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한일전 역사상 백년 천년 만년이 몇번씩이나 지나도 잊히지 않을 명승부다. 2008 베이징 야구 준결승전, 2010 밴쿠버 피겨 여자 싱글 김연아 vs 아사다 마오, 2012 런던 축구 동메달 결정전, 2018 평창 컬링 여자부 준결승전보다 1992년의 이 쾌거가 대한민국 올림픽 도전사에서 가장 유쾌상쾌통쾌한 한일전이다.
황영조의 올림픽 금메달은 손기정옹의 마지막 가시는길에 한을 풀어준 그런 의미를 담은 금이었다..그것도 일본선수와의 사투끝에 이 악문 황영조 봤을거라 생각한다...그만큼 독한 정신력이 있었기에ㅠ그ㅠ살인적인 습도와 다의에서ㅠ견뎌낼수 있었던거지...아프리카 애들이 확실히 마라톤에 눈뜨기 전이기도 했지만 높은 습도와 더위는 극동 아시아가 아프리카보다 유리하단게 증명되기도 했지 요즘엔 그것마저도ㅠ통하지ㅜ않고
@@user-lx5th2rd4v 누가 이런 힘든 운동을 하려고 하겠나? 마라톤강국은 케냐 이디오피아 정도인데 이 나라는 해발고도도 높은데서 체형도 마라톤하기 적격이고 게다가 인센티브가 많지 거기는 마라톤하면 몇 세대가 먹고살수 있을 정도로 성공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에 경쟁도 어마어마하고 악착같이 헝그리정신을 갖고 뛰는데 상대가 되겠나?
@@nohpresident 그건 늘 나오는 말이고 육상은 생활체육의 역설로 말할 수 있습니다 생활 체육이 잘 되어 있어 그것으로만 빠져도 먹고 살 만하니 목숨 걸고 운동 안 하는 겁니다 현재 한국이 그래도 비벼볼 수 있는 육상 종목들은 생활체육 활성화가 안 되어 거기 목숨 거는 거고요
황영조랑 같은 고향 사람입니다. 저희 고향에 가면 황영조 기념공원도 있구요. 당시에 저는 초등학생 꼬마였는데, 새벽 녘에 어머니가 마라톤을 보고 계셨어요. 황영조가 일등으로 들어온다고... 어린 나이에도 어찌나 신기하던지... 같은 고향 사람이라 더 신기하기도 했고요. 황영조 아버지는 술 고래에 가정 폭력도 있어서, 어머니가 물질하며 황영조를 키웠습니다. 다행히 어머니의 폐활량을 그대로 물려받아 세계적인 마라토너가 된 것이죠.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 가면 황영조 기념 부조도 있으니 가실 일 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들려서 역사를 추억해 보시면 좋을거 같습니다. 아. 그리고 백년손님에 나온 이봉주 선수의 부인 되시는 분은 바로 황영조의 국민학교 친구로 황영조가 소개시켜준 인연이십니다. 처가댁도 바로 같은 동네에 있어서 황영조 기념공원에 가면 황영조 집과 이봉주 처가를 가리키게 해 놓았답니다. 암튼 자랑스런 순간이었습니다.
이 말이 나올 수 있는게 황영조 선수가 예전부터 겪고 있었던 족저근막염이 있었는데 그 통증이 너무 아파 시달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올림픽이 되던 해에 나갈까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나가서 금메달을 따고 휴식과 회복에 전념을 하기로 했는데 육상협회가 그걸 가만히 두지를 않아서 결국 족저근이 찢어지고 수술대에 올라가서 수술 후 회복이 성공되었지만 그 계기로 은퇴를 하게된 것입니다.
@@musicmagazine9861 4년뒤 애틀랜타 올림픽 선발전이 서울에서 열린 동아마라톤인가 그랬는데 그 경기에서 선두를 달리다가 갑작스럽게 이탈해서 탈락한거 기억나는데 그게 원래부터 안좋았던데였군요.. 그 경기에서 이봉주가 스타디움 들어가서 역전당하고 2위한것도 생각나고 결국 그렇게 이봉주, 김완기, 김이용 선수가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는데 당시 여론은 이봉주, 김완기는 나름 인지도 높은 선수였고 김이용은 무명 대학생 선수라 김이용이 황영조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요.. 황영조는 그 길로 젊은 나이에 은퇴하고 말았는데 당시엔 참 안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