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광업을 안했던 이유는 명나라에서 공물로 요구했던것 중에서 가장 힘든게 금과은 내시와 공녀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은 있던 광산도 모두 막고 조선은 땅이 척박해 금은이 나지 않는 나라라고 중국에 항상 이야기했지요. 그리고 내시와 공녀는 어쩔수 없이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을 돈으로 사서해결하구요. 그래서 우리나라의 명나라와의 외교는 협상을 매우 중요시 여기고 적게주고 많이 받아오는 협상의 달인을 중요시 여겼습니다. 조선 시대의 명신은 대다수가 중국외교에서 사신으로가 성과를 올린 인물이 많았던 이유입니다. 그만큼 사대선린외교가 조선의 생존전략이었던거지요. 그래서 나중에 조선말과 일제시대에 갑자기 광업이 발달했던 이유입니다. 그리고 홍경래의 난에도 광업이 중요한 자금원이었습니다. 청나라는 무역으로 은이 풍족해 우리나라에 그렇게 금은을 많이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user-tg4uw5of6u 월급 10만언주고 한달일시키면 수탈이 아닌거임? 한두명 배불리면? 쌀이 수탈이 아니라.. 일본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을 니가 아니라고 하면 없어지나? ㅋㅋ 많이 보고 배우고 아는걸 이해못하고 동감못하는 수준.. 광산주가 한국인일 경우에도 불공정 압력이 얼마나들어왔을 것이며.. 전 국토에 수탈해간 일제시대 광산과 이른 제련기술과 금본위를 알고 수많은 시간동안 축적해논 금이 언제 없어졌다? 그 금이 2차대전후 일본에서 미국으로 퍼가서 달러가 대항해시대의 모아놓은 금본위의 파운드화를 제끼고 기축통화가된 힘이 여기서 나온다. 1달러가 1g의 금과 맞교환되는것이 진정한 기축통화이다. 지금의 만배로 뻥튀기된 은행놀이.. 대출놀이.. 파생상품.. 담보없는 무가치의 채권남발이 쇼크로 돌아오는것이 지금의 난국이며.. 왜 중국을 견제하는가? 금이 어디로 이동할까? 기축통화의 힘이 어디에 힘이 실릴까? 생각없이 일본편들지마.. 알고나선 알면알수록 편들수 없는게 일본의 신공과 아마테라스며 야마토이고 침략수탈행위인것이다. 최창학의 성공도 친일유착 뇌물관리 결국 강탈의 조짐도 보이니 일본기업에 매각한것이 성공의 이유라면 이유지.. 사업꾼 이었을망정 애국자의 길은 아니라는것.
자료 찾아보니까 흥미롭게도 한국이 1900년대 초반 10위에서 15위 사이에 계속 보이네요.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호주, 러시아 등이 탑5에 있고 생산량도 한국의 수십배 되기 때문에 한반도가 금 생산국 1위라는 건 말도 안되는 것 같고요. 하여간 덕분에 재밌는 자료를 찾아봤네요. ^^
과연 일제강점기에 모든 국민에 우울했을까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같은 이데올로기 교육 결과 아닐까요? 100명은 모아 으샤으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돈 없어도 어딘가에서 얻어서라도 밥도 먹이고 술도 먹일 능력이 됐겠죠. 그거 아니면 사람들 못 움직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