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 #야구 #ML레전드 한국:미국 서울올림픽 야구예선, 1988년 미래의 메이저리그 레전드가 대거 포진된 미국 대표팀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메이저리그 진출한 선수가 선발투수라니... 최강전력 미국을 상대로 졌.잘.싸.. 9회까지 결과를 알 수 없었던 쫄깃한 명경기 함께 보시죠.
당시 한국 대표팀 에이스인 박동희 선수는 혹사 누적으로 인해 부상중이었지만, 올림픽때문에 완쾌가 안된 상태에서 출전. 이때문에 박동희선수는 매년 부상으로 ,점차 공 위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롯데 입단후 관리를 봤지못했고 게다가 사람들은 "박동희가 엄살을 부린다!" 라는 오해를 봤습니다 (최강 해태,빙그레 등판 지시에는 부상을 이야기하고, 당시 약체 OB와 쌍방울 경기에는 그냥 출전) 92년 장티푸스로 시즌을 거의 출전를 못했지만 한국 시리즈 MVP 수상. 93년 군방위 복무를 하며 제구가 잡혔지만 , 공 스피드가 145K 로 떨어지면서 95년 활약후 하향세. 97년 삼성 트레이드후 삼성에서 은퇴를 하게됩니다. 대학때 박찬호처럼 미국에 갔다면(애틀란타에서 영입시도)
벤 맥도날드 메이저리그 통산 78승 투수. 너무 일찍 은퇴하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통산 100승은 넘길수 있었던 투수인데 아마 30대 초반에 부상때문에 일찍 은퇴한걸로 알고 있음. 이 당시 미국 투수진도 짐 애보트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은데 훗날 앤디 베네스(155승)나 찰스 나기(129승)도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 이상을 한 유명한 선수들로 지금보면 후덜덜한 투수진
정리를 하자면 1. 시범종목 1988 대회까지는 시범종목이고 1992 대회부터 정식종목 2. 프로는 참가 금지 프로는 참가가 금지되어서 당해년도에 대학을 졸업하는 선수는 프로에 입단을 하지 못하고 실업에 입단을 했다가 대회가 끝나고 프로에 진줄 (참가선수의 소속을 보면 대학/상무/실업으로 구성되어 있음) 2000 대회부터 프로의 참가를 허용!
김기범이 황금 좌완으로 1984~1985년때 전성기였고 1988년때는 직구 스피드가 많이 떨어져서 변화구와 콘트롤 위주로 투구했음. 일본과 준결승때는 동점 1점홈런 허용하고 3루타 얻어맞아 무사3루 1대1 상황에서 박동희로 교체됨. 박동희가 2실점.(김기범 패전 투수) 1대3 패배로 결승 진출 실패. 3~4위전에서 푸에르토리코 에게 0대 7로 져서 허무하게 4위로 마감.
그때 일본의 구원투수한테 한국 타자들은 철저히 농락당했죠. 이듬해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때도 구대성을 선발내고도 1:5로 져서 한국, 대만, 일본 3개국 공동우승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두번 연거푸 한국을 물먹였던 투수가 훗날 LA 다저스에서 박찬호 선수와 한솥밥 먹었던 노모 히데오 선수였죠. ㅋ
선동렬과 박동희의 고교 대학시절 스팩만 놓고 평가할때는 박동희성적이 훨씬 좋았습니다. 박동희의 치명적인 단점은 변화구 결정구였습니다. 박동희전후로 아마야구를 분석해도 박동희를 능가할만한 아마추어 국제대회에이스가 최동원 구대성. 참고로 선동렬은 아마추어때부터 몸을 아껴서 한두대회만 잘했습니다.
@@ppazizic 선동렬씨 아버지가 고대 감독에게 부탁해서 등판간격을 조율했습니다. 혹사는 박노준이 당했습니다. 선동열은 복이 많아서 대학때 등판도 별로 없었고 프로때도 왠만하면 동시대 타팀선수보다 등판간격이 꾸준히 지켜왔습니다. 김성근옹 만난 투수는 대부분 고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