐? ``라고 물었더니 다른 선수들이 `예 ,저도 잘안보이는데요? 한 우스운 인터뷰일화도 있었답니다, 그때 상대투수가 연세대선배 박철순이었고 박철순은 이경기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성한 감독님이 최동원선수 공을 고교시절부터 대학시절까지 가장 많이 본 선수셨는데 예전 mbc방송 인터뷰에서 공이 땅으로 떨어질것같으면 갑자기 위로 솟아올랐고 반대로 공이 위에서 갑자기 떨어져서 매우 치기힘들엇다고 하셨으며 고교시절도 결숭전에 보인 구위는 환상이라고하셨어요. 아무튼 다시는 보기힘든 불세출의 투수 맞습니다. 위력적인 구속, 정확한 제구력, 예리한 변화구에 어느투수도 흉내못내는 연투능력까지 정말 연세대시절 최동원은 가히 최고입니다. 우리나라 역대 어느 투수가 가장 낫다는 말은 하려는 것이아닙니다, 최동원이란 투수가 컨디션이 좋을때 얼만 공이 위력적이었는지를 그당시 피칭을 본 야구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얘기가잇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성기때 메이저에 진출했으면... 고무팔이라는 별칭에서 알수 있듯이... 200승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아무튼 한국 프로 야구사에서 최동원 선수는 투수로써의 위대한 능력뿐만이 아니고 인간적으로써도 모든게 완벽했었던 선수가 아니었나 싶다... 전설이라는 말을 들으려면... 모든면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이 들고... 그 중심에는 항상 최동원 선수가 있었다라고 확신한다...
한국프로야구 처음이자 사실상 마지막인 일명 세이브포수였던 심재원의 투수리드, 주자견제, 수비력은 인정하지만, 최동원은 어느팀 어떤 포수와 해도 특급이었던 투수였는지라,,,기여도가 전혀 없었다는건 아니지만 뜬금없는 심재원선수 거론은 아니라고 봅니다,,,혹 LG팬이신가요? ㅎㅎ (참고로 전 한국프로야구 원년부터 야구본 사람이고 롯데팬 아닙니다)
81년 대륙간컵 대회가 최동원의 마지막 전성기였죠. 심재원과 최동원은 83년 동시에 롯데자이언츠에 입단하게 되어 배터리를 이루게 되죠. 82년 원년부터 롯데 타선을 1번부터 9번까지 외우다시피하며 야구에 깊이 빠져있던 시절이었고 라디오를 통해서라도 생방송으로 야구를 즐겼던 찐팬이었습니다. 심재원은 주자견제능력이 탁월하여 거의 매경기 포수에 의해 주자가 아웃되는 견제능력을 보여주었죠. 그 능력이 탁월해서 기억에 오래 남았네요. 일찍 고인이 되셨지만...
@@user-kn8lr6tt6m 쿠바와도 붙었죠. 대부분 접전끝에 졌지만 쿠바나 북미팀 상대로 제대로 던진 투수는 최동원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최동원이 쿠바투수들에게서 선진야구를 배웠죠. 최동원의 투수폼을 자세히 보시면 오버헤드부터 거의 사이드암에 가까운 스리쿼터까지 폼을 변경하며 던지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걸 쿠바투수들에게서 배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Gail Cha 아니꼬와서 못가게 한 게 아니라, 군문제 해결을 하고 나가던가 국내팀에서 더 뛰던가 선택 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계약했다가 파기하고 돌아온 겁니다. 그만큼 국내에도 최동원이 꼭 필요했기에 잡은 걸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이 아니꼬와해서 못 간 것처럼 얘기하지? 몇살인지 모르겠지만 그 시절 안살아봤으면 역사왜곡은 하지 맙시다.
야구의 참 맛을 느끼게 해 주신 최동원 님. 다이나믹한 투구폼으로 강속구, 폭포수 커브로 타자들을 잡아낼 때의 통쾌함. 에이스 투수로서의 책임감, 자신감, 정면 승부, 열정. 독보적 실력. 자존심. 끊임없는 노력, 지독한 연습 & 훈련. 몸을 사리지 않는 팀을 위한 헌신. 술, 담배 하지 않고 오직 야구에만 전념하는 자기 절제. 약자를 배려하고 약자 편에 서는 정의감, 실천. 겸손함. 다시 나오지 않을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 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남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