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만 언론이 띄어주고, 최순호, 김주성, 최용수는 역사속에 묻혀 버림. 농구에서도 허재는 요즘 애들도 아는데 이충희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음. 좀 불공평한것 같긴 함. 90년대 말에 최용수의 시대였으면 80년대 말에는 김주성의 시대였고, 80년대 전체를 통틀어서 대표팀의 기둥은 최순호였다. 차범근 아니었다.
97년..초딩 6학년이었는데 동네에서 축구하면 축구잘하는 애들은 다 자기가 최용수라고 주장했었음ㅋ 개들보다 조금 못하면 김도훈, 달리기 젤 빠른 애들은 서정원, 왼발잡이는 하석주, 골키퍼는 김병지ㅋ 축구못하는데 매번 골 넣는 애들은 이상윤. 그 시절이 그립네요 ㅎ 그땐 유럽축구를 모를때라 국대선수들이 최고 우상이었음
용수 형님 아틀랜타 올림픽 대표때 부터 팬시작해서 완전 열혈팬이었음. 한창 프로 축구 보러 다닐때 정작 이형님이 상무에 계셔 못보고 복귀 했을땐 내가 군대 가고 또 제대하니 일본에서 활약. 용수 형님의 공식적인 특기가 드리블이고 생각보다 마음이 여림. 국대에서 그렇게 승승장구하다가 한번 꼬이고 비난 받은 후부터 국대에서 참 그렇게 안풀렸는지.남들은 98년 최종 예선때가 최전성기라고들 하지만선수 나이로 보나 이제 연륜으로보나 시기적으로 2002년 대회일때가 가장 폼이 올라올 시기였다고 생각하지만 그 의외로 여린 마음때문에 그리고 미국전 골만터졌어도 비상했을텐데 더욱 주눅이 들어버리는 결과가 되어버렸음.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의 슛에 대한 분석은 오래전부터 같은 생각입니다. 공격수 입장에서는 여유와 타이밍이 매우 중요한데, 줄 타이밍을 한번도 아니고 두번 이나 늦었습니다. 다만 공격수다 보니 책임지고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는 숙명이지요~ 1998 월드컵에서는 최용수로 다 준비해놓고 폼도 좋았는데, 김도훈으로 선택한 차감독님의 미스가 선수 입장에서는 매우 속상하고 억을했을 것 같아요. 최용수 선수와 윤정환 선수의 콤비는 정말 다시 보고 싶습니다!!
일본 관동지방에서 15년째 살고있는데, 실제로 최용수선수랑 직접많이봤었던 재일교포분하고도 이야기를해보면, 축구진짜잘했다고 말하고 인성도 사나이라고 합니다. 이는 황선홍선수도 마찬가지. 고향이 달라서 성격같은건 많이 다르지만 한국이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일본분들도 많이 얘기해요. 영상 진짜 잘만드셨다.. 쩌네연
베르캄프가 아니라 쿨루이베르트 같은 느낌이었지. 깡쎄고 최전방 타겟스트라이커에 헤딩골도 많았던 선수. 황선홍이 베르캄프 느낌의 선수였고 쉐도우로 써도 될정도로 움직임 기술 패싱 다 갖췄었지 멕시코에 에르난데스 블랑코 투톱. 네덜란드 베르캄프 쿨루이베르트 투톱. 한국은 황선홍 최용수 황금투톱이 있었는데 황새 부상으로 떡발린거
국내용맞음 ..펠레 마라도나 베르캄프를 비교하는건. 진짜 오바지~~~멀로 봐서 특급인 그런 선수랑 최용수가 같은.급이라고 생각하는건지 ㅡㅡ. 펠레 마라도라처럼 미친 개인기가 됨? 2~3명을 그냥 가지고 놀 실력이 최용수가 없었는데?? 그냥 한국 특성 골문앞에서 잘 받아서 잘넣는.선수였지 ㅡㅡ 비교할껄 비교해야지 ㅡㅡ 펠레. 마라도나랑.비교하냐 ㅡㅡ 미친 누가 그리비교했음? 그둘선수만큼 신급 실력은 최용수는 절대 아님 ~~~ 아시아에서 잘했지 그냥 ㅡㅡ
과거 특히 한일전때 욘스 보면 ㄹㅇ 지금 웃긴 아저씨 인상과 180도 다름 인상 존나 쓰면서 툭툭 신경전 벌이는데 일본애들 쫄고 그러는게 보일 정도였음 나중에 j리그 갔을때도 처음엔 일본선수들이 왕따시켜서 패스도 안주고 그랬는데 결국 역으로 다 휘어잡아서 이 영상에 나온 아베 유키 처럼 일본애들이 형님형님 그러면서 주말에 최용수차 대신 세차해줬다고 함..
94년 미국월드컵때 조진호 대신 신인왕 최용수가 대표팀 뽑혔으면 더 좋았을텐데. 조금 아쉬움.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도 황선홍 최용수 투톱으로 가야 했는데, 결과는 황선홍이 선발출전, 그리고 98년월드컵 멕시코전에 최용수가 선발 나왔다면 그것도 조금 아쉬움이 남음. 그랬다면 아마 더 높이 날았을텐데..
98년만 해도 해외축구에 대한 정보가 없던 때라 이란에게 2-6으로 깨져서 차범근으로 바꾼건데 월드컵 예선을 너무 잘 해서, 국민들은 본선도 잘 치를걸로만 기대했음. 차범근만 기존 이민성, 최영일로는 수비 안된다고 보고 비쇼베츠 때 몸좋은 수비수들 테스트 했지만 잘 안되고 윙과 윙백 수비력이 너무 떨어지고 중미가 없어 혼자 외로이 고민했음. 멕시코 때 원톱에 노정윤 볼란테로 한 작전이 꽤 성공했는데 하석주 퇴장 이후로 왼쪽 라인이 붕괴되고(고종수가 수비가 안되니), 덩달아 오른쪽 라인도 붕괴되니(굴욕의 멕시코 개인기) 무너짐. 멕시코 이기고 네덜란드전은 수비로 가려다가, 멕시코 지고 여론이 안좋고 축협 압박에 결국 네덜란드전은 투톱으로 했고 결과는 아시다시피...차범근도 감독은 처음이라 뚝심있게 수비축구를 못했고 네덜란드도 벨기에에 충격의 무승부(클루이베르트가 ‘강간범’ 소리 듣고 수비수 때려서 퇴장)로 총공격 모드라...세계와의 차이를 전혀 모르던(투지면 이길 수 있다는 마인드) 시대였음....차범근이 노트북 쓴다고 놀라던 시절인데...수비수들은 홍명보 외에는 전술이해 없이 대인마크 중심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