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반대 날씨는 너무 설명이 없거나 불친절하고 뭔가 메세지를 이것저것 넣고 싶은건 알겠는데 그 짧은 러닝타임안에 우겨넣다보니 그냥 멀쩡한 가정있는데 중2병와서 부모속썩이게 가출해서 이곳저곳 사고치다가 도쿄인 천만명이상 죽거나 터전잃게 해놓고 아. 이건다 세상탓. 내탓 희나탓 아님. 응희나만 살면 그만이야~해서 그 선택에 대한 죄책감도 없는 책임회피가 별로였음. 차라리 직관적이고 목표가 뚜렷해서 기승전결이 깔끔했던 스즈메가 만화영화로선 더 좋았음
작가가 상상한 이야기들이지만... 물에잠긴 도시에 적응하며살아가는 시민들의 모습이 마치 코로나가 터져도 이렇게 적응할거란걸 예상한듯... 세상은 변해도 그속에서 다들 적응한다는걸 .. 코로나 발생전 나온 애니인데 작가는 세상에 어떤일이 벌어지던간에 그속에서 어떻게든 적응하는게 인간이란걸 보여준듯하네요..
호다카가 처음 총을 사용할땐 사람을 겨누었지만 히나를 구하려 갔단 장소에서 호다카는 케이스케가 아닌 그 위를 향해 총을 쏘는 모습에서도 성장했다 볼 수 있을거 같고 형사들이 들이 닥쳤을때도 총을 쏘는 것이 아닌 총을 버리고 달려가려했던 부분에서도 이성적인 부분에서 많이 성장한듯
날씨의 아이의 흐름이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공리주의 같은 내용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사회속에서 어른과 청소년의 관점에서도 보면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호다카는 가출 청소년이고, 미성년자 아르바이트를 하려하죠, 하지만 결국 막아서는 건 어른들이고 히나를 구하려는 호다카를 방해하는 사람들도 결국 어른. 하지만 영화 후반 마음을 돌려 히나를 구하는 것을 도와주는 스가의 행동에서 잠시나마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변해버린 세상, 혹은 원래 그런 세상 아니면 망가진 세상 이러한 배경을 도쿄의 날씨로 표현하고 주인공을 청소년으로 설정하여, 어른들의 책임을 히나와 호다카 즉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청소년들에게 떠넘기는 몰상식한 어른들을 비판하고 있는 의도로 나쁜 해석의 흐름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히나와 호다카는 자기자신들을 위해 선택을 했고 호다카의 '너 자신에게 기도해, 히나'라는 말을 통해 많은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위안에 되는 듯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사랑이 할 수있는 일이 아직 있을까.. (사실 주제가 가사에 모든게 설명되는 작품) 세상이 너무 다변해 가고 있어서 예측할 수도 없는.. 그리하여 너무도 막연해서 방향성을 잡지못하고 들쭉날쭉하는 가치관의 시대를 감내하는 현 세대들의 무엇하나 정립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마음과 정서들을 잘 표현하고 잘 다독인 신카이 마코토의 최고 수작이라 여겨짐.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출발, 일본 정서들의 총합을 거쳐 광범위 보편성의 시작을 알렸던 작품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팬으로서 너의 이름은은 후반 클라이막스 부분도 인상 깊었고 초속 5센치미터에서 여운은 남았지만 아쉬웠던 결말과는 다르게 여운도 챙기고 아쉽지도 않게 만들어줘서 인상 깊고 완성도 높은 영화였다면 날씨의 아이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들을 다뤘고 몇몇 장면들의 의미를 깊게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든 영화라 더 기억에 남는듯.. 그 호텔 독백에서 애절함은 ㄹㅇ 아직도 기억에 남음
언어의 정원 - 뭐지? 뭐지? 뭐지? 만 반복하다 끝남 이해를 잘 못 해서 그런건지.. 마지막 장면이 하이라이트인 듯 너의이름은 - 모든 게 완벽했다 날씨의 아이 - 여운이 남고 감동적이었음 그냥 펑펑 울었다.. 떡밥 회수가 좀 아쉽지만 보면서 소름이 제일 많이 돋았던 거 같음 스즈메의 문단속 - 연출이 대박임. 갠적으로 스즈메보다는 날씨의 아이가 더 좋았음
일본이나 한국이나 어느나라나 좋은면이 있는반면 안 좋은 부조리가 있죠.. 이분법이라 세상은 본래 대립적인 세상이고 상위 1%가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건 변함이 없으니까요... 다만 상위 1%가 돈, 권력=힘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다 보니까.. 그들의 사소한 대립속에서 다른누군가가 피해를 보고 있으니까요.. 흔히들 말하는 편의점, 영화관, 식당 등등은 그냥보면 우리들의 편리지만 툭 까놓고보면 부자들을 위한 문화생활의 편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더라구요.. 그래도 영화가 던져주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실 감독이 바라는 세상은 현실비판이긴 하나 우리들과 세상이 납득하기엔 너무 추상적인 세상이죠.. 또한 누군가는 "차라이 사회주의가 낫다는 소리인가?" 로 들릴 수 있고.. 가출한 청소년도 누군가는 지켜주려 하지만 실질적으로 외면하고 바라보지 않는 것 자체도 거기에 시간을 투자해도 돌아오는 리스크가 싫어서 외면할 수 있는거라고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물 빠진 사람 구했더니 보따리 내놔라 라는 것처럼..) 도와주지 않을 것이면 불쌍하게도 보지말고 동정도 주지마라.. 라고 하죠... 사실 돕는걸 스스럼없이 하는게 좋지만 현실은 보더라도 피하게되는 세상이 된 현실이죠. 10:01 - 미츠하 반지코너 그리고 타키도 출연하게 되죠.. 게다가 이 에니메이션 영화 욕 많이 먹었죠.. 가출 비행 청소년범죄를 미화했다고..
일본의 여러 문제를 은유적으로 비판했다는 점은 좋았다만 그걸 설득력있게 그려내지는 못했다는게 너무 아쉬웠던 영화. 결말을 위해 개연성을 너무 버린 느낌. 일본의 싱황과 연결지어 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으나 외국인의 입장에선 오타쿠스럽게 보였을지도. 그외는 너의 이름은 만큼 아름답고 좋았다
저는 신카이감독 작품 중에 너의 이름은.과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스즈메의 문단속을 가장 인상 깊게 봤어요!! 특히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라고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공감하고 본 게 내용이 일본 열도가 우리나라처럼 분열돼서 싸운다는 거라 남북 분열된 우리나라 현실이 생각났고 신카이감독 특유의 영상미도 볼만 해요👍🏼
사실 저상황에 이름도 얼굴도 어디사는지도 모를 누군가가 재물이 되는 대신 맑은날씨가 돌아온다면 모두가 스가같이 말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재물의 주변인이라면? 그저 어쩔수없는일에 비탄하며 슬퍼하고 그리워하는것이 최선이였을까 하지만 주인공 호다카는 히나가 사라지는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싸우는것을 선택했고 세상 모두를 등지더라도 히나를 선택했다 이게 날씨의 아이에 미치는 포인트임 ㅠㅠ
각자 어려운 사정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하지만 다들 각자의 행복을 찾아가고.. 그래서 오히려 너의 이름은보다 재밌게 봤어요! 또 작가가 전달해주고 싶은 의미들을 곱씹어 느낄수 있었던것 같아서 좋았어요 ! ㅎㅎ 그리고 너의이름,날씨의 아이,스즈메의 문단속 세작품이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뭐가 더 좋은 작품이라고 정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 다 재밌어!
재밌긴 했는데 개인적으로 주인공을 응원하면서 봤다면 마지막 결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저처럼 중립(?)의 입장에서 봤다면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주인공을 응원하면서도, 도쿄가 잠겨 피해를 본 시민들에게도 이입해봤습니다. 영화에선 괜찮아. 원래 이런 거야. 꽃놀이 보러 가자 등. 적응해나간 시민들의 모습'만' 보여주는데 사실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더 많겠죠. 즉, 호다카의 선택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봤다는 겁니다. 그런데 호다카는 괜찮아! 라고 말하며 끝내는 것이 한 편으론 아쉬우면서도 역시 모두를 납득시키며 풀어내기보단 그냥 이렇게 결말을 낼 수 밖에 없구나 라는 감정이 공존하며 영화 감상을 마쳤던 것 같습니다. 영상에 나온 대로 분명 판타지스러운 작품은 맞으나, 현실적인 면도 같이 제시했기에 이런 의문점이 드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도 수작이며, 추천드리는 영화이긴 합니다.
시민들에게는 호다카가 피해를 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도쿄가 비에 잠기게 한 건 호다카와 히나가 아니었고 히나는 단지 비를 멈출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호다카는 소중한사람과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지만 비에 잠겨버린 도쿄를 되돌리는 것 중에 소중한 사람을 선택한 것 뿐입니다. 이 작품의 주제처럼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를 젊은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책임져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호다카는 원래 그런 세상을 소중한 사람의 희생으로 책임진다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핫한 국민연금 문제 같은 것도 이 영화의 주제랑 맞닿아 있네요. 출산율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일본은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미리 겪었고 그렇기에 이런 영화가 나온 거겠죠. 만약 이 영화가 다시 개봉한다면 이 영화의 주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결말에서 호다카가 확신을 가진 이유는 히나가 스스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임. 왜냐하면 호다카가 보기에 제일 기도가 필요한 것은 히나 자신이었지만, 히나는 늘 타인을 위해 기도하느라 단 한번도 스스로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 이제 호다카도 스가처럼 어른이 되었기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의심을 가지지만, 히나가 의무감에서 자유로워진 모습을 보고, 자신이 이 세상을 모두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바꾸었다고 확신한 것.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작품 속 세계가 아이와 어른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자에게 이 세상이 미쳐있는 이유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함. 날씨의 아이속 도쿄는 미쳐 있음. 비가 끊임없이 오고, 거리에는 범죄가 들끓고, 사람 등쳐먹는 악덕 블랙기업들이 수두룩함.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호다카는 가출 소년임에도 범죄가 잡히지 않기에 도쿄에서 새 삶을 얻을 수 있었고, 비가 오기에 히나를 만날 수 있었음. 호다카에게 이 세상이 미쳐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런 이유들 때문이 아니라, 어른들이 소녀가 희생되던 말던 신경 안쓰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희생자인 히나 스스로조차도 이것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모르는, 전체주의의 논리가 희생자의 정신마저도 잠식해버린 것을 아이이면서 동시에 외부인인 호다카는 알 수 있었던 것. 그래서 이후 날씨가 맑아지면서 어른들이 꿈꾸는 세계가 이루어질 뻔 하지만 결국엔 호다카가 히나를 구하는 데 성공하면서 아이의 사랑을 지키는 데 성공하게 됨. 이러한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많은 표현 방식을 사용했지만, 역시나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호다카와 스가가 대립하는 장면. 스가는 어른이 된 호다카고, 호다카는 아이 시절의 스가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장면임. 끊임없이 지금이라도 포기하라고 말하는 어른의 자신에게 총을 겨누는 호다카를 보여줌으로써 호다카 스스로도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내적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냐고, 나는 너와 달리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겠다며 총을 내밀며 울부짖는 과거의 나를 직면한 스가를 통해 스가에게도 과거의 선택에 대한 후회가 있음을 보여줌. 그리고 그런 후회나 의심이 행동이라는 확신으로 바뀌면서 변화를 보여줌. 평하자면, 날씨의 아이는 신카이 마코토 작품들 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작품임. 이전의 작품들에서 아이의 사랑을 지키고자 했던 주인공들이 결국 어른의 세계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운명을 이겨내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했다면, 날씨의 아이에서는 주인공 호다카가 어른의 세계를 전복시키고 끝까지 아이의 세계에서 아이의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것에 성공함. 그것이 엔딩에서 호다카가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했다고 말하는 이유. 또 반영론적 관점에서 이 애니는 2020년대를 앞둔 2019년에 나온 애니이고 당시 실제 일본사회의 현실이 장기적인 경제 불황, 우경화, 사회 갈등, 커지는 국제적인 갈등 등으로 어두운 상태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가올 2020년대는 더 이상 어른들의 비정한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 아이의 순수함과 인간다움을 회복한 시대로 나아가길 소망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음. 그런 면에서 감독이 꿈꾸었던 2020년대가 이루어졌다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을 세계는 지금과 같이 전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시대가 아닌,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그 장면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함.
신카이 마코토 작품중 가장 스토리가 좋았다...특히 여주인공의 어머니와의 슬픈 사연 배려심..어른스러움 책임감에서 나오는 서글픔은...가슴이 애인다... 경찰차에서 알게된 남주보다 나이 많은걸 알았을땐...여주에 대한 마음이 너무 크게 다가와 더욱 슬프고 애틋했다. 둘의 애절함도 너무 가슴아팠으나 행복한 결말이라 마음이 너무 따뜻해졌다
결말의 해석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드네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장문 주의) 날씨의 아이 속 세계는 호다카와 스가를 비롯한 어른들 모두에게 미쳐있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다르죠. 어른들에겐 그저 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범죄가 들끓기에 미쳐있는 것이지만, 호다카에게는 비가 내리기에 히나를 만날 수 있었고, 범죄가 잡히지 않기에 가출 청소년에다 총기 소지범인 호다카가 살아갈 수 있었죠. 호다카에게 이 세상이 미쳐있는 이유는 세계가 한 나약한 소녀를 희생시키려고 하면서도 소녀 스스로도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아이 어른 할 거 없이 박혀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히나 스스로도 모두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희생당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하죠. 호다카는 그런 전체주의가 만연한 세계를 바꾼 겁니다. 그래서 호다카가 청년이 되고 나서는 이전과 달라진 것 없는 모습에 의문을 품습니다. 정말로 달라진 게 없는 걸까.. 하고요. 그러나 히나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합니다. 바꾼 세계에서 히나는 더 이상 남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신카이는 불친절해서 호불호가 갈리는거지. 스토리가 부족한 게 아님 예를 들어 총을 버릴 때, 이제 필요 없다는 대사 하나 넣어주면 되는데 안 함 -> 처음 봤을 때는 총을 버린건지 안버린건지 모름 히나 몸이 투명해질 때, 투명해지고 있어라는 대사 하나 넣어주는데 안 함 -> 처음 봤을 땐 무슨 장면인가 싶음 호다카가 가출한 이유도 끝까지 설명 안 함. 빛 웅덩이를 찾아왔다는 모호한 설명으로 일관. 대사를 더 넣어줄 수 있는 부분에도 그냥 '응'으로 처리하거나. 표정 보여주면서 '헛'으로 처리하니까. 연기하는 성우들도 힘들듯
@@cheese.pizzabox-more 이야기가 진부하거나 유치해서 매력이 없다 => 스토리가 별로다 이야기가 난해하고 뭔소린지 몰라서 공감이 안간다 => 설명이 부족하다 이거 두가지가 구분이 안감?? 정말로 스토리가 개판이면 아무리 팬덤이 잇어도 일본에서 호소다마모루나 몇몇 하야오 작품보다 많이 보겠냐. 뭐가 다수의 의견인지 생각해봐라
@@리클레버-e5p 저의 정말 개인적이면서도 주관적이며 신카이 마코토 감독님의 ‘너의 이름은‘을 나름 즐기면서 본 입장에서 ’날씨의 아이‘를 감상한 평을 쏼라 쏼라 해볼테니 너무 급발진 하지 말아주시고 침착하게 들어주세요. 날씨의 아이의 장점에 대해서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날아는 영상미,사운드 트랙,작화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날씨의 아이에 단점에 대해서 제 개인적이면서도 정말 주관적인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날아의 첫번째 단점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일단 클리셰를 썼다는 점입니다.바로 남녀의 사랑이라는 일반적인 주제이죠.근데 이 주제는 너무나도 많은 영화에서 흔하게 볼수 있는 클리셰이기 때문에 사랑 관련된 영화를 많이 보신 분이나 아니면 영화 자체를 많이 즐겨보시는분이라면 주제부터가 너무 흔해서 진부하다고 느껴질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날아의 두번째 단점에 대한 저의 관점은 감독이 대중적으로 공감갈만하지 않은 요소를 집어넣으면서 거기에 신파를 넣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옳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공무원들을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었습니다.하지만 영화에서 공무원들의 행동은 현실에서 매우 정당하고 당연한 행동으로,경찰과 형사된 사람으로써 본인의 본분을 다하려는 사람들로 묘사되어있음에도 감독은 그 사람들이 호다카를 방해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라고 묘사했습니다.일반적인 사람의 눈으로 봤을때는,가출청소년이면서 총기를 멋대로 사용한 호다카는 위험한 범죄자로 보일수 있습니다.하지만 감독은 그 호다카를 제압하려는 공무원들을 오히려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어버립니다.즉,일반적인 대중의 눈에는 당연히 범죄자인 호다카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보일수밖에 없는데 영화에서는 그 부정의 이미지인 호다카를 제압하려는 공무원들을 강제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보라고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저같은 대중은 감독이 정해 놓은 명확한 선악 관계에 공감가지 않은 상태에서 감독이 집어넣은 신파라는 요소에 자연스럽게 공감할수가 없게 됩니다.그 신파란 희생당하는 히나와 그걸 막으려는 호다카,둘의 이별이라는 슬픔이죠.즉, 이 영화는 애초에 대중적으로 공감이 안가는 요소를 집어넣고 거기에 신파를 넣은게 화근이라고 생각합니다.부정의 대상 자체가 공무원이라는것 자체가 영화를 다시 봐도 또 봐도 게속 봐도 공무원이 긍정적인 이미지로 박혀있는 저 같은 인간들은 히나와 호다카의 이기적인 사랑이 전혀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날아의 또 다른 단점으로는 섹드립이라고 생각합니다.‘너의 이름은‘에서는 남녀간 몸이 바뀐 설정있었기 때문에 그 설정을 우리에게 주입시켜 영화에서 나왔던 남주와 여주가 서로 바뀐 남녀의 신체를 만지작거리거나 깜짝 놀라는 장면을 공감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영화적 설정이 있었다는걸 감안하고 볼수 있었지만,날아에서는 너의 이름은에 있었던 남녀간 몸이 바뀌는 같은 설정이 한개도 없습니다.즉,섹드립을 할 이유가 없는데 영화 중간 중간 뜬금없는 섹드립으로 스토리의 흐름을 방해한다고 느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보통 영화의 흐름과 상관없는 섹드립과 육체적 묘사를 한번도 아니고 영화속에서 수차례나 볼거면 차라리 야애니를 보는게 더 적합할수도 있었을것 같은 느낌이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날아는 섹드립을 할 명분도 없고,전작에서처럼 설정도 없는데 불필요하게 비교적 19+영화가 아닌 일반적인 사랑의 주제인 영화로 봤을때는 그런 섹드립이 스토리의 흐름에 불필요하다고 느낄수 있었던것 같고,사람에 따라서는 불쾌하다고 느꼈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