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 여자는 운이 없었던거.. 당대 유럽 고위귀족들 및 왕족들은 다들 저렇게 사치스럽게 살았음. 현재도 유럽의 귀족들은 여전히 럭셔리하게 노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음. 그냥 왕과 왕비를 죽여야되는데 이유가 필요하니까 사치스러워서 나라가 망했다는 죄목을 붙여넣은거임
오히려 마리는 검소한편이었데요..본인에게 주어진 금액의10프로정도밖에 안썼다고 하더라구요..오랜전쟁에 이미 바닥난국고였는데 그화살을 만만한..처음부터 눈에가시였던 적국의왕비에게 뒤집어씌울려 했는데 실제 재판에서 무혐의처분..뒤집어 씌울 죄가 없어서 마리 막내아들에게 약먹여 세뇌시킨다음 마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거짓 증언하게 만들어 사형시킴..
마리 앙뚜아네트는 결코 검소하지 않았어요? 하루하루 도박으로 쓰는 돈도 국고 꽤 무리가 갈 정도였어요. 그 도박은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귀족의 교양이랍시고 배운 것이었죠. 그런데 딸이나 어머니나 모두 칭찬만 하고 있으니 아무리 요즘 유럽 사대주의가 강하다고 해도 왜곡이 좀 심한 상황임.
@@gimgankoomg4168 도박을 즐기긴 했지만 그건 고위귀족이면 대부분이 하는 문화생활이었고 도박빚은 있었어도 금방 그만뒀고 평생동안 왕실로 배정받은 예산의 10%만 썼다하니까 사치의 아이콘치곤 매우 검소한 편이죠(그 당시엔 또 돈 안쓰고 사교활동 안하면 별종취급당하기도 하니까요) 오스트리아 출신이라 올때부터 무시당하고 맨날 파티나하고 사기나쳐서 다이아나 빼돌리고 문란하다더라 이런 루머도 평생 돌아다녔는데 다 구라였고 말년에 정치적으로 잘못한게 있긴 했지만 사치와 향락으로 욕할 인물은 아니죠
저 당시에는 왕은 신이 내린다고 생각했어. 그런 왕의 권력을 빼앗는 일은 백성들의 거부감이 심해. 더구나 신이 내린 왕과 왕비를 죽이는 일은 백성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매우 높지 그렇기 때문 권력을 빼앗고 죽일 이유를 찾는거지.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오스트리아가 주도한 빈체제로 다시 구제체로 회기하는걸 생각하면 오스트리아에서 온 왕비를 혐오하기를 잘 한거지
저게 루이 14세와 동생이었던 오를레앙공이 만들어 낸, 귀족을 컨트롤하고 왕실의 가십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계속 베르사유에만 두어 내전을 막는 방법이었다고 해요. 영지의 평화와 안정이나 권력다툼이 아닌 왕의 옷깃에 달린 단추를 잠그는 일을 하기 위해 귀족들이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평민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프랑스혁명을 보면 답이 나오죠.
원래 마리 위에 언니가 시집갔어야 되는데 순서 당겨져서 마리가 시집간거라 적응도 힘들었고, 준비된 상태는 아니였겠죠. 또 이 시대에는 왕이 정부를 들여서 그 사람이 사치하고 그걸로 시민들 분노를 가라앉히는 방식으로 왕실을 유지하였는데, 루이16세랑 마리가 금술이 좋아서 정부가 없는바람에 화살이 마리한테 돌아간것.. 이 시대 왕족치고 사치도 안했었고 매너도 좋았으며 되게 검소했다합니다
@@user-mi5pz8wl9v정확히 어떤 점이 헌법에 반했는지요? 지나고 공부해 보니 위헌한 점이 정확하지 않고 '묵시적' 이라는 단어로 두루뭉술한 점. 최모씨 pc가 최모씨의 것이 아니라고 확인되자 pc로 분위기 몰아가던 그 방송국사장 손모씨 해외로 튄 점. 그리고 판사9이 모여야 탄핵 가능한데 한명이 빠진 8명으로 불완전한 결과 때린 점 등. 당시 감정적으로 우~몰려가며 이성적 판단않고 선동에 휩쓸린 것 말고 어떤 점이 헌법에 반하는 짓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난 마리앙뚜아네뜨가 인간적으로 참 안타까움ㅠㅠ.. 막내공주로 오스트리아 왕실에서 편안히 살 수 잇엇을텐데.. 가십이 가득한 타국의 왕비가 되고 심지어 아름다운 외모에도 남편은 열쇠광... 시대도 마리의 편이 아니엇는지 시대의 변화에 따른 혁명으로 인해 부르봉왕가가 무너졌고.. 더불어 사형당하고.. 프랑스 여행 당시 앙뚜아네뜨가 수용되었던 감옥을 실제로 본적이 있는데, 그 다음날 루브르궁을 가보니 그 크기의 차이에서부터 ..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에 얼마나 괴로웠을지 짐작도 안감..ㅠㅠ
마리앙투아네트 정말 불쌍하다...그렇다고 프랑스 혁명을 한 시민들이 잘못되었다는건 아니고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라는게 참..다른 왕족에 비해 검소한 삶을 살았고 단두대에 오르고 집행관의 발을 밟았을땐 "미안해요. 고의가 아니었어요."라고 말하는 심성 고운 사람이었는데 어릴땐 그저 빵이 없어 굶어 죽는 백성들을 보고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라는 생각없는 발언을 한 왕비라고만 알고 있었다 이제와서라도 진실이 밝혀져 다행
국민들이 가장 미워했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소문과 진실- 이거보세요. 제발 거지같은 이런 영화 믿지 마시고요...국고가 비게 된 건 이전 왕인 루이 14세와 15세 때문입니다. 오히려 루이 16세와 마리 앙뜨와네트는 이전 선조들에 비해 검소한 생활을 했어요. 미군 독립전쟁을 지원해준게 가장 큰 화근이자 프랑스 재정을 악화시킨 요인이 된 것입니다. 루이16세와 앙뜨와네트가 사치를 한게 아니고요. 오히려 루이16세는 정부도 없었고 왕비인 마리앙뜨와네트는 매우 검소하고 수수한 왕비였답니다. 이렇게 역사적 고증을 제대로 하지 않고 영화 리뷰를 하는건 좀 무리로 보여지네요.
오스트리아 공주시절에도 즐겁게 노는거 좋아해서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고 어머니 테레지아도 일도 많은데 자식도 워낙 많아 막내딸까지는 신경쓰지 못했다고 하네요 배운것도 없고 원래 총명했던것도 아니라 궁안에서 처세를 잘하는편이 아닌데다 욕받이를 해줄 남편의 공식첩도 없어서 욕을 혼자 뒤집어썼죠 심지어 죽을때 죄목은 아들과의 근친상간이었죠 어리석긴했지만 불쌍한 여자에요
마리앙투네트를 보면 내가 보임... 나도 외로움과 공허함과 남을 부러워하는 마음과 우울을 사치가 잠깐이라도 잊게 만들어줬음... 물건을 주문할때는 행복하니까.. 그걸 봤아들때도 너무 행복했음.... 외로움과 공허와 우울이 잠깐이나봐 없어졌을때 사치를 더이상 안부려도 됐음 하지만 외로움은 다시 찾아왔음.. 나에겐 사치라는 외로움과 공허와 우울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는 숨쉴 구멍이 필요 했음
마리앙투아네트 영화 서울까지 가서 시청근처 단성사에서 관람했네요 베르사이유의장미 만화보고 일본 뮤지컬 베르사이유의장미 내한공연 보고 그렇게 가고싶었던 베르사이의궁전 가서 마리앙투아네트 화려한 삶은 산곳을 보니 실제로 실감이 나더라구요 마리앙투아네트 실제촬영장소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정신없이 관람한것 지금은 추억이 되네요.
너무 어려서 지배층의 책임감을 몰랐겠죠 오스트리아궁전에서 막내공주로 곱게만 자란 마리앙트와네트인데 갑자기 한나라를 책임져야할 위치가 됐으니..... 의지처도없는 타국에서.. 고국에서 좀더 정치수업을 받고 시집가게될 프랑스의 사정도 알았다면 자신의 위치를 자각했을텐데....ㅡ.ㅡ
@@phdogy 그부분도 좀 오해입니다. 프랑스 재정사정을 마리앙투아네트는 잘 알고있었고 왕실에서 역대급으로 가장 돈을 절약한게 루이16세 부부입니다. 패션이나 외모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전반적으로 우민화된 귀족과 사교계의 말그대로 분위기였을뿐 재정 파탄은 이미 티가 나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실제로 왕실의 기본 지출에서도 더 쪼아서 하고있었고 상당부분은 오스트리아 왕비에 대한 적개심으로 덧씌워진 악명입니다. 혁명이후 만들어진 말도 많았고 그에 대한 재조명과 연구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이 영화도 나왔어요. 유투브로 요약된 부분과 화면만으로 구독자님들도 잘못생각하실수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 잘못된 오해들은 짚어지고 있습니다.
시대상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긴 하는데... 루이가 16살에 마리가 14살에 결혼했으니 결혼하고 한참이 지나도 18세라니... 지금으로 치면 한창 중고등학교 배우러 다닐 나이에 결혼한거니 어리긴 진짜 어렸네. 확실히 나이를 보니까 저나이대면 성욕도 물론 왕성하겠지만 그 만큼 요즘 애들마냥 탐구심이나 호기심도 클 나이라 만약에 루이가 여자에 그닥 관심이 없었던게 사실이라면 (신체적 결함도 있었다고 하고) 서로 부부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성향 다른 친구 같았을 거 같기도 하네. 본인들 공부, 취미생활이나 야외활동이 더 중요하니까 애를 만들 필요성을 못느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