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문명의 이기가 아무리 좋아졌다고해도.. 사람의 행복이 그것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죠. 차라리 핸드폰 인터넷 없던 시절이 사람들에게는 더 행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응답하라 시리즈 보면서 느끼는게... 요즘 아파트에 10년 살아도 옆집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어요....
일본인들이 많이사는 해외에 거주하던 80년대 초에 마츠다 세이코를 알게 되었고 당시 그녀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기억이 생생해요. 저도 영향을 받아 세이코컷을 하고 다녔어요. 큰 헤어브러쉬도 들고 다녔어요. 계속 빗어줘야 옆머리가 예쁘게 휘날리거든요. 수업 시간에도 틈나면 머리빗고....😂 하니 덕분에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가 다시 떠서 기쁘네요. 요즘에 데뷔해도 세이코가 다른 아이돌들 다 발라 버릴거라 생각합니다 😊
마츠다 세이코는, 1962년 3월10일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어린시절을보냈으며,친가와 외가 집안모두 대대로 명문가에 과거 성을 소유한 성주의 후손의 집안 명문 가문이며, 세이코가 태어날당시 난산으로인한 가사상태였지만 잘 이겨내고 명랑하고 활발한 성격의 세이코였습니다. 1978년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유수한 연예인들을 배출한 '미스 세븐틴 콘테스트'에서 제멋대로 비너스로 우승, 소니사가 그녀의 가청력을보고 확신! 세이코는 가수의 꿈을 키워나갔으나, 연예계 활동을하면 무조건 퇴학을 당하는 미션스쿨을 다니던 세이코. 연예계활동이 허락된 호리코시고등학교로 전입! 또 다른 난관은, 집안의 완강한 연예활동 불허, 반대에 부딪히게됩니다! 하지만, 세이코의 가수에대한 집념으로 부모님을 설득해 겨우 허가를 받아내는데 그 조건은, 3년안에 성과없으면 관두고 돌아오겠다는 조건으로 허락을받고 극적으로 소속사와 계약체결! 하지만, 이번엔 소속사의 재정상태가 안 좋아 파산위기상태의 선 뮤직! 세이코에게 모든 회사의 사활을걸고 데뷔시킴! 그 때 세이코의 나이 18세, 1980년. 1980년, 2번째로내논, 하니가 부른 푸른 산호초가 엄청난 대히트! 그 후, 1980년부터 1988년까지 24곡 연속으로 오리콘 차트 1위를 달성. 프로의식이 아주 철저한 세이코는,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동안 질투와 시기 그리고 온갖 루머들을 이겨내며 오직 프로정신으로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무도관공연등, 음악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있으며, 중장년층 팬은 물론, 젊은 층의 여성팬들도 상당히 많음!.. 마츠다 세이코의 오랜 팬으로써, 마츠다 세이코를 모르는 분들을위해 글을 썼으며, 뉴진스 하니 또한, 호주와 베트남의 이중국적으로 베트남에서 과거 공산주의 잣대이념으로 반으로갈라진 상황에 환영받지못하는 하니였지만, 세계와 특히 어렀을때부터 호주 태권도도장에서 일한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태권도를배우고, 호주 커버댄스팀에서 K-POP을 추던 하니! 대한민국에서 데뷔 환영과 응원할께! 달려라!~~달려라!~달려라~하니! 이 세상 끝까지 달려라 하니~!......
@@dkan0910 전 압니다 ^^ 영화 러브레터 통해서도 알게 됐기도 하고… 8~9년전부터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푸른산호초 영상이 돌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때부터 알기도 했었습니다. 근데 노래를 알고 있는것과는 별개로 원댓글의 얘기는 그걸 말하는게 아닌데요 ㅋㅋ 그 노래 자체에서 느껴지는 감성들을 가지고 말한건데.. 이해를 못하시는듯 ㅋㅋㅋㅋ
@@PETBOY 전 압니다 ^^ 영화 러브레터 통해서도 알게 됐기도 하고… 8~9년전부터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푸른산호초 영상이 돌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때부터 알기도 했었습니다. 근데 노래를 알고 있는것과는 별개로 원댓글의 얘기는 그걸 말하는게 아닌데요 ㅋㅋ 그 노래 자체에서 느껴지는 감성들을 가지고 말한건데.. 이해를 못하시는듯 ㅋㅋㅋㅋ
맞아요 ! 설레임 청량함 밝은 느낌 뭔가 두근두근 "도끼도끼" 하는 그 느낌을 매우 살린 노래라서 버블의 시대적 배경과 너무 잘맞아요. 당시 비행기가 조금 일찍 도착할거 같았는데 극적인 연출을 위해 비행기를 하늘에서 멈춰세웠다라고 했져 세이코의 한마디면 날아가는 비행기도 멈춰 세운다라는 농담이 만들어진 전설적인 방송 ^^
1. 데뷔곡인 裸足の季節 뿐 아니라 青い珊瑚礁, 夏の扉, 風は秋色, チェリーブロッサム 등은 모두 故 三浦徳子(미우라 노리코)님의 작사입니다. 세이코짱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에게 있어 세이코짱의 이미지컬러를 ‘옅은 핑크’로 설정했었다고 하죠. 青い珊瑚礁의 가사 중에 渚は恋のモスグリーン(해변은 사랑의 모스그린(이끼색, 황록색))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옅은 핑크가 모스그린 색과 잘 어울려서 썼다고 합니다. 2. 이 渚は恋のモスグリーン(해변은 사랑의 모스그린)이라는 가사 덕분에 한동안 해변식당에서 큰실말이라는 같은 색의 해초가 들어간 메밀국수인 もずくそば(모즈쿠 소바)가 한동안 해변 데이트의 대표음식이 되었다고 하죠. 3. 데뷔곡 裸足の季節 후렴부(사비)에서의 세이코의 고음이 밝고, 달콤한 목소리로 ‘캔디 보이스’라는 평을 얻자 과감하게 두번째 싱글인 青い珊瑚礁에서는 사비로 곡을 시작하는 ‘サビ頭’의 구성을 선택하게 됩니다. 같은 시기에 활동하며 Y.M.C.A, 傷だらけのローラ등을 히트시킨 사이조 히데키(西城秀樹)는 곡의 구성을 보자마자 ‘이건 노래를 정말 잘부를 수 있는 사람만의 특권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4. 이 곡의 전국적인 히트로 세이코의 헤어스타일인 聖子ちゃんカット(세이코짱 커트)가 80년대 전반을 대표하는 스타일이 될 정도로 엄청나게 유행하게 됩니다. 일본 위키피디아에는 올리비아 뉴튼 존의 1977년 앨범 ‘Making a Good Thing Better’의 스타일에서 따왔다는 설이 일반적이라고 써 있습니다만 세이코 본인도 호리코시 고등학교 재학 당시부터 머리 스타일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한 바 있고, 앨범 ‘SEIKO MATSUDA 2020’나 ‘SEIKO MATSUDA 2021’의 통상판 쟈켓에 실려 있는 재학 당시의 사진을 비교해봐도 큰 차이는 없어 보여, 특별히 레퍼런스가 있었다라기보다는 그냥 그 당시 유행했던 헤어스타일의 하나로 본인이 평상시에 하고 다녔던 헤어스타일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5. 실제로 헤어와 메이크업은 소속사 사무실에서는 별도의 스타일리스트 없이 거의 세이코 본인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이후 赤いスイートピー에서 단발로 헤어스타일을 바꾸기 전까지 세이코를 대표하는 헤어스타일로 자리 잡았었죠. 단발로 자르게 된 것도 소속사는 반대했음도 불구하고 미디엄 템포인 곡에 맞춰서 본인이 그냥 잘라버렸다고 합니다. 6. 여담으로 지난번에 복고맨님이 소개하신 바 있는 ‘체커즈’의 후지이 후미야와 같은 후쿠오카현 구루메시 출신 연예인입니다. 그 영상의 댓글에도 남겼지만 당시 쿠루메 시 근교의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었죠. 그래도 카마치 가문 자체가 중산층이었지만 그 지역의 전통 있는 명가에, 이후에 세이코의 오빠가 작위를 받을 정도의 가문이었던지라 후지이 후미야의 경우 만큼 암울한 상황은 아니었겠지만, 그 엄격한 가문에서 자란 세이코가 집안의 엄청난 반대에도 무릅쓰고 상경하여 가수를 꿈꾸게 된 것도 그런 주변 환경의 영향이 어느 정도는 있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80년대 명성 잡지를 화려하 장식했던 그 주연들.. 내가 10대 말 무렵 받았던 그 문화적 충격은 지금도 잊을수없다..이후 논노,위드,로드쇼,스크린 등등. 영화계에 불어닥친 홍콩느와르와 안전지대,히카루겐지, 체커스,소년대,몬타요시노리,구와타밴드,튜브,써전올스타즈 등등.. 좀 앞서간다는 젊은이들이라면.. 여가수 계보라면 진세이 이찌로 미소라 히바리를 필두로 야마구찌 모모에-이와사키 히로미-마츠다 세이코- 나가모리 아키나-이후로는 고만 고만 춘추전국 시대.. 이모두 내청춘과 함께한 보석들❤
동감합니다 시티팝으로 묶이긴 애매하죠. 버블 시대와도 좀 차이가 있고.. 그냥 마츠다 세이코 대표곡 + 80년대 추억의 jpop 정도? 그나저나 마츠다 세이코 저 시절 너무 예뻐요. 저 시대에 태어났으면 덕질 어지간히 했을듯. 쨌든 마츠다 세이코 / 나카모리 아키나 / 야마구치 모모에 세 가수의 영상도 존버해보겠습니다 ㅎ
헐 ㅠㅠㅠㅠ 이거 제가 좋아하는 노래인데 하니가 쏘아올린 공이 이렇게 핫해질 줄 몰랐어요 하니가 잘 표현하기도 했구요 또 매 번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츠다 세이코 이야기를 더 자세하게 들어서 마츠다 세이코에 대해 생각하는 영상이였던거같아요!
제작년 여름부터 이 노래 알게되서 자주 듣다가 작년즈음 다나카가 김풍이랑 만낫을때 푸른산호초 잠깐 부르는거보고 생각보다 그 시절 향수를 가지고 잇는 사람이 많구나 생각햇고 아니나 다를까 민지 이전에 한일가왕전이란 프로그램에서 푸른산호초가 일본 출연진들에 의해 불려졋고 민희진은 아마 그거보고 번뜩엿을듯 . 확실히 누가 커버하느냐에 따라 화제성은 천지차이
잠시 언급하셨던 70년대 전설적인 아이돌 아이돌의 원조였던 야마구치 모모에를 주제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 이사람에 꽂혀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너무나 매력있고 전설같은 활동 기록을 가진 사람이고 은퇴할때도 너무나 멋졌던 분이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네요...
항상 복고맨님 컨텐츠 잘 보고 있습니다. 단순 음악적 해석이나 코드가 아닌 시대상을 함께 말씀해 주시는 것 보면서 인문학적인 경험 및 독서가 특출나신 분인것 같아 배울게 많다 느낍니다. 팝과 대중음악의 이해와 역사의 흐름의 공부에 관한 책 컨텐츠도 기획으로 한번 해 주심 좋을것 같습니다. 건강하시고 더 좋은 컨텐츠 만드시길 기원합니다.
최근에 구독하고 열심히 관심분야 위주로 추억을 곱씹으며 정주행중입니다 열정과 성의 넘치는 영상 감사합니다~ Sns를 안하는지라 듣고싶은 곡과 가수 추천을 댓글란에 적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적어봅니다 라이오넬리치, 헬로윈, 다이어스트레이츠, 이글스, 밴헤일런, 져니 추천드립니다
우와 제가 좋아하는 복고맨님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 마츠다세이코 ㅠ 그것도 푸른산호초 이야기를 해주시다니 감동이네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도 인데 여기 나온 그 흥얼 거리던 노래가 푸른산호초 라는걸, 영화를 본지 건 20년 후에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됐어요 ㅋ 한 4년 전부터 마츠다 세이코를 알게 돼서 플레이리스트에 세이코쨩 명곡들 항상 넣어두고 종종 듣고 있습니다~ 팜하니 팬분들도 마츠다 세이코의 다른 노래도 꼭 들어보세요. 등등등등 너무 많음!
아는 사람들 만 아는 책받침 여신들 중하나였죠 그 당시 일본 비디오 전문으로 파는데서 구입했던 기억이 있네요 마츠다 세이코는 지금 음원으로는 그 맛이 안나오는듯 카셋트 테잎의 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들어야 제 맛이 나오는듯 합니다 80년대 설램을 가장 잘 표현했다는 그 말이 딱 인듯 은근히 박보영님 초반기 볼 통통 하실때 닮기도 한 듯
마츠다 세이코는 알면 알수록 왜 살아 있는 아이돌의 전설이라고 하는지 알게 된다고 할까요. 아이돌이라는걸 정의내릴수 있게 만든 가수 그 원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쇼맨쉽에 가려져 있지만 음악적인 표현력이나 취형을 넘어서는 힘을 가진 가수죠. 최근 라이브를 봐도 가창 스타일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멘트나 무대 장악능력이나 흡입력은 여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대는 하지만 마츠다 세이코를 다루는건 참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에게 마쯔다 세이코란 sweet memories로 먼저 각인되어서. 푸른 산호초는 나중에 알게 된 명랑곡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노래를 일본 아저씨들이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더라구요.ㅎ 곡이 너무 좋고 행복한 분위기 에. 해맑아서 그런가봐요. 하지만 세이코님 창법이 워낙 뽕끼가 낭낭하여 시티팝과는 거리가 좀 있고. 엔카에 가깝지 않나..ㅎㅎ 하니는 뽕끼를 쪽 빼고 모던하고 예쁘게 잘 불렀더군요. 그래도 원조는 원조라는 의견입니다 😅😅 그당시 일본은 세이코. 대만은 등려군 우리는 누구인가. 전 완선언니를 밀어볼랍니다. 세대가 좀 차이가 있지만.. 저는 아키나양 쪽 이라. 기대를 또 하고 있겠습니다 ㅎㅎㅎ 오늘은 비가와서 sweet memoris 엄청 플레이 하고 있답니다. 🎉 오늘도 감사합니다!
32년전인 1992년에 일본을 다녀왔는데, 경제 버블이 꺼져가는 중임에도 엄청나게 비쌌던 기억이네요 한국 돌아오니까 반친구들이 하는말 집이 얼마나 부자길래 일본을 놀다왔냐고 하더라구요 당시 누리단 멤버 1인당 80만원에 용돈 20만원까지 딱 100만원이 들었는데, 그 돈이 당시 중소기업 3달치 월급에 달한다고 들었어요 당시 안성탕면이 90원 이었으니까 지금으로 따지면 그 당시 일본 잠깐 다녀오는데 100만원은 얼마나 어마어마한 돈인지 실감이 갈겁니다 마츠다 세이코의 데뷔 12년 전에 갔는데 그 이후로 32년이 지나버렸네요 중딩당시 제 눈에 보인 일본은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한 미래도시 기억입니다 그때 일본을 간 이후로 지금껏 해외에서 십수년을 살고 있으면서도 일본에는 간 적이 없습니다 시간 참 빠르네요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