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맨살의 이야기. 들으면서 기가 차는 “실제 과거” . 너무나 필요한 것입니다. 겁쟁이 대학교수 나부랭이 들은, 용기있게 우리 민족의 민낯을 고발할줄 모르는 소시민 들이며, 지식인들이 그러한 우리 민족은 불행한 방향으로 갈겁니다. 다행히 박종인 기자님이 계셔서 최후의 보루로서 활약해주셔서 , 그나마 다행입니다.
차일혁 총경의 아버지는 호적이나 족보에 차유선으로 나옵니다. 차일혁 총경이 차경석의 서자라는 설은 해방이후 출생자로서 차경석 무리들과 아무런 접촉이 없었던 아들 차길진의 주장으로 근거로는 그런 소문이 있다는 몇명의 구전뿐입니다. 차일혁 총경이 차경석의 아들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인 것처럼 일단 사실로 보아야 할 것도 아닙니다. 참고로 차경석이 정읍에서 교주노릇할 때 차일혁은 홍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차총경님이 51년에 이두황 묘를 발굴했다는 일화는 민문연 쪽 자료인데 근거도 부족합니다. 당시 차총경 근무 상황 상 전주에 와서 발굴했다는 게 동선이 안 맞고 이두황 묘는 개장흔도 없습니다.
이두황이 미화되지는 않아서 다행입니다. 이두황을 보면 가충하고 행적이 묘하게 비슷하네요. 인생의 승리자이기는 하지만 역적질을 해서 후대에 욕먹는 케이스 가충도 나중에 손호의 형벌이 잔인하다고 놀리다가 손호한테 황제를 시해한 역적한테 적용하는 형벌이라고 가충이 황제 조모 시해범이라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까서 후대에 역적이라고 인증 이두황도 차일혁과 그 후손들한테 민비 시해범이라는 사실을 인증샷 당하게 됨
작가님 결국 월대가 복원 됐는데요.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하여 몇가지 질문을 남깁니다. 월대 복원측 입장에선 광화문 앞에서 월대의 흔적이 발견 됐으며, 당시 월대에 사용했었던 기둥을 사용하여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저 기둥의 출처는 어디이며, 또 그 월대의 흔적이란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고요. 또한 많은 사람들이 왜 월대 복원에 그렇게 목을 매는지 또한 궁금합니다.
보화교 교주 차경석 ( 증산 강일순 선생의 제자였음. 일제 농간 과 부패한 조선향리, 친일세력 들에 의해 정읍에서 암살? 당한 것으로 전해 짐 ) 이, 독립군 자금지원을 줄이 고 좀더 융통성 발휘 했다 면, 지금의 증산도가 거시기 처럼 되지않았을 터, 안타까운 영웅 차경석 성도 의 일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