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8세가 2번째 왕비인 앤볼린과의 불륜과 사랑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았고 임팩트가 있었기에 다들 그런줄알고 또 이원복 작가의 먼나라이웃나라의 고증오류로 그랬지만 사실 다른 다섯왕비보다 캐서린과의 결혼생활이 제일 길며 앤볼린으로 인해 사이가 틀어지고 7년간의 이혼분쟁 전까진 금슬이 괜찮았습니다. 여기서 여러시각이 있는데 계속된 사산과 유일한 자식이 딸이고 나이가 차가는 캐서린이 더이상 자식을 가지기 힘들다는 판단이 든 후 부부관계가 틀어졌고 그 후 앤볼린이 들어온거죠. 다른 시각으로는 야사처럼 그냥 앤볼린에게 빠져서 돌아버린 망나니모드였다는 썰, 스페인과 프랑스와의 삼각관계와 당시 퍼져나가던 신,구교 이념논쟁으로 신성로마제국등 유럽전역의 혼란에서 한발 물러서기위해 앤볼린을 이유로 카톨릭과 관계끊고 성공회 창립 등등 썰이많죠 고증적으로도 캐서린은 중년이 되기전까지 당시 미의 기준에도 부합되었고 미인이라는 말에 어울립니다. 오히려 두번째인 앤볼린이 당시 시대상 미인이 아니기에 오히려 그런여자와 결혼하기위해 캐서린을 내치는것에 신하들도 이해를 어려워했죠. (물론 왕자가 없기에 앤볼린과의 재혼을 찬성하는 신하들도 있었습니다만 국민여론은 여전히 캐서린편 이었습니다. 그 예로 쫓겨나 궁을 떠날때도 백성들이 여왕이라고 부르며 조아린 기록이있습니다.) P.S 헨리8세가 가장 사랑한 여왕은 3번째인 제인시모어라는게 야사든 정사든 정설이라고 받아들여집니다. 그 예로 캐서린은 물론 그외의 여왕들과 결혼당시에 늘 헨리8세는 난봉질을 했고(물론 5대인 캐서린하워드나 그 후인 캐서린 파 때즈음엔 늙고 야사적으로 성불구상태에 준해서 안한게 아니라 못했을 겁니다.) 오직 3번째 왕비인 제인 시모어때 만큼은 야사로라도 이야기가 없습니다.
10대때 헨리 8세는 형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불타올랐던 것 같습니다. 캐서린은 굉장히 지적이고 정숙한 아름다움으로 당시 남자들의 이상적인 여인상이었다, 라고 알려져 있는데 많은 여자들도 그녀를 진실한 친구로 여겼고 국민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거기다 가장 부자나라의 공주님이니, 영국입장에서는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헨리 7세가 짠돌이인데가 이미 받은 지참금 돌려줘야 하는데 엄청써서 못 돌려주고 헨리 7세가 죽기 전까지 힘들게 산거에요. 그리고 캐서린 아빠랑 엄마도 신경 쓰지도 않았고요. 오죽하면 나중에 이사벨 여왕이 죽고 남편이 페르난도 2세가 딸 힘들게 고생하는 거 알면서도 무관심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