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59, 가난한 집안, 학창 시절, 운이 좋아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을 해서 자수성가를 하였다. 중매로 스물다섯에 어여쁜 아내를 만나 행복할 날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돈이 나를 괴롭혔다. 나와 아내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 집을 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것 같은 자식 새끼 둘을 낳았다. 그러나 돈은 턱없이 부족했기에, 새벽 4시 반엔 목욕탕 알바를 했고 야근이 없는 11시 부터는 대리운전을 했다. 어느날 나는 과로로 쓰러졌고 아내는 내게 울면서 무리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내 새끼들에겐 우리가 보지 못했던 빛을 보여줄꺼야.' 이 다짐도 잠시, 하루는 아들녀석이 학원을 가지 않고 피씨방에 다니다 나에게 걸려버렸다. 나는 처음으로 아들의 뺨을 쳤다. 내가 한 고생을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져 너무나도 화가 나고 미워서 진심으로 친것 같았다. 그날 내가 술을 마셨는데 눈물이 너무나도 많이 흘러, 물을 마시는 것 같이 밍밍했다. 그때쯤 가끔씩은 나는 한두병에 취할 수 있는 청춘들의 인생이 너무나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 자식들이 정신을 차리고 대학에 갔고, 어찌저찌 인생을 살다 직장을 잡고 결혼을 했다. 아들녀석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냐고 물었더니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 반만큼만 따라가고 싶습니다.' 그날 역시 아내와 단 둘이 술자리를 하고 있는데, 서로 지난 날들을 이야기 하며 회상하던 도중, 5잔 정도 넘어가니 눈에서 눈물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지금까지 물같았던 술이 너무나도 달게 느껴졌다.내가 느껴왔던 원망, 슬픔, 기쁨, 감사함이 모두 섞인 이 눈물은 내 술잔의 쓰디 쓴 맛을 덮어 단맛만 남게하였다. 내 친구들은 청춘이 끝났다고 단언한다. 나는 내 인생에서 청춘이란걸 느껴보지 못한것 같다. 어쩌면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하는 이 일상 자체가 청춘인게 아닐까? 나는 곧게 서있는 새파란 벼보단 힘없이 굽어있는 가을의 황금빛 벼같은 인생이 더 좋다. 비록 그들보단 힘이 없어보이지만, 우리는 풍파를 견뎌왔고, 그것 역시 청춘이었음을 알고 있는 역사의 산 증인이다. 아들녀석이 댓글이 많이 달렸다고 햐서 부랴부랴 달려왔습니다. 많은 관심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언젠간 여러분들도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 혹은 조부모가 될 것입니다. 강요는 아니지만, 지금 이 삶이 힘들다면 힘든대로, 즐겁다면 즐거운대로 견뎌낸다면, 나중엔 제 말이 더욱 다가올 것 입니다.
난 어릴 적 엄마가 너무 미웠다. 불편한 다리로 학교까지 실내화 가방을 주러 오던 모습, 큰아들 생일이라며 초등학교 반 친구들에게 줬던 서툰 글씨의 초대장과 외로운 왼팔 하나로 만들던 떡볶이. 그까짓 학교 나무 바닥 조심히 걸으면 되는 것이고, 반 친구들에게 떡볶이보단 비싼 치킨을 바랬던 그렇게 어리고 어리석었던 내 갈증은 불편해도 당당하게 웃으셨던 엄마를 더 밉게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 사춘기가 늦게 찾아온 그때 엄마 같은 여자랑은 죽어도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윽박을 질렀다. 아직도 그때 처음 본 엄마의 눈물은 내 기억속에 선명히 자리 잡고 있다. 처음 본 엄마의 약한 모습이었고 내겐 강한 모습만 보여줬던 엄마가 처음으로 아이처럼 울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후 군대에 가기 하루 전 하얗게 된 엄마의 머리를 보며 엄마에게 "우리 엄마 많이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나보네 나 이제 성인이고 군대 잘 갔다올게 큰아들이 맘고생만 시켜서 미안해"라는 말을 끝으로 입대하기 하루 전 엄마 몰래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진주로 내려갔었다. 훈련소 연병장에서 줄을 서고 기다리던 중 누군가 나를 애타게 찾는다는 방송이 들려왔다. 엄마였다. 머리를 검게 염색하시고 나타난 엄마는 "머리가 하얗게 된 건 세월 탓이지 네탓이 아니야 엄마는 네가 내 세상이야 그러니 몸 다치지 말고 조심히 다녀와"라고 하셨다.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압력이 빠지듯 눈물이 나왔다. 그 사랑이 너무 과분해서 무거웠던 내 마음을 걷어내줬다. 그 후로 취업에도 성공하였고, 현재 내나이 34살 작년 2022년 나를 세상이라 부르시던 나를 제일 사랑해줬던 엄마를 떠나보냈다. 마지막 엄마는 나에게 이루고 싶은 소원 하나만 말하라고 하셨다. 난 망설임 없이 엄마와 같은 여자와 결혼하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엄마는 이제 내 하늘이 되어 그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고 하시며 웃으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의 마지막 눈물이었다. 난 엄마가 해줬던 모든 추억과 온기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 사랑이 너무 과분했고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나의 사랑스러운 어머니 덕분에 찢어지고 성장할 수 있었다. 평생 감사합니다. 2023년 올해 봄 엄마와 같은 여자랑 결혼한다. 나의 밑거름이 되어 주심에 큰 나무가 되었고 이젠 열매를 맺어보려 합니다. 사랑에는 서툴지만 엄마가 줬던 사랑에는 익숙해서 미래의 나의 아이들에게 헌신하려구요. 끊임없이 사랑합니다 어머니..
청춘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청춘입니다. 그래서 소중한 것인 줄 모르고 낭비합니다. 청춘은 시간이 지나 추억으로 바뀝니다. 청춘을 떠올릴 때 한 방울 눈물이 흐른다면 그 추억에 모든 것이 담긴 겁니다. 청춘은 시간이 아닙니다. 십 년 전도 일 년 전도 청춘이고 한 달 전도 어제도 청춘이며 이 노래를 듣고 있는 이 순간도 당신의 청춘입니다. 사실 우리는 언제나 푸르렀습니다.
20살입니다. 수능 최저를 못맞춰서 재수하러 갑니다. 이 플레이리스트를 새벽에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지네요.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교 지겨운 3년을 보상받듯 20살을 즐길텐데 저만 혼자 다시 고3이 된것같은 기분에 억울하고 막막합니다. 다시 해도 내가 더 잘할 수 있을까 불안하고 힘겹지만, 봄날이 오기를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겠습니다. 2024년에는 원하는거 모두 이루기를…. 이 글을 본 모든 사람들도 평생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교회언니의 1주년 추모 온라인모임을 하다가 20년만에 화면에서 본 후배가 한 이야기가 생각 나네요 재수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 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때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하며 공부 하던 시절이 지금 생각하니 노력이 헛되지 않았더라네요 당시 밥을 사주며 힘내라고 위로해주던 오늘 추모식의 주인공인 언니의 말이 생각 난다며.. 그분이 -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더 나은 기회를 가지게 된다는 내용이였어요 ㅡ 힘내세요! 당신의 긍정적인 생각이 나은길로 인도할거라 믿어요 당신 하기 나름입니다!!
살아보니 세상에 '실패'라는 건 없더라구요. 내가 잠시 내려놓고 포기한 것들이 결국 내게 도움이 되는 행위들이었다는 걸 몇 년 뒤엔 꼭 알게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잠시 괴롭고 힘들더라도 버티다보면 결국 살아지고 원하는 방향이던 아니던 무엇인가 이루어질것입니다. 힘내세요.
어머니의 외도로 중학교 2학년때 이혼이라는 걸 경험해야 했고 아버지는 방황을 엄청 하셨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아버지의 힘듬을 지켜보다보니 도저히 나도 힘들다고 입밖으로 꺼내지도, 절대 나도 힘들다고 말못했습니다. 그렇게 다른 생각안하고 공고로 진학을 했고 자격증을 취득해 관련된 회사에 입사해 무사히 방위산업체도 마치고 회사가 다닐만해 어린나이지만 6년이란 시간을 회사에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전 아버지와 저녁식사를 하는데 아버지가 한말씀 해주셨습니다. “아무개야, 넌 혼자서 큰거야,그래도 잘 커줘서 고맙다.”라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처음으로 얼마나 운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에도 우직하시고 무뚝뚝한 아버지에게 그런말을 들은게 처음이였습니다. 이제 저의 나이는 27살, 제 인생의 새로운 도약을 할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치앞도 모르는 새옹지마 인생.. 하지만 지금껏 그래왔듯이 태연자약하게 마음을 굳건하게 지키고 이 모든 청춘의 순간을 즐기고 싶습니다.
14살때 부모님 돌아가시고, 외로운 학창 시절을 보내고 군대 신병 훈련소에 입대해 기초군사 훈련 끝나고 퇴소식에 부모님이나 가족이 와서 군복 상위에 계급장 달아주는 계급장 수여식때 아무도 오지 않아서 가만히 혼자 서 있다가 울음을 터뜨린게 어언 28년전이네. 먼 미국땅에 이민와 바쁘게 살다보니 ....낼모레 50이구나..청춘이여.
@@user-uq3ek5zn4w 사실 청춘은 youth가 맞아요. springtime은 제 잘못된 실수고요, 이 글은 허점이 너무 많아요. 이 글은 제가 십대 후반때 써서 지금은 스물이 되었는데 이 글을 볼 때마다 늘 헛소리같다고 생각해서 삭제라도 할까 고민했어요. 하지만 이 글조차도 공감해주는 사람도 많고 제 십대의 청춘에 쓴 어설픈 글이기에 더 완벽한 거 같아요. 아무튼 길어졌지만 이렇게 이 글을 해명할 기회를 주셔서 고마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청춘이 다 무슨 소용이렵니까, 그래봐야 언젠간 무너져버릴 하늘을 겨우 붙잡곤 숨을 연명하고 있는 것을. 푸르던 하늘도, 사랑했던 이와 몸을 섞으며 영원을 약속하던 시간들도 달디 달던 솜사탕의 맛도 결국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청춘은 왜이리 아픕니까? 모두가 이런 아픔을 숨기고 사랑하는 겁니까? 이 모든 아픔을 전부 감당하고도 사랑할 만큼 청춘은 푸릅니까? 분명 내가 사랑하는 건 퀴퀴한 냄새가 잔뜩 베인 매트리스와 빛바랜 꽃무늬 벽지가 아닌데도 그날의 공기가 자꾸만 날 먹먹하게 합니다. 이건 무언가요? 그리움입니까, 청춘에 대한 사랑입니까. 한때의 고통도 지나보면 청춘이라는 이름의 추억이 되어 버린다던데 난 내가 어릴 적의 사무치던 고통을 영원히 잊지 않길 바랍니다. 이 시간들을 적어도 나는 기억해야 하니까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이 순간을 나마저도 알아주지 못하게 되는 날이 올까봐서 말입니다. 너무나도 아팠던 순간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잔인한 일임이 분명하지만, 청춘은 그런 고통마저도 동경하게 합니다. 우매한 늙은이들은 청춘이란 이름 뒤에 숨어 자꾸만 불행을 동경하려 들고요, 청춘이란 작자는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젊음이란 아름다움에 홀려 그만 서슬퍼런 가시에 온 몸이 찢어지는 것도 모른 채 어린 장미를 끌어안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무섭습니다. 감히 내가 사랑하는 것이 가난일까봐요, 영원할 줄 알았던 불행일까 봐, 빠지지 못할 매트리스의 퀴퀴한 냄새일까 봐. 내가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쳤던 것들을 청춘이라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난 청춘이 두렵습니다.
이 댓글 하나 때문에 영상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습니다... 글이 너무 좋아요 지우지 말아주세요 묘하고 형용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감정을 너무나도 잘 풀어주셔서 오래도록 읽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건 별개로 우스갯소리지만 자꾸 헤어질결심 송서래처럼 읽게 되네요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톤으로...
1983년(나중에 알았다)... 그 당시 내 나이 4살... 부모의 존재도 모른 상태에서 보육원이라는 곳에 보내졌다. 너무 어려 어떻게 입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히 부모님 얼굴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 원망이라는 것은 없다. 당시 원장 선생님과 나를 길러 준 보육사 선생님들께 감사할 뿐이다. 삐뚤어지지 않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잘 보살펴 주셨다. 어떤 알고리즘인지 모르겠지만 옛날 어떤 분의 결혼 사진이 올라왔다. 사진 분위기가 내 부모님 나이대인 듯 하다. 뭔지 모르겠지만 전엔 이런 감정이 없었지만 사진을 보니 조금은 울컥한다. 내 부모도 이렇었겠지... 나를 태어나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하게 된다. 나를 버렸을 수도 있고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지만 난 전혀 원망하지 않는다. 우연히 나를 이 사진으로 인도한 알고리즘이 나를 우수에 젖게 한다. 나의 부모도 이런 사진을 남기고 나를 낳았겠지... 새벽 시간 잠이 오지 않는다... 어쨋든 열심히 살아야 겠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청춘이라 말미암아 변명하는 젊은 영혼들의 어리석음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끝없이 붕괴되고 넘어졌다. 충동적인 마음 속 헛된 꿈을 한아름 안고 달린 모든 순간을 도전이라 불렀고 주체할 수 없는 호르몬의 끌림에 가진 것 모두를 내바치는 것을 사랑이라 칭하며 살아가는 시리도록 아픈 청춘들의 세상. 사실은 그들이 사무치게 부러웠다. 세상의 풍파에 기우뚱 기우뚱 하면서도 꼿꼿이 일어나 개화하는 그들이.
18살밖에 안먹었지만 1년전, 꿈을 잃어버렸단 이유로 1년간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낸 학생이에요. 아직도 꿈이 없어져서 후회하고 있지만.. 이젠 일어나야겠죠.. 1년이나 허비했는데 더이상 앉아있으면 변명이겠죠.. 저도 청춘의 힘으로 한번 다른 많은 꿈을 꿔볼게요. 그리고 당신의 글쓰기 실력에 놀라고가요. 책을 좋아해서 이런 문학적인 글에 항상 마음을 뺏기거든요.
40이 되었어여. 시작부터 삐걱대요. 몸쓰는 외벌이에 남매키우는 가장이 무릎 연골나가 손목 힘줄나가 결국 설 전에 목 디스크 수술로 강제 6개월 휴직입니다. 하하하 청춘이겠죠? 매번 큰 파도가 오는데 다들 어떻게든 견디고는 계신거죠? 여기 댓글속에 존경받는 부모는 되기 어려울지몰라도 누는 끼치지 않는 부모가 되렵니다. 가장들 응원할게요. 우리라도 여기서만은 아프다 말해보고 응원도 해주자고요! 나 아파!! 근디 긍정긍정 긍정!!! 힘낼거야
작은 빌라에서 맞벌이 부모 밑에서 오빠와 함께 자랐는데, 항상 부모님 기다리며 옥상에서 컵라면을 먹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어렴풋 하지만 그 몇계단도 위험하다며 저를 혼자 못 내려가게 했던 4살 터울 오빠는 지금 장가를 갔네요. 그렇게 좁고 힘들게 자라던 우리는 아파트로 이사도 가고 차도 2대가 될 정도로 집 형편이 좋아졌는데 마치 거짓말처럼.. 어느날처럼 학교 끝나고 집에오니 엄마가 거실 바닥을 닦는데, 무엇이 필요하다 사달라했을때 버럭 화를 내시더라고요 왜인지 어안이 벙벙 했는데 곧 눈물을 참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가 암이라네요 그때 제나이 14살.. 암은 드라마에나 나오는 병인줄 알았을때였어요. 어머니는 병원에서 일하시는 분이였고 그 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누구보다 잘 아셨겠죠. 그말을 듣고도 와닿지 않은 저는 평소와 다름없었어요 학원을 안가고 친구랑 놀고 들어온 날 티비를 보시던 아버지는 저에게 처음으로 쳐다도 보지 않은채 무뚝뚝한 말투로 거짓말은 하지말자고 하시고 방에 들어가셨어요 그후로 이제 작은 거짓말도 못하는 제가 되었네요 당신이 나를 사랑했던 그 사랑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느끼고 있어요. 제 나이 17살때 아버지는 힘든 투병 끝에 하늘로 가셨고 3년동안 절 잃어버리기도 하시고 찾기도 하셨고.. 전 외면도 했고 그리워도 했습니다 강한 항암제에 기억을 잃은 아이도 되고, 말은 못하셔도 제가 가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절 쳐다만 보시던게 기억이 나요 어떤말이 하고 싶으셨을까요.. 어떻게 견디셨을까요... 그 힘든 시간 3년이나 혼자 버티시면서 무슨 생각하셨을까요... 너무 가슴이 아프고 먹먹합니다... 이제 저도 커서 30대가 되었고 제가 결혼하고 싶은 남자도 있어요 아버지는 어떠실까요? 아버지가 투병중일때 저를 키워주신 이모부와 이모를 저의 친 부모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남자에요 아버지가 내려주신 천사가 맞다면 이제 이 남자와 새 삶을 살아보려고 해요 확신이 없어서 지금껏 망설였지만 오늘 여쭤보고 싶어요 항상 회식하고 오셔서 술냄새를 풍기며 용돈주시던 모습, 다음날 씻고 술냄새 다 빼고 아침에 샤워하시고 나오셔서 말끔해진 모습으로 사랑하는 우리 공주라며 포근하게 안아주시던 모습, 매번 오빠와 저를 학교까지 태워다주시고 어머니의 직장까지도 모셔다 드리던 모습, 잊지 못해요. 마지막 난 당신을 왜그리 붙잡았을까요..? 가지말라고 애원했는데.. 무서웠나봐요 당신이 없는 세상이.. 날 지켜주던 나의 큰 나무가 없어진 느낌이라서.. 아마 이런 말을 못해서인가봐요 이제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네요 제가 정말 아쉬운건 저만 사랑을 받아서인가봐요. 아버지께 드릴 사랑이 이렇게도 많은데 말이에요 어디선가 항상 저를 지켜보고 있을 당신 사랑해요 아빠! 보고싶어요
내가 20대가 되어보니 부모님의 20대가 궁금했다.. 엄마의 20대가..아빠의 20대가... 오래된 앨범에는 젊은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에는 풋풋함이 눈빛에는 생기가 보였다.. 앨범에 본 부모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예쁘고 멋졌다.. 한편으로 지나간 부모님의 세월이 나는 슬펐다..분명 부모님도 나의 부모이기 전에 빛났던 청춘이었을텐데...점점 흰머리가 많아지고 몸이 아파지는 것을 볼 때마다 세월이 야속하다고 느낀다...내가 청춘에 가까워질 때 부모님은 청춘에 멀어지는구나를 느끼는 요즘..나를 낳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았더라면 그 누구보다 멋지고 재밌게 살았을 것 같은 우리 부모님.. 고맙습니다..당신의 청춘을 나에게 넘겨줘서..나라는 아이를 태어나게 해줘서..저도 있는 힘껏 청춘을 보내겠습니다..감사해요..
지금의 고3인 저를 포함한 학생들이 가졌던 고민들은 언젠가 추억이 되고 나중에는 떨쳐낼 수 있는 고민들이겠죠? 그 순간에 아팠던 것들이 아물고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가겠지만 그 아픔이 뭐라고 사람을 힘들게 할까요? 그래도 다들 소중한 사람이고 아파했던 그 순간에서도 빛나고 있었을것입니다. 제가 하고싶었던 말은 모두들 그냥 빛나는 사람이고 지금까지도 계속 빛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모든분들이 자신의 인생을 만끽할 가치가 있는 분들입니다. 청춘은 모든 사람의 인생 매순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계셨으면 좋겠습니다.
20대의 어느 날 은근히 쌀쌀했던 저녁, 아버지의 갑작스런 전화 한통. '술 한잔 할래?' 솔직히 귀찮았지만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툴툴거리며 나갔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수많은 사람들 속에 아버지는 홀로 전어 한 접시를 시켜놓고 소주를 드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였을까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이상하게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렇게 울고 있는 저에게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술잔을 채워주셨습니다. 왜 우는지 안물어보신 아버지가 고마웠습니다. 저도 이유를 몰랐으니까요..
이 동영상이 이토록 몽환적이고 애틋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에는 썸네일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굳건히 카메라를 응시하는 신랑의 눈빛이나, 아직 젊음의 빛이 가시지 않아 아리따운 신부의 얼굴은 오십이 넘어서도 창창하게 또 무겁게 빛나는 우리 아버지의 눈빛과 아직도 그를 바라볼 때 풋풋한 설렘을 느끼며 미소짓는 어머니의 얼굴 같아 괜스레 마음이 묘해진다. 오래된 운전면허증 속 긴 생머리에 버건디색 립스틱을 바른 도도한 얼굴로 아버지를 한 눈에 반하게 한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 눈에 얼마나 예쁜 사람이었을까, 그런 어머니를 사랑해 함께 스물 아홉의 말미를 믿음과 애정으로 불태운 아버지는 어떤 열정을 눈에 담은 청년이었나. 두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식장에서 손을 맞잡았을까. 그런 걸 생각하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씩 설레어 온다.
밤을 새고 공부한 다음날 새벽에 느꼈던 생생한 환희와 야생적인 즐거움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다시 그것을 소유하고 싶다. 완전한 환희나 절망. 그 무엇이든지.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것은 그렇게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삶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 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한번 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전혜린, 심보선
군대가기 전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인사하고 입영열차를 타러 떠나려는데 아버지는 끝까지 누워 TV만 보고 계셨다. 나는 다녀온다는 소리를 못 들었나싶어 다시 크게 다녀 올께요. 외쳤지만 아버진 끝내 일어나지 않으셨다. 이상하다싶어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마지막으르 우는 모습으로 보내기 싫으셨던 아버진 끝내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셨다. 나도 눈물이 쏟아져 얼른 문을 닫고 뛰어 나왔다. 솔직히 난 장교임관하고 상무대 가는거였는데 늦게 낳은 아들 군대보내는게 그리 슬펐을까? 아버진 이제 팔순을 넘기셨다. 이전엔 씨름도 즐겨 하시던 아버지 종아리가 이젠 내 팔뚝만하게 되었다. 하지만 난 언제나 아버지를 이세상 최고의 히어로로 기억한다. 부디 오래 건강하시길...
올해로 중3이 된 지금, 아직 청춘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지만 사람들이 이미 겪어본 각자의 청춘들을 읽어보며 가늠할 수 없을만큼 크나큰 소중한 가치라는 정도는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매일매일을 후회없이 행복으로 속이 꽉 채워지도록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공부하는 학생때에 이런 진부한 말을 적어 놓는 것이 살짝 어색하기도 하고 부끄럽지만 나중에 이 글을 보곤 지금의 소중한 추억들을 회상하며 청춘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해서 남겨보고 싶네요. 새벽에 쓰느라 졸려요. 더 밝게 빛나며 나를 더 밝게 비출 내일의 태양을 기다라며 자야겠습니다. 모두들 내일 하루도 화이팅하세요.!
저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그대여ㅎㅎ 저도 올해 중3이 되는 중학생인데요. 이 글을 보며 많이 반성했습니다 저렇게 미래를 향해 밝은 마음으로 다가가는 사람도 있는데 난 왜 항상 비판적일까?.. 나도 남들과 평범하게 살아갈 순 없을까 하며 되돌아 봅니다. 중3 많이 힘들어질 시기입니다 우리 서로 힘내서 밝은 길을 향해 나아가고 싶네요.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모르지만, 화이팅입니다!
후덥지근한 교실의 여름과 절정의 여름, 레몬향이 넘실거리는 첫사랑의 맛이 나 햇살을 받아 연한 갈색으로 빛나던 네 머리카락, 돌아갈 수는 없어도 펼치면 어제처럼 생생한, 낡은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단편 필름들. 말미암아 절정의 청춘, 화성에서도 사랑해는 여전히 사랑해인지, 밤이면 얇은 여름이불을 뒤집어 쓴 채 네 생각을 하다가도, 열기에 부드러운 네가 녹아 흐를까 노심초사 하며, 화성인들이 사랑을 묻거든 네 이름을 불러야지 마음 먹었다가도, 음절마저 황홀한 석자를 앗아가면 어쩌지 고민하던 그러니 따끔한 첫사랑의 유사어는 샛노란 여름 첫사랑, 여름. 유지원
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원망했다 그것도 많이 했다 내일 당장 죽어도 눈물 하나 흐르지 않을거라 단언했었다. 저딴 식으로는 살지 않을거라 맹세했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잊고 있던 어린시절을 떠올릴때마다 사랑과 헌신이 아니었던 순간이 없었다 중학교 때 imf로 부모님은 사업이 망하시고 굳은 얼굴로 집에 계실 때 나를 바라보던 얼굴이 화난 얼굴인 줄 알았는데… 내가 커서 아이가 생기고 보니 자식을 보며 마음을 다잡던 결연한 부모님의 다짐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랑합니다 부모님. 당신이 저에게 주신 사랑과 헌신을 제 자식에게 온전히 돌려주겠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히 제 옆에 머물러주세요.
어릴적에 아버지가 너무 미웠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버지가 우리 누나들에게 가하던 폭력과 허구한날 어머니한테 했던 모든짓들이 나의 7살 그 시절 기억에 모두 박혀있다 그리고 그 당시 어머니가 서럽게 우시면서 아빠와 떨어져살고싶다고 누나들에게 말한것이 나는 아직도 생생하다 어머니는 그후에 이혼도장을 찍으셨고 나를 나중에 데리러오겠다며 아빠와 단둘이 나를 납두고 누나들과 외가로 내려가셨고 길지않은 시간후에 날 데리러오셨다 나는 그때 아버지에게 제대로된 인사조차 못하고 아버지와헤어졌고 그때부턴 어려서 기억이 잘 나지않지만 그 지옥같던 시절은 기억이난다 단칸방에서 엄마와 누나셋 나 이렇게 5명이서 그 좁디좁은 공간에서 지내는것은 아주 끔찍한 기억이었다 근데 어머니는 우리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고 새벽에 들어오셔도 아침엔 누구보다 기쁘게 웃으시면서 우릴 반기셨다 이 좁디좁은 공간에 사는것보다 아빠와 살던것이 더욱 불행했고 그때가 더 행복하셨다는것을 나중에 깨달았다..중1 여름방학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오랜만에 아버지를 보았다 많아진 흰머리..정장사이로 나온 술배..많이 망가진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키운정이 있어서인가 우릴보자마자 인사하셨고 친할머니의 장례가 끝날무렵 아버지가 무릎을꿇고 사과하셨다 물론 우리가족은 그 사과를 받지않았고 유일하게 나만 아빠와 살게되었다 이후엔 뭐 아버지에게 멱살잡힌거빼고 트러블은 없다 지금 나는 중3이고 곧 고1이기에 아버지와 아직 살고있다 물론 주말엔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술집도 도와드리고 누나들 얼굴도 보고있다 나는 소위 말하는 급식이지만..ㅋㅋ누구보다 어머니를 동경하고 사랑한다고 자부할수있다..오늘은 2023 12 31 한해가 끝나기전인날..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인날이다.
빛나야할 청춘이 점점 어두워져가는 우리 사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도 작고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모든 소년 소녀들 부디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길 아련하고 눈물젖게 만드는 과거는 마음 한켠에 아름답던 추억으로 남겨두고 현재를 살아가며 모두에게 빛이 되길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주변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며 살아가는 훌륭한 사람이 되길 부디 외롭고 쓸쓸한 인생이 아닌 찬란하고 빛나며 눈감기 전 후회없고 좋았다는 생각이 들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함과 용기를 가질 수 있길
21살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누구보다 빛나는 청춘으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지금은 젊지만 젊음은 정말 한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지금의 젊음을 즐기랴고 노력하는 중이예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글쓴이님이 하신 말씀을 항상, 항상 같게 말씀을 하십니다. 명심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저도 후회없고 좋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노력할테니 다른 저희 또래들도 생각을 갖고 미래를 향해 앞서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오 글쓴이님!
올해로 중학교 3학년이 된 학생입니다. 우연히 이 플레이리스트를 발견하게 되었고, 노래가 너무 좋은 탓에 괜히 잘 쓰지 않던 댓글을 써봅니다 ㅋㅋ 최근 운이 좋지 못해서 이래저래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제가 걸어온 짧고도 긴 16년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그 16년의 한 켠에는 항상 가족들이 차지해 주고 있었습니다.오빠들에 비해 많은 시간을 함께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엄마에게도, 앞에선 말은 잘 안해도 사실 뒤에서 묵묵히 지탱해 준 아빠에게도 조금 쑥스럽지만 항상 나를 아껴주는 오빠들에게도 사실은 한 번도 함께 지낸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 해 본 적 없이 살아왔고 엄마가 허리 숙인 만큼 이제 내가 조금 숙여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빠가 뛰어온 만큼 내가 조금은 뛰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며 항상 생각은 하지만 이 생각을 전달하기엔 부끄럽고 용기가 부족해서 나 혼자라도 보게끔 기록을 남겨봅니다… 혹여나 더 커서 보게 되면 흑역사로 남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그래도 줏대있게 계속 써내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사랑스런 말만 잔뜩 늘어놓고선 또 괜히 싸우면 속상할 것 같아요. 언제나 그렇듯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주어 고마워요. 이번 일이 내가 더 성장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거라 굳게 믿고, 나중에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되었음 좋겠어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들이 청춘일까요? 만약 그런 것이라면 솔직히 말해서 드라마틱하게 멋지진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조금 아픈 것 같아요. 앞으로 겪게 될 청춘이 그리워 질 때가 될때, 다시 한번 이곳에 찾아오겠습니다.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래요.
기억도 나지 않는 우리 아빠... 내가 다섯살인가 여섯살때 배타시다 돌아가셨지... 그것도 우리엄마가 낡은 장롱안에 고이 스크랩 해논 1985년 신문인가 작은 칸으로 무슨 벌크선 선미 폭발로 몇명 실종... 지금은 내방 선반위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우리아빠.. 솔직이 앨범봐도 함께했던 추억이 기억이 나질 않아 너무 슬프내요 왜 정말 작은 기억이라도 안남겨놓고 떠나신건지...원망스럽기도 해요 그래도 뒤늦게 재혼한 우리엄마가 절 이렇게 강하게 키워줘서 지금은 아버지께 자랑하고픈 손주 당신닮은 저의 아들도 낳고 잘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한번을 주위 친구들처럼 그 "아빠""아버지" 라고 불러 보지 못한 내인생 그게 한으로 남습니다. 기억은 안나지만 마음으로 의지하고 살아가
the first song gives me the feeling of yearning for something i don’t know. makes me feel nostalgic about the times that never existed. the song makes me feel uncomfortable yet comfortable. maybe this is what people called loneliness. i want to keep this song only for myself.
아이를 낳고서야 내가 부모가 되고나서야 내가 얼마나 큰 행복이였는지 알게되었다 아직도 너무 그리운 나의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택시운전사 말이 없으셨지만 미소는 항상 지으시며 우리 장녀딸이라고 말해주시던 새벽에 운전하고 오시면 내가 좋아하는 김밥을 꼭 사오셔서 식탁에 두셨다 몇일 전 납골당에 다녀왔다 가끔 꿈에서 나타나 말없이 미소 지으신다 그리운 아버지, 존경하고 사랑하고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82년생인데 국민학교 3학년때 엄마 아빠가 싸우시고 형과 나만 집에 남겨두시고 엄마는 집을 나가시고 아빠는 1-2주에ㅜ한번씩 들어서 먹을거 사놓고 다시 집을 나갔다….. 학교를 혼자 어떻게 다녔는지 밥은 어떻게ㅜ먹었는지 기억도 잘안난다 … 남은 기억이라고는 학교 갔다온뒤 집에 들어가기 무서워서 앞 계단에 앉아 그냥 멍하니 엄마는 언제 오나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분, 청춘은 항상 과거랍니다. 다 지나간 뒤에야 아..그게 청춘이었구나 깨닫게 되죠 ㅎㅎ 젊음을 당당하게 맞서고 쓰러지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또 일어날 것이다라는 희망찬 마음으로 매사 힘차게 정성스럽게 헤쳐나아가길 바랍니다. 그래서 님이 청춘을 더듬어갈 나이가 오면 그 때 그 과거가 자랑스러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국의 청춘들을 응원합니다🎉
썸네일의 교회에서 소박하게 찍은 결혼사진과, 제목의 그저 청춘이라고 적힌 두글자가 대체 무엇이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저를 끌어들인걸까요. 어떤 사람들은 반가워서, 어떤 사람들은 그리워서, 어떤 사람들은 힘든 마음에 위로를 원하기에 들어온걸까요. 사람들은 서로마다 각자 다른 이유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 비슷한방법으로, 비슷한길로 같이 걸어가고 있는것 같아요. 길이 끝이 보이지 않을수도, 힘들수도 있지만 그래도 같은 길을 걸어가는만큼 등수나 체력같은건 상관없이 저희 서로 위로하면서, 격려하면서 힘내서 같이 걸어가요.
댓글을 읽으며 청춘은 언제인지 곱씹어봤습니다. 모두의 지금이 청춘인 것 같아요. 인생 자체가 청춘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각자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청춘에 포함된다는 것이겠죠. 이처럼 청춘은 삶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 영상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위로와 그리움, 기쁨과 눈물을 나눈 것처럼 가끔은 스스로의 과거와 미래에게도 가혹한 삶의 무게보다 위로와 희망을 건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른 이의 청춘은 곁을 떠나도 각자의 과거와 미래는 지금의 청춘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니까요.
MZ세대라고 불리는 세대로 살아가고 있는 저 이 곡들을 들으니 부모님의 세대로 살아갔으면 어떨까 생각도 해봅니다. 지금 저희 세대 힘들다고 하지만 그때도 그때만의 힘듦이 있었겠죠 저 시대의 낭만 느껴보고 싶네요. 후 일 태어나는 아이들은 저의 세대를 느껴보고 싶어 할까요?
찰나의 찬란함으로 영원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랬다. 단언하자면 화양연화. 보랏빛의 그 청춘. 초신성의 은하수. 그 아래 있는 너와 나. 그것이 나의 찰나이자 영원이다. 은하수를 올려다보는 너와 나의 눈에 뿌려진 별빛. 비록 도망쳐 도착한 곳이지만, 그 곳이라면 푸른 그것이 아닌, 보라색의 청춘을 덧그릴 수 있겠다는 확신을 심게해준 그 순간에 기대어 산다. 감당할 수 없던 말의 부피. 그 무의미한 말들이 나른하게 공기중을 유영한다. 네가 주었던 그 사랑은 도대체 뭐길래 날 아직까지 그 청춘을 그립게 한다. 푸를 청에 봄 춘 이라지만, 내 청춘은 보라색의 그 겨울이었다. 그러니까, 네가 내 청춘이었다고.
청춘은 뭘까 어느 누구에게나 청춘은 있을 것이며, 어느 누구나 순간을 회상하며 가슴 뭉클해지지 않을까. 그럼 청춘은 한낱 지난 꽃 핀 계절에만 국한 되는 것 일까. 단지 순간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면 그 자체가 청춘인 것이 아닐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만 그만큼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회상하며 . 가까이 있을 때는 고난이며, 멀리서 돌아 봤을때는 추억이라 치부하는 청춘에 관하여..
모든 청춘들이 알겠지만 저도 취업준비를 하면서 마음고생 몸고생 참 많이 했습니다 집에서는 취업은 언제쯤 할거니 그렇게 그 좋은시절을 보내면 안된다 이런 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스트레스와 불안감 미래가 안보이는 저의 삶이 너무 비참하고 무서웠습니다 누군가 게임처럼 정말 게임처럼 정해져 있는 길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각하며 8개월의 취준기간을 끝내고 당당히 취업 성공을 해서 11월 1일 부터 직장에 다니구있습니다 청춘 말 그대로 청춘입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있구 그 누구에게나 빛나는 시절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민 많을 시기 미래의 불안감 누구에게나 있던 시절이구 인생 선배분들도 다 걸어온 시간이겠죠 화이팅입니다 여러분
This playlist reminds me of a childhood memory of my grandmother stuffing me with a sweet cherry pie. Although I initially felt discouraged as I ate, I realized I would cherish this moment long after seeing my grandma's smile. That was before she gave me a cup of tea with 12 sugar cubes in it...
@@aprilsanchez8985 My deepest condolences go out to you. I know how it feels to lose someone dear, and that it's an awful experience. I just wanted to share a quote someone told me while I was going through a loss myself, "Don't frown because it ended, smile because it happened". I hope it brightened your day a little.
날이 밝으면 대학 합격 발표가 나옵니다. 새벽 두시 반인데도 눈이 말똥말똥 하네요. 고등학교 3년 생활하면서 매순간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3년의 끝맺음을 맺은 것만으로도 난 잘해온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아직도 내가 지원한 대학과 학과가 내가 정말 가고 싶어하는 곳인지 확신은 들지 않습니다. 추상적인 꿈과 희망으로 지원한 곳도 있고, 그냥 성적에 맞춰 안정적으로 지원한 곳도 있고, 부모님이 기대하시는 타이틀을 보고 지원한 곳도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그 중 한 군데만이라도 좋은 소식이 떴으면 하는 마음이네요. 1년 뒤, 2년 뒤, 3년 뒤쯤 내가 어느 곳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 알 순 없지만, 발표를 뜬눈으로 기다리는 지금 이 새벽의 마음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내가 얼마나 간절히 무언가를 원했었는지를 말입니다. 혹여나 합격했다면, 처음의 간절함을 잊지 말고 그 순간에 감사하길, 그리고 혹여나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면, 난 무언가를 열망할 수 있는 사람임을 기억하고 좌절하지 않길 바랍니다. 잘은 아니더라도 정직하게 달렸고 내 나름의 땀과 눈물로 지새웠던 지난 3년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열매로 맺힐 것임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가장 가고 싶다고 여긴 한 군데를 최초합으로 붙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장학금도 탔어요. 다른 곳이 다 예비번호도 못받은 불합격이어서, 마지막으로 여길 확인할 때 정말 두려웠습니다. 합격 두 글자를 확인하고 흘린 눈물은 기쁨보단 안도의 것이었습니다. 아직 정말 실감은 나지 않아서 그런 건가 봅니다. 추상적인 꿈과 희망으로 지원한 곳인 만큼 들어가보면 생각과는 많이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부딪쳐보려 합니다. 청춘은 실패로 끝나는 수많은 도전 가운데서 피어나는 한 줄기 희망같은 것이니까요.
합격해서 잘 다니고 있습니다. 개강하고 아직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나름 잘 적응하고 있어요. 지나가다 나름의 고민으로 이 노래를 듣는 모든 분들, 원하는 곳에 어떻게든 언젠가든 닿을 수 있기를.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 방황하고 계신 분들은 자신만의 길과 행복을 찾아내시기를. 저 또한 아직 다 이뤘다 말할 순 없어 쑥스럽지만 이렇게 몇자 적어봅니다.
지금 28살.. 이지만 어릴때부터 심한 산전수전 다 겪었었고 혼전임신이지만 많이 사랑했던 사람과 꽤나 일찍 24살에 결혼해 신혼생활도 별로 없이 결혼생활 했어요 내 가정을 꾸리는거에 욕심이 컸었는데 임신하고 어 하다보니 아이가 태어났고 초반엔 정말 너무 너무 행복했어요 하지만 남편과 저 둘다 꽤나 어린나이에 결혼에 육아에 뛰어들어 고생 좀 많이 했어요 그러다보니 서로 평소에도 많이 예민해져 있었고 싸우게되고 그게 한두번을 넘어서 아이가 이제 막 뒤집기 할때까지 서로 미친듯이 싸웠네요 아이가 뒤집기 할때쯤 서로 이혼하기로 하고 별거하며 지내다 결국 법적으로 이혼하게되고 저는 혼자서 아이 키우는데 전남편이 양육비도 안보내고 아이도 보러 안오고 또 제가 보지 못했던? 그런 무지막지한 모습에 놀랬기도하고 화도 많이 나고 억울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네요 연애도 꽤나 오래했고 그래서 더욱 확신을 가졌었는데 이혼하고 나니 정말 딴 사람 같더라구요 지난날에 내가 기억하고 있던 사람은 어디간껄까 그 모습이 진짜는 맞나 뭐 이런 생각이 드네요 그 어릴때 제가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좀 더 좋은 인생을 살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어요 아직 20대지만 지난날을 글로 쓰기엔 제 인생이 너무 일이 많았고 정말 누구보다도 힘들게 살았았고 나름 남들도 위하며 잘살아왔다 생각했는데 자꾸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니 정말 이제는 내가 뭐가 문제가 있나 의문이 들고 살 의욕이 안드네요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 생각하는데 매번 안좋은일만 생기니 아이 키우면서도 항상 불안하고 내 아이한테까지 이런게 전해질까봐 너무 불안하고 내 자신이 너무 자책스러워요 전남편은 제가 기억하는 좋은 사람이 아니였고 남이 되고 나니 이제 저를 본 성격대로 대하는것 같은데 너무 적응도 안돼고 아이도 보러 안와서 아이는 또 아빠를 찾는데 전 그 상황에서 또 무너지게 되고 그냥 매일 일상이 너무 힘들고 무섭고 방법을 모르겠어요 그냥 별로 살고싶지가 않아요 근데 아이는 옆에서 엄마 엄마 거리며 이쁜짓 많이 하는데 내가 버텨야지 싶으면서도 현실에 무너져요 버티고 싶은데 버틸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요 그냥 너무 힘들어서 다 포기하고 싶은데 아이가 눈에 밟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요 정말 과거로 돌아갈수만 있다면 내 인생 생각하면 전남편 만나기전 과거로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아이 생각하면 그건 또 아닌것같고..진짜 너무 너무 힘드네요 이걸 누가 읽을까 싶지만..
정분아 우리는 영원을 약속하지 말자 영원은 우리에겐 너무 짧고 우린 그것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사이잖아 비록 우리가 여름의 제목은 아니더라도 여름의 두번째, 세번째 문장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난 있잖아 두려웠어 결국 남들처럼 어른이 되고 청춘을 잃을까봐 너도 그랬니? 그래서 청춘이 끝나기전 우리의 촌스러운 사랑이 끝나기전 스스로 내던진거니? 너가 매일 작은 풀 한포기라도 꽂아주던, 비워진지 오래된 그 꽃병은 먼지가 뽀얗게 쌓이고 너가 자주 쓰던 유선 이어폰을 쓰는 사람이라도 보면 아직도 멈칫하게 되는데 난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걸까? 너가 없는 삶은 너무 평화로워서 무섭게도 평소같아서 새로 피어난 새싹마저 너의 끝을 양분삼아 피어난거 같아 탓하게 되는데 난 궁금해 어떻게 사람이 죽으면 그게 끝일수가 있을까 분명 어딘가 존재할거 같은데 조용히 아주 조용히 우리가 닿을 순 없는걸까? 우리에게 영원은 너무 짧았던거지?
청춘은 왜 푸를 청 자를 쓰나요 내 자욱한 청춘은 푸르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속수무책 젊음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뜨거운 영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생긴 흉터들에 남 몰래 흘린 눈물들이 가득합니다. 소란스러운 미래도 거울 속 우정들도 빨갛게 올라오는 마음도 그 어느것도 아프지 않은것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새 빨간 청춘은 푸르지 않습니다.
다른 노래를 찾아보다 Sea Pearl님의 플리를 또 보게 되었습니다... 검정치마의 감성 쩌는 앨범 사진이 섬네일인데다 제목도 청춘.. 너무 새벽 감성 뿜뿜할 듯한 영상이라 지나칠 수가 없더라구요 Sea Pearl님은 새벽감성의 그런.. 뭔가 느낌을 잘 아시는 것 같아요.. 기분이 몽글몽글하고 뭔가 울적한 그런 느낌? 제목 작명 센스도 좋고 섬네일 사진도 항상 눈에 띄어서 또 보러 오게 된 것 같아요 everything도 제가 새벽감성으로 엄청 많이 듣는 노래예요 좋은 플리 항상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구독 하고 갈게요 잘 자요
내가 20대 초에 아이를 낳고나서 몇년만에 만나본 못난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니 한없이 작아보여서 한참을 울엇다. 그때의 그감정이 무엇이엿는지.. 참. 어릴적 부모님이 엄청 커보이고 쌔보이고 산같이 보였는데.. 내가 이제 35살이 되고 돌이켜보면.. 한없이 작으셧던 부모님이엿던것이다... 부디 건강하시길 멀리서 빌어본다..
오래되어 빛바래보이는 결혼사진과 청춘이라는 두글자의 제목에 홀린듯 들어와본 플레이리스트에 나가지 못하고 한참 댓글을 감상했네요 청춘이란 참 신기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같아요 10대의 끝자락 19살, 인생을 살아온지 고작 17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의 미래의 첫 걸음을 첫 시작을 그려야한다는게 너무나 두렵고 막막하지만 나중에 돌아봤을때 후회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성과를 이뤄보고 싶어요 점수 하나에 문제 하나에 연연하는 이 시기도 모두 청춘이기에 겪어나가는것이겠죠 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서 고등학생 시절을 돌아봤을때 그때의 땀과 눈물이 지금의 내가 되었구나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멀고 긴 인생이라는 서막에 조심스레 한 발자국 내딛어 보는 나의 용기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발자국에 담긴 나의 눈물이 시간이 흐르면 꽃밭이 되어 날 마주해 주는 날이 오겠죠? 나를 포함한 이 모든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든 어떤 삶을 살든 이 청춘을 기억하고 소소한것에 웃어보이며 나답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어제 아버지 돌아가신지 40년된 기일이었어요 제가 10살때니깐 저도 딱 50 이네요 엄마가 술을 올리면서 '청춘을 다 바쳤네' 이러시는거에요 '엄마 그래도 자식들 잘 키우셨잖아요' 이 말을 목구멍에서 맴돌다 못했습니다 과연 내가 잘컸나 싶기도 하고 그냥 죄송했습니다. 제아들이 크고 있어서 엄마 맘이 더 크게 제맘에서 울립니다 앞으로 더 잘하고 효도하겠습니다 음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