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패션에 최초로 바지 정장을 도입하며 '여성에게 자유를 입힌 패션혁명가' 라고 평가를 받는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 입생로랑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알아보자. 안녕하세요 세상의 모든 지식입니다 (^ ^) 우리 모두 지식인이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영상 만들겠습니다. 구독, 좋아요, 알람설정도 부탁드려요~ ^^ #입생로랑 #YvesSaintLaurent #YSL
개인적으로 생로랑으로 브랜드명도 바뀌고 안토니 바카렐로가 cd로 바뀌고나서...예전 입생로랑과는 전혀다른 대중적이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서 많이 실망하게 되었어요. 특히 이번 봄 컬렉션은 조금 충격적이였어요 예쁘다고 생각되는 옷이 진짜 없고 정말 네이버 쇼핑탭에서 보일만한 피스들이 보여서... 생로랑뿐만이 아니에요. 시대가 바뀌고 고객층을 바꾸기위해 전과는 다른 패션을 추구하는것도 좋지만 그것도 옷이 예뻐야 현재 고객들도 계속 찾아오죠. 돌체앤 가바나는 보는데 눈이 아프더라고요. 화려하고 플로럴패턴이 많은 옷들을 런웨이에 4명씩 세워놓으니까 어딜 봐야될지도 모르겠고 패턴도 그냥 유행하는 플로럴패턴 조금씩 바꿔서 사용하는듯한...
톰포드는 사실 디자인에만 관심이 있던 사람이 아니어서도 있지요... 평생을 패션에 바친 생로랑과 다르게 톰포드는 싱글맨부터 영화감독도 하고 영화 킹스맨 수트, 그리고 감독 2번째 작품인 녹터널 애니멀스까지... 톰포드와 생로랑의 생각과 입장차는 극과 극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이브생로랑이 톰포드를 질투한다는 발상이 나올수가 있는거죠? 톰포드는 1998년 브랜드가 '이브생로랑'이라고 할 시절에 '이브생로랑'의 기성복라인인 '생로랑 리브고쉬'디렉터를 맡았을뿐 당연히 오뜨꾸뛰르는 이브생로랑이 하였습니다. 톰포드가 재능이 다재다능하고 일중독이었으며 천재임은 맞지만 비스니스나 여러방향에서의 다재다능한 천재였을뿐 당연히 패션영역 그 자체만으로는 자신의 하위 라벨인 '생로랑 리브고쉬' 즉 프레타 포르테(기성복)브랜드를 맡는다하더라도 만족스럽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가끔 보면 톰포드 자체를 신처럼 추앙하는사람들이 많은데 시대를 객관적으로보고 업적만 따진다면 어떻게 톰포드가 이브생로랑한테 비빌수가 있겠어요 세상에..ㅋㅋ 여성에게 수트를 처음으로 입히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미술작품을 옷에 입히고 군복,사파리,시스루룩을 일반 패션에 접목시켰으며 흑인을 세계 최초로 1960년대에 모델로 발탁했던 사람, 그당시에는 상상도못할 기행이었을테죠. 패션관련서적들만 찾아봐도 이루말할수없는 업적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축구로 프랑스가 우승했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월드컵개막식 자체가 이브생로랑의 생에동안 만든 컬랙션이었습니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받고 코코샤넬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후계자가있다면 이브생로랑이다라고 말했고 크리스찬 디올이 죽으면서 디올의 이름을 걸고 컬렉션을 해줄사람이 고작 19살인 이브생로랑이라고 하며 유언을 남겼을정도인데.. 톰포드 진짜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저런식의 비교는 너무 무지한 발언인듯..톰포드도 어떤사람인지 하루종일 적을수 있을정도인데 아닌건 아닌거
@@yonas5221 당연 급이 다른데 질투라는 표현은 잘못한것 같네요 ㅎㅎ 이브는 패션계에선 피카소나 반고흐와 같으니깐요 저의 질투라는 비교적 지나친 단어때문에 열받아서 엄청 길게 남겨주셨는데요 비교의 의미도 누가 더 낫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ㅎㅎ; 단지 패선계의 나비효과를 말하고 싶었을 뿐이지요
좋은영상 보고 바로 구독 눌렀습니다! 음.. 근데 영상을 보면서 하나 아쉬운 부분이 있어 글을 남깁니다 그런데나 '데'라고 다음 얘기가 넘어가는 부분 등에서 대사가 이어짐이 조금은 어색한 부분이 있어, 대사와 대사간 연결되는 부분을 조금 더 다듬는다면 영상이 좀 더 멋있어질것 같습니다 혹시, 열심히 준비하신 영상인데 제 말이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시한 번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입생로랑과 디올은 자연스러운 결별을 한 건 아니고..입생로랑이 디올하우스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를 해 받아낸 보상금이 입생로랑 본인의 하우스를 론칭하는데 자본금으로 쓰였다네요. 당시 코코 샤넬이 본인의 하우스를 이어갈 후계자로 입생로랑을 점찍어두었지만, 입생로랑은 자기 브랜드를 운영하기 위해 거절했다는 후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