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6월 7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 WBC L플라이급 세계타이틀매치 12R.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광선(화랑체육관) 선수가 당대 최고의 챔피언 움베르토 곤잘레스(멕시코)를 맞아 11라운드까지 앞선 경기운영으로 세계챔피언을 눈앞에 뒀으나 마지막 12라운드에서 무너지며 역전 KO패로 아쉬움을 남긴 경기입니다.
김광선 선수가 84 LA올림픽에서 계획대로 금메달을 땄더라면 그 직후 20대 초반의 적절한 나이에 프로로 전향할 수 있었고 그랬다면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88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4년을 아마추어에 더 머물러야 했던 게 결과적으로는 아쉬움 입니다만 당시 분위기로는 어쩔수 없었죠. 그리고 장정구, 유명우 선수가 양대 기구 챔피언으로 롱런하고 있을 때라 국내 선수끼리 굳이 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궁금한 건 장정구와 유명우간에 통합 타이틀전을 하지 않은 것인데, 저는 아마도 양 방송사의 기득권 유지 차원에서 그랬으리라 추측합니다만 (이 사정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곤잘레스와 카바할이 세 차례 혈전을 치르며 경량급 대전료 100만달러 시대를 연 걸 생각하면 누가 이겼더라도 그에 못지 않은 명승부가 나왔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3라운드 선수와 플라이급 양대기구 챔피언을 지낸 김용강과 비교는 애시당초 어불성설이죠. 5라운드 지나면 체력이 급격이 떨어진다는게 눈에 훤히 보이죠. 마지막 12R도 엄연한 라운드인데 12R는 경기가 아니라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서 황당합니다. 정신승리도 그런 정신 승리가 없죠 ㅋㅋ
댓글에 모든 분석이 써있어서 더는 할말이 없고.. 좀 다른 분석을 하자면 나는 염동균씨가 너무 흥분하고 정신을 빼놔서 진것 같다. 경기가 유리하게 진행 될수록 후반에 냉정함을 유지하도록 해줘야 하는데 세컨 입장에서 저렇게 호들갑 떨며 다 이긴양 흥분을 해버리니 문제가 많아 보인다.
장정구, 유명우가 잘하긴 했지만 솔직히 움베르토 곤잘레스 마이클 카바할처럼 슈퍼스타급과 싸운 적은 없었다. 솔직히 장과 유 모두 움베르토 곤잘레스 마이클 카바할과 붙었으면 둘 다 졌을 것이다. 원정이면 거의 승산이 없고 홈에서 싸웠어도 졌을 것이다. 김광선이 선방한 거다. 참 장정구는 곤잘레스에게 졌었다. 유명우도 마찬가지였을 것
김광선이 부족한 선수가 아니라 곤잘레스가 굉장한 선수였음. 이미 곤잘레스와 경기를 치렀던 장정구가 경기전 인터뷰한 내용을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김광선이 기본기와 스피드 뛰어나지만 곤잘레스의 펀치를 피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곤달레스 펀치의 강력함을 잘 알고 있었던 장정구의 매우 염려스런 인터뷰였다. 장정구의 우려를 잘 이해한 나로선 매우 불안한 가운데 경기를 지켜봤지만 역시 김광선은 금메달리스트다웠다. 경기 내내 곤잘레스를 혼쭐냈지만 체력이 고갈되기 시작하는 경기 후반 전략은 너무나도 아쉬웠다. 난타전으로 맞대승 할게 아니라 곤잘레스의 카운터 펀치를 피하는 전략으로 나섰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승리를 보장할 수 없을 만큼 곤잘레스는 당대 아니 역대 최고 선수중 하나였다.
88서울올림픽 기간중 김광선은 군복무(상무 인듯)중이였고 , 제대후에도 바로 프로에 데뷔하지 않고 90년 11월에 프로데뷔. 만 25세(실제 나이 27살)에 너무 늦은 데뷔. 아마복싱 선수들의 프로데뷔 때의 약점인 경기 후반 스테미너 문제와 경기후반 수비 문제. 그리고 아마복싱 시절 자신보다 항상 키 큰 선수만 상대를 하다, 자신 보다 키 작은 선수와 경기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jklinssi1061 엇.. 그래요? 저 당시 중딩때 시청하고. 다음날 스포츠증계에서는. 1:0 리드라고했던데.. 아닌가??ㅠ 넘나 아쉬웠던 경기였습니다. 진짜 일방적이어서, 이대로 당연히 끝나겠지..곤잘레스를 줘패는게 너무나 후련하게 잘봤는데 다운.. 그래도 12라운드 무난하겠지 했는데..ㅠ 지금도 아쉽습니다..
장정구 선수는 20살에 챔피언이 되고 김광선 선수는 25세 되는 해 인 88년에 금메달. 이 시합은 93년이니까 29세에 타이틀 도전.결과적으로 아마츄어에 복싱인생을 바쳤고 무려 5년 동안 큰 시합이 없었던 거 임.그러니 ,크게 억울 할 것도 없지만,역시 실력이 탑 클래스임은 증명한 경기.88 올림픽 대신에 프로로 전향 했으면 챔피언은 물론 적어도 10차 방어는 했겠지.
84년 올림픽 직후 프로에 온다고 해도 김광선 정도의 체격조건. 내구력.펀치력으로 비집고 들어갈만 한 곳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 당시 신생기구 IBF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WBA.WBC 포진한 인물들을 보면 김광선 보다 한두수 위였으면 위였지 만만한 챔프 가 없었음.. 라이트 플라이 ~ 플라이급에 포진한 선수들을 보자면 장정구가 집권중 인 WBC에는 헤르만 토레스.이시드로 페레즈.이열우가 대기중이었고. WBA에는 조이 올리보. 유명우. 헤수스. 가메즈.데 마르코가 있었죠.. 플라이로 가봐야.. 장정구한테 밀려 월장한 사파타가 WBA에 포진.. 똑같이 장정구 땜시 쫓겨난 뒤 월장해서 WBC플라이 챔프에 소트 치탈라타가 있었죠.. 그 외에도 김용강. 최점환 같은 수준급 국내선수도 많았고.. 아마추어는 몰라도 프로서는 탄탄한 체력이 뒷받침이 안 되면 결국 얼마 못가서 한계.. 즉 넘사벽을 맞보게 되는거죠 ㅜㅜ
@@josephvstalin4657 김광선 선수가 LA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기록을 알아보니 김용강 선수를 꺾었네요.김용강 선수의 스피드나 복싱두뇌는 아마츄어에 특화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김광선 선수의 벽을 못넘었죠.장정구 선수가 챔피언이 될때의 경기력과 마지막 시합의 경기력을 보면 스피드 맷집 모든면에서 다른 선수같이 보여요.이건 레너드나 알리등의 전설적인 선수들은 물론 오스카 델라 호야도 차베스에게 던지던 무시무시한 잽을 파퀴아오 전에서 는 볼수가 없지요 그만큼 권투라는 운동은 1년이라는 차이가 어마무시 합니다.LA올림픽 티켓을 걸고 싸운던 김광선 선수와 김용강 선수는 같은 해인 88년에 한명은 금메달 한명은 세계챔피언이 되었죠.결국 이 때가 프라임 타임입니다.장정구 선수가 사파타와 벌인 시합을 보면 한마디로 기가 막힙니다.그 때에는 곤잘레스든 카바할이든 누가 덤벼도 장선수의 상대가 안됐을 겁니다.김광선선수는 메달을 딴 후 실질적으로 무려 5년간이나 공백상태 였다고 보면 됩니다.그런데도 곤잘레스 시합은 11회까지 두 부심에게 2점 한 부심에게 1점을 이겼었지요.그만큼 실력을 입증 한 겁니다.곤잘레스는 판정으로는 지지 않을 만큼 경기를 지배하는 테크니션인데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