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원어가 가야어 라는걸 아시는 군요. 일본을 세운 나라가 가야죠. 가야 를 파고들면 일본의 근원이 나타나죠. 그래서 70년대 때 한일 역사학자 들이 같이 가야를 연구 하다 갑자기 멈추었죠. 일본 황실에서 하지 말라고 일본 역사학자 들에게 압력을 넣었다 는 얘기가 있습니다. 현 상왕 이 자기 모계가 백제계라 했었죠. 그런데 부계는 말을 못한것이 부계는 가야계 이기에 말을 못하는거죠.일본이 임나일본부설 을 주장해 놓았으니. 그리고 고려 중반때 까지만 해도 한국과 일본이 서로 말을 알아 들었는데 임진왜란 때 일본 사람 대부분 이 한국 일부 지방의 방언만 빼고는 대부분 한국 과 일본이 서로 대화가 될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애들이 막상 한국에 오니 말이 안통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랬다고 하며 토요토미 히데요시 에게 보고 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yes7022 가야가 경상남도 와 대구주변 경상북도 그리고 전라남도 대부분 의 지역 이였다고 보는데 전라남도 말을 얼핏 들으면 경상남도 억양이 있습니다. 저 개인적 으로 전라남도 사투리는 경상남도 사투리 + 충청도 가 섞이면서 지금과 같은 말이 되었다고 보고 그래서 전라남도 사람들이 경상남도 사투리를 금방 배우는 것 또한 전라남도 사투리에 녹아있는 경상도 사투리 가 있어서 라고 생각이 되며 전라남도 사투리에 자주 쓰이는 ~당께 가 일본 으로 가서 ~닷께 가 된게 아닌가 생각 됩니다.
저의 망조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못에 돌을 던지면 여울이 둥글게 퍼져나가 그 기운이 못 가장자리에 남는다. 우리 옛말의 여울이 퍼져나가 일본과 주변국에 남았다. 우리말은 세월따라 변했지만 퍼져나간 우리의 옛말은 일본에 남아있다." "종교나 철학도 그러하다. 유교가 중국에서 발원했지만 중국의 유교는 변했고 본질은 우리땅에 더 많이 남았다. 인도의 불교 역시 그러하다" 이 말씀인즉슨 돌던진 자리에는 흔적이 없지만 퍼져나간 가장자리에 본질이 남는다는 것이니, 현재 우리말에서는 우리 옛말을 찾을수 없으나 가장자리에 해당하는 일본이나 중국에서 찾을수 있다가 되겠습니다. 참고로 조부님은 당대의 한학, 종교철학자이셨습니다.
같은 말을 할 때 1. 한국 : 소리마다 입의 모양이 달라지고 소리의 방향과 혀의 움직임이 변한다. 하여 모든 소리를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다. 2. 일본 : 입을 살짝 연 상태로 말을 하며, 소리는 앞으로만 나가고 혀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받침이 있는 글자의 소리를 내지 못한다. 실제 지금 제가 쓴 글을 입을 살짝만 열고 말을 하면 우스꽝 스러운 소리가 납니다.
수(藪)는 늪이라는 뜻도 있지만 숲(林)이라는 뜻도 있는 듯. 남덕유산(봉황산)에서 발원하는 진주 남강이 임진왜란 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진주성 때문에 한반도에 산재하는 여러 남강들의 대표주자 행세를 하고 있지만 진주 남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에는 남강이 진주 치소의 남쪽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주성을 본성이라고도 했지만 남성이라고 했던 뒷배 또한 이와 같습니다. 산청 생초에 경호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북쪽의 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남강 본류와 서쪽의 지리산에서 유입되는 임천강이 합류하는 합수점에서 벌써 몇 백 년 째 거기서 물멍을 때리고 있습니다. 임천강은 임천이라는 외자지명이 외로울까 강이라는 덧지명을 붙인 것인데 황매산에서 발원하는 양천강 또한 임천강 따라 거름 지고 장에 따라가는 모양새가 된 것입니다. 임천강의 "임"과 양천강의 "양" 또한 남강의 "남"과 같은 의미를 다르게 표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임(林)이 왜 남쪽을 의미하는 글자로 쓰인 것으로 보느냐 하면 임(林)의 훈이 숩이고 이는 남쪽을 상징하는 붉은색인 사비의 차훈차로 보기 때문입니다. "봉화를 불살랐사은 변경이야 늪이었어야"의 늪을 숲으로 풀 수도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들고 한걸을 더 나아가 늪(藪)을 남쪽으로 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경호강의 상징인 경호정(鏡湖亭)의 경(鏡)은 북쪽을 나타내는 "울"로 보고 호(湖)는 서쪽을 나타내는 "널"로 보면 경호강은 북천과 서천이 만나는 강이라는 의미로 풀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명은 시대에 따라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도 있는 것이므로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타나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불리던 어느 곳의 지명을 모두 같은 의미로 엮어서 풀려는 시도는 자칫 개미 쳇바퀴 도는 모양이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명리에 매몰되어 기득권을 지키려는 폐습은 대국불치병에 걸려서 역사공정이라는 신학문을 창조하고 있는 중화사상처럼 학문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봅니다.
일본어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한국어의 흔적은 한국어와 너무나 흡사한 종결어미와 주격조사입니다. 의문문에 ~까? 를 붙이고, 평서문에 ~다, ~요를 붙이는 문법적 습관을 보면 한국어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죠. '데스'라는 종결어미도 한국어로는 '했소', '했어'와 연관이 있어보입니다. 주격조사에 '~가'를 붙이는 것도 마찬가지 ㅋ
@@damunno9353 그렇죠 말이 통하는건 신라(현 경북이 원래 신라)는 지나족 도래인들이라 중국어를 썼지만 (삼국지위서동이전 진한편 기록을 검색에 보세요) 고조선.부여.영고.옥저.고구려.백제.가야가 사실상 같은 한국어체계였고 그들이 5~8세기에 걸쳐 한반도일대에서 꾸준이 일본열도로 이주해 간 탓이고 선진문물의 그들 야요이인들이 일본열도 각지의 주류가 되었던거고 그러니 주류인의 언어가 현지의 죠몽인 언어를 잠식해 버린거죠 신라계 중국어 기반어와 고조선계 한국어 기반어가 일본열도에서는 토착어와 뒤섞이는 현상도 있었고요 그렇게 오늘날의 일본어가 된겁니다 고대로 돌아가면 열도 어느 지역은 중국어쪽에 더 가깝고 열도 어느 지역은 한국어쪽에 더 가깝고 한거지 일본 전역이 하나의 언어체계였던게 전혀 아닙니다 야요이인들(도래인)이 죠몽인(원주민.섬왜소증유전자)들과 혼혈되어 오늘날 일본인이 된거라 피가 섞이기는 했으나 동족은 아니죠 섬왜소증유전자 때문에 키가 한뼘 차이나 났어요 에도시대에 열도내 왕래가 어느정도 자유로와지고 원거리간 결혼도 많아지면서 혈통이 더 희석되었어도 일본인들은 섬왜소증유전자 때문에 여전히 작죠 지금의 한국인과 가장 혈통적으로 가까운 종족은 만주족입니다 말갈.여진.만주족으로 이어져온 그들은 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발해때는 우리랑 한 나라 벡성들이었고 그 이후로도 고려.조선에 걸쳐서도 우리안에 함께 있었던 겁니다 ...
저는 일본어 배울때 제 고향 부산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고구려 신라 백제 3국이 말이 달라 소통이 안되었다고 하고... 또 일본서기에 백제가 망해서 고향에 있는 조상 묘를 찾아갈수 없다고 적힌걸 보면... 일반론으로 접근하기에 헌계가 있다고 봅니다.
삼국이 말이 달랐단건 잘못알고 계신겁니다 일본이 신라의 사신을 접견할때 발해인을 통역자로 썼다는 고대기록이 일본에서 발견됐어요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나라 입니다 삼국의 말이 지금처럼 똑같을수는 없어도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을 거라는게 요즘 학계의 정설입니다 신라는 조금 다르지만 고구려 백제 가야는 모두 부여계 입니다 신라도 흉노계라 하지만 부여와 흉노는 영토와 근거지가 겹치는 북방계로 같은 계통의로 보는게 정설입니다 고대에는 친족민족들이 나라는 달라도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했었고 나라별로 오랜시간 각기살다보니 단어가 변형되어 소통이 안될뿐이지 같은계통의 언어는 뿌리를 들어가면 한언어에서 파생된걸 알수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알타이어 남유럽의 라틴어 서북유럽의 게르만어 동유럽의 슬라브어 등이죠
한국어랑 일본어의 관계에 대해 알기쉽게 설명 일본인들이 고조선에 부역민으로 같이 살때부터 한국어를 무차별 차용해서 썼었는데 그러다 일본어화자들이 한반도 남부 가야의 터에 일부 일본어화자들로 이루어진 집성터를 만들거나 나라를 세움. 그주위엔 한국어화자들도 같이 있어 나라를 이뤄 살다가 북쪽 부여쪽 기마민족들이 군대를 이끌고 남부로 내려와 소국들의 지배자가 되거나 왕이됨. 이런이유로 일본어에는 한국어가 근본어원으로 밝혀진 어휘가 5,6천 단어에 이른다고 큐슈대 시미즈교수 연구논문에 나옴. 즉 쉽게 말하면 일본어는 일본어라는 프레임에 단어들은 거의 한국어화자 단어들을 차용해서 사용한 차용언어임 그일본어화자가 큐슈를 통해 나라로 야마토 라는 집단(국가)을 형성. 현대 일본인들도 나라하면 야마토 라고 생각하고 있음. 야마토가 나라에 국가를 세울때 이전에 한반도에서 온 집단이 있었는데 도쿄 윗지방으로 그들을 에비스 라고 함. 현재恵比寿란 한자를 쓰지만 원래 에비스는 夷 한자를 썼었다 우리나라말로 오랑캐 그런의미임 에비스는 죠몬인과 어울려 나라를 세었는데 야마토가 북진해 오자 에비스중 야마토랑 유사한 종족은 그대로 흡수되고 문화랑 언어랑 외모가 이질적인 죠몬인은 다시 홋카이도랑 쿠릴열도등으로 피해가서 부족국가를 이룬다. 정리하면 야마토,죠몬인,에비스 이들전부는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온자들임 변한 12국중의 하나인 彌烏邪馬國 이 있는데 이국가는 일본어화자로 이뤄진 국가중 하나임 彌烏邪馬國 한자의彌는 일본어 간자체로 弥이다 弥生人야요이인을 말할때 이단어를 씀 한번더 일본어에 대해 정리하면 일본어는 일본어라는 프레임에 단어들은 거의 고대 한국어(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신라) 단어들을 차용해서 사용한 차용언어임 그래서 일부학자는 일본어 수사랑 고구려수사 일부가 비슷하니 일본어의 조상이 부여계라고 착각하기도 하는데 이건 일본어화자의 무작정 고대한국어 차용한 부작용 결과임 일본어화자들의 조상이 부여계였다면 그들은 대대손손 부여를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후세에게 전하며 내려왔을것이다 고대일본어화자들은 고조선이나 부여가 자기들의 나라가 아니고 그냥 옆에서 부역하면서 독립을 꿈꿨던 나라였을것이다 그래서 현재 일본어를 쓰는 열도 일본인들도 1도 고조선이나 부여를 자기들의 조상국가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 조상들이 한자를 중국에서 받아 썼는데 한자는 죽은 문자로 처음 받았을때 그발음 그대로 유지돼는데 비해 현재 중국에서 한자는 살아있는언어로 계속 개선되고 발전해 당나라때의 발음과 현격히 차이나는데 차라리 한반도의 한자발음이 고대 중국한자랑 발음이 더비슷 하듯이 고대한국어는 계속 사용돼어서 현대 한국어발음과 차이가 많이 나는것에 비해 일본인에게 차용어인 고대한국어는 외국어를 차용한거라 소중하게 여기고 뜻과 발음을 잊지않으려고 노력했다 일본어 화자들에게 고대한국어는 한국인들에게 한자 같은거라 옛날 그당시 발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서 예전 발음이 살아있다 그러다 일본열도가서 죠몬인의 단어를 약간 차용 (=해봤자 몇십단어)해서 현재 일본어에 이른다
상층부는 한국어, 다수 피지배층은 원일본어를 쓴 게 맞을 겁니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같았다고 보기엔 기초어가 너무나 다릅니다. 세계 언어학계에서 이게 수수께끼죠. 역사적 관계를 보면 지금도 말이 통하는 동일어를 써야 함에도 왜 그토록 다른가 이해가 안 된다는 겁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말 썩인 한국말 많이 썼습니다. 오라니~!,빠꾸. 나까마. 색꼉. 꼽뿌,사라. 아리고다셔 샘쌔다뽀 짬껨쎠 (가위 바위 보)...... 35년을 일본 그늘밑에 있었으니 그냥 입에서 입으로 일상생활 쓰던 말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또 한국에서 서로 인정 안하면 말짱 도루묵 입니다. 뭐를 밝힐려고 하지말고 있는 그대로 라도 사실만을 알려 줬으면 합니다. 일본 사람들 오래된 가옥들 보셨습니까? 태국, 라오스 가면 아주 똑같은 나무구조의 가옥들 볼수있습니다.
이 가설은 어디선가 뉴스에서도 들었던 것임. 일리가 있는 합리적 의견. 일본에서 이 만요집 내용이 난해했었으나 이런 방식으로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고 일본 학자가 말했었던 것이다. (몇 년전 일본에 있을 때 기사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도래인끼리는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은 당연. 한편 1500년 정도 전에도 한국과 일본의 말은 거의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없는 것일 수도--(1,2만년 전에 이미 따로 놀았었기때문에. 1500년 전이라면 현재에서 볼 때 먼 옛날이지만 인류 역사로 볼 때는 몇 천 발자욱이겠지만..
한자의 뜻과 음은 사실 하나입니다. 구름운 의 경우 구=름=운 이 세가지가 모두 cloud라는 뜻입니다. 뜻과 음은 하나라는 점입니다. 동의어를 함께 묶어서 문자를 익힐 때 활용한 것입니다. 하늘천 의 경우 하=늘=천(텬=텐) 이 세가지 음의 뜻이 모두 같습니다. 하=曦햇빛희, 하는 해를 뜻하고 즉 하늘을 뜻함 늘=란=랄 빛날란 역시 해를 뜻함. 한자는 우리 조상들이 만든 것이고 그래서 지금도 한국인들은 한자로 말을 합니다. 한국어를 문자로 표현한 것이 한자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먼저고 문자는 나중이다 한국인들은 한자어로 말을한다. 이 두가지를 연결하면 한자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답이 나옵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히 잘 봤어요. 혹시 아래 영상들을 아직 안 보셨으면 참고하세요. 한자 초기 시작도 우리 민족 조상님들이 하셨다는 명백한 증거 영상을 소개해요. 저는 10여년 전에 고 진태하 님께서 70년 이전에 여러 지나학자들이 글자는 동이족이 만들기 시작했다는 연구결과를 보시고 우리 조상님들께서 만드셨으면 풍속이 녹아있겠다는 발상을 하셔서 갑골문에서 20여자 이상의 글자들에 들어있는 풍습들을 설명하시는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진태하 님께서 한자 동이족 시원설을 주장하셨다고 오도해요. 한국인만 알 수 있는 한자의 기원 (한자 1강) 중국인은 절대 모른다! 동이족이 갑골문 만든 결정적 증거 - 한국인은 누구나 알수 있다! (한자10강) 제주도에 남은 갑골문의 원형 - 집 가(家)자의 비밀 비로소 풀렸다! (한자28강) 상나라 국호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 왜 주목하지 않았나? (한자35강) (윗줄 제목을 유튜브 검색란에 넣어 찾아 시청 가능)
@@김영원-w3q 알려주신 영상 열어보니 오래전에 봤던 분인데 처음 그분께서 올리신 영상 보다가 포기했어요. 그분께서 설명하시는 것도 겨우 따라가며 듣는데 너무 복잡하고 일반화하기가 어려웠어요. 신유승 님께서는 문자를 만든 분들께서도 복잡하거나 너무 특수하여 자신들깨서도 잊으시면 안 되기에 꼬아 들어 가는 식으로는 안 만들으셨고 동이족 후예라서 갑골문을 다 해독했다고 하세요. 적어도 본인 스스로 만족하실 결과이니 공표하셨겠지요. 빛의전사들 에 게시된 삼신봉 문자 해독 보시면 복잡해서 못 따라 가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한자해례 님의 몇개 부호로 이루어졌다는 명제는 좋은데 적용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나중에 나중에 시간이 난다면 공부할 의향은 있지만 할 것들이 많아서 죽기 전에 차례가 될려나 몰라요.
@@jaekunyoo8509 9개의 기본부호로 이루어져 있다. 이거 참 대단한 발견이다...라고 생각했죠. 기발하구요. 그걸 어떻게 적용해 나가는지 보면서 박수를 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댓글 감사합니다. 채희석(빛의 전사들)님의 강의도 보고 있습니다.
왜를 만나러 갈 때는 통역이 필요. 신라백제고구려도 초보적인 언어소통은 가능. 도래인이 세운 왕조와 소통할 때도 기본적으로 소통 가능. 관동은 신라고구려계 언어, 관서는 백제계 언어. 가야는 열도에서도 결국망함. 현대 일본어는 관서와 관동 도래인들의 고유말(사투리?)이 혼종돠어 그래서 일본은 훈독 한자 읽는 방법이 제각각임. 우리 사투리도 같은 뜻이지만 다르게 말하는 것과 같음. 불과 70년 갈라진 남과북 그리고 조선족의 말이 상당수 다름.(뭐 한 일주일 같이 지내면 다 알아듣긴함) 몇백년을 갈라지낸 고구려백제신라어가 절대 같을 수는 없음. 다시 말하지만 일본 한자의 훈독을 연구하면 알수 있음
ㅋㅋㅋㅋ 밥먹고 할짓이 없는걸까 한국인과 가장 유전자가 흡사한 것이 일본인임 조선 초기만 해도 고려식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게 일본과 비슷함 남녀가 개을에서 같이 서로 속옷보이며 씻고. 결혼을 두번 세번해도 되며 안맞으면 헤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움 그리고 장가든다는 말은 차가에.다서 산다는 것임 여성의 집에 들어가서 돈을 벌고 생계를 꾸린다는 것임 지금 중국과 한국이 비슷함 인간성도 수준도 그럼 일본을 까내릴 생각말고 일본을 같은 민족이라 생각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뻘짓에 남의 일에 발작하는 것임? 같은 민족이라 생각한다먄 이런 연구로 동질감을 갖겠지만 그거 아니잖아 대휵에서 반도로 반도에서 섬으로 이동하는거야 언어가 비슷한 것도 당연하지 일본말 한국말 어순도 똑같고 ㅋㅋㅋ 이거 모르는 사람 있나 그러니까 웃기지도 않은 고대의 일에 감히 조상의 나라를 욕보였다며 발끈하는 곳이 정당하려면 일본을 사랑해야겠지? 머리에서 일본을 좀 꺼내 왜 그리 살아
일본어뿐 아니라 영어도 모두 우리말을 알파벳으로 써놓은 것입니다. 전 세겨 모든 글자는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우리말을 표현한 것입니다. 책 쉽게 쓸 수 있는 글 잉글을 읽어 보시면 그 이유를 아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책은 영어가 어떤 우리말로 되어 있는 지를 써놓은 책입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어순과 문장구조 및 문법이 100% 동일한데, 당연히 먼 과거에는 같은 언어를 썼으리라는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백제 패망 후 일본으로 건너간 한반도 도래인들이 본국(백제)과 단절된 생활을 하면서 언어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
니뽕 옛날 상류층이 우리말을 썼다는 증거지....일반 니뽕인들은 우리와 유전자가 많이 다름. 그들의 말도 우리와 완전 달랐을 거임. 우리에겐 거의 없는 D하플로 유전자가 니뽕인들에게 높은 비율로 존재함. 니뽕 D하플로 그룹의 유전자는 인도양의 안다만섬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보임. 즉 니뽕인의 우리와 동남아인의 혼혈족임.
속일본기 권13 에 다음 구절이 있습니다. "12년(740) 봄 정월 戊子 초하루 천황이 大極殿에서 신년 축하 조회를 받았다. 渤海郡의 사신과 新羅學語註 001 등이 행렬에 함께 서 있었다. 단지 깃일산을 받드는 美人은 다시 上衣와 바지를 입었다" 일본어와 신라어는 달랐습니다. 일본 혹은 왜를 통으로 하나로 보시는거 같은데, 고대사에 대해 좀 더 통사적으로 분석해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註) 001 언어 등의 습득을 목적으로 신라에서 일본에 파견된 학생. 天武天皇 9년 11월에 신라에서 말을 익히는 세 사람이 왔다는 기사가 있으며 天平寶字 4년 9월 癸卯조에 신라 사신이 말을 배우는 두 사람을 보낸다는 기사와 寶龜 11년 정월 辛未조에 신라 국왕이 常例에 따라 말을 배우는 학생을 보낸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안녕하세요. 감사히 잘 봤어요. 올리신 정보를 보니 문득 현대 일본어 단계로 정착한 시점은 언제부터일까 생각이 처음 드네요. 2천여년 전부터 700 ~ 800년 동안 일본의 인구성장률이 당시 세계적인 추세로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서 일본 역사학계의 의문이었는데 몇십년 전에 한 일본 세계사 학자가 한반도 도래인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어서라고 발표했지만 일본역사 학자가 아니라고 관심도 주지 않았었는데 김해 가야 고분군이 발견되면서 한중일 학자들이 각기 연구하고 일본학자들도 이후 도래인 설을 수용한다는 역사스페셜 영상을 보고 한번이나 몇번에 걸쳐 짧은 기간에 갔다면 더 크게 언어변화에 영향을 주었을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여러 정보들을 귀동냥하여 종합하면 삼국(가야의 열국 포함)의 말들이 소통에 지장없었을 것이고 일본 상류층은 당시 백제어를 중심으로 했다고 추측되고 원주민들에게 영향을 주어 현지어가 변하는 속도는 느렸다고 추측돼요. 맛지리나 일본 씨름 경기의 구호 등에서 우리 말을 1,500여년을 이어 현대 일본인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따라 하지만 우리는 바로 알아 들을 수 있으니 이 또한 확실한 언어 화석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어는 한(韓)어 즉, 삼한어(고조선어)에서 기원했고 일본어는 가야어(부여어)에서 기원했습니다. 증거: 그 어떤 자료보다 1차 사료 (동시대 기록) 이 역사적 진실을 입증하는데 가장 우선합니다. 일본서기 비다쓰 덴노조의 기록을 참고하면, 고대 야마토 왕조는 백제와 언어가 통하지 않아 역관을 따로 두었고 백제의 언어를 '한(韓)어'라고 구분하여 자국의 언어와는 별개의 언어로 따로 구분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일본인들 스스로 백제의 언어를 '한(韓)어' 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즉, 백제의 언어는 부여의 언어가 아니라 삼한의 언어였다는 점입니다. 이를 입증하는 연구가 최근 2017년에 나왔습니다: “2017년 서울대 언어학과의 연구에 의하면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목간에서 백제어의 수사가 발견되었는데 백제어의 수사가 한국어족과 동일하게 나와서 백제어는 한국어족에 속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연구에 따르면 백제어의 수사에서 숫자 2는 의털읍(矣毛邑), 숫자 3은 새태읍(新台邑), 숫자 5는 도사읍(刀士邑), 숫자 7은 일고읍(日古邑)이라 발음하고 숫자 8은 옅털읍(今毛邑)이라 발음한다.” 국가 성립 이전의 시대에는 같은 지역에서도 다양한 부족이 공존하며 언어도 쉽게 통일이 안됐습니다. 예를들어 우리 동네 부족과 옆 동네 부족 간에도 왕래가 적고 의사소통에 제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외부 이주민들이 들어와 최초의 국가를 세워 행정체계가 잡히면 그 지배층의 언어가 급속히 퍼지게 되며, 일단 언어가 통일되면 다른 외부 세력이 들어와 외부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기존 언어 자체가 쉽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공식 언어 및 공문서가 영어가 되어 영어가 널리 퍼졌지만 기존 인도어를 대체하지는 못했습니다. 한반도 남부의 최초 국가는 고조선 유민들이 세운 삼한입니다. 따라서 '한(韓)어' 의 기원은 고조선어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순수 한국어 어휘가 고조선인들이 세운 상나라 갑골문자의 발음과 일치합니다. 예를들어 風 의 갑골음이 ‘pirum/param (바람)’ 인데 한국어를 제외한 그 어떤 중국어 일본어 방언들도 wind 를 ‘바람’ 으로 말하는 언어는 없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아주 예가 많습니다. 즉, 부여인들이 만주에 고구려, 한반도에 백제를 건국할 무렵 만주지역은 문명 세력이었던 고조선이 이미 한반도로 내려간 상태였기 때문에 고구려가 만주에 나라를 세울 때 부여어를 손쉽게 정립했던 반면, 백제의 경우는 한반도에서 기존에 이미 한반도 최초국가인 삼한이 세워져 확립되었던 한(韓)어를 대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최초 국가가 야마토입니다. 즉, 일본어는 야마토를 세운 사람들의 언어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언어학자들에 의하면 일본어는 만주에 있어야 할 언어라고 합니다. 예를들어 조사의 쓰임이 몽골어와 한국어 사이라고 합니다. 고구려어와의 유사성도 보이구요. 하지만 고구려인들이 대거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역사적 증거가 없습니다. 이에 대한 실마리는 가야에 있습니다: 유튜브 “KBS역사스페셜 - 대성동 고분의 비밀, 가야인은 어디서 왔는가” 를 보시면, 가야 지배층의 유물들은 100% 순수 북부여 유물들입니다. 즉, 북부여에서 기마민족이 국가의 영향력이 약했던 한반도 남부 해안지역으로 곧바로 내려와 가야를 세웠고 부여어를 그곳에 정립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최초 국가인 야마토를 세우면서 부여어가 일본어의 기원이 되었다고 해석하면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집니다. 백제가 야마토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은 훨씬 후대로 그 때는 이미 일본에 부여어가 확립되어 백제어(한어)가 대체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也는 한국말로 야 이지만 일본어로는 나리 구름은 일어로 쿠모 별로 비슷하지는 않음 期는 한국 일본 모두 기 로 발음하는데 일본의 경우 형용사에서 밝은-=あかるき 明る「き」로 쓰기 때문에 오히려 기는 일본어에 가까운 표현아닌가요? 어쩌면 일본 에서 한국으로 간 발음도 생각해봐야할지도. 한국에서 일본으로 일방적으로 갔다고 하면 미스테리가 너무 많음
옛날에는 비슷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하시는데, 그렇다면 예를 든 조사들의 경우 한국어에는 대부분 그래도 남아있는데 일본어는 왜 남아있지 않을까요. 똑같은 시간이 흘렀는데 한쪽은 별로 안변했는데 한쪽은 상당히 많이 변한거 같은데. 몇개의 예로 동질성을 들려면 차라리 인도/스리랑카 타밀어가 한국어하고 더 비슷할듯.
일본 형성기에 고구려 신라 백제의 도래인이 일본 상류층에 합류해서 언어와 문화에 영향을 준거는 당연한 일이지만 천년도 넘는 과거 일이라서 과학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 그것은 중국과 북방초원의 고대인들이 한반도에 와서 영향을 주었으나 오늘날에 구체적인 자료를 찾을수 없는 것과 같다 //_
한자의 뜻과 발음을 이용하여 모국어를 표기한 언어는 한국어 일본어 뿐만 아니라,, 여진어 거란어 베트남어등도 비슷한 과정으로 기록했답니다,,, 1500년전 일본의 어떤 단어가 고대 한국어의 어떤 단어와 같은지 구체성은 전혀 없는 주변적인 말씀만 하시네요. 일본어와 한국어의 어휘를 대조해보면 아주 멀고 비슷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중국지배층 언어가 상류층언어라서 한국상류층이 따라했고,중긐언어가 일본가서 상류층언어가 됐고 그래서 한국,일본이 비슷한거지요. 뭔 한국과.일본이 같다고 해석? 중국,한국,일본이 같다고해야 지금도 광둥어가 한국어와 가장 비슷합니다. 그 이유가 명나라 지배계층이 광둥어를 많이써서 우리나라 지배계층이 많이 따라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