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녀 언니🎃 입니다! 많은 분들이 지적해주셨듯, 서태지님이 은퇴한지 20년이 아니라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한지 20년'이 맞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전달하다보니 착오가 있었네요😭 90년대 생이라 이번 영상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서태지님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봤네요. 저를 비롯한 서태지 이후 세대들에게는 신선한 시간이, 서태지 신화를 직접 보신 분들에게는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마녀스푼 많이 사랑해주세요!🤩
90년대 중반 서태지라는 가수가 나타나서 1집 대성공이후 사랑타령 감정 타령 따위 음악이 아닌 시대상을 비판하는 노래로 검열에 걸리고 이를 빌미로 방송사와 유통사들은 갑질을 하기 시작.. 이때 서태지는 자신의 싸움에 문화계 전체를 끌어들이는 신의 한수를 보여주지... 문화계 전반의 부조리와 방송 유통사의 부조리를 수면 위로 들어내고.. 여기에 문화계 인사들 까지 동조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진다... 이때 당시 야당 대표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이들과 직접 만남을 가지고 이들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면서 문화 개혁이 시작된다.. 여기서 쟁점이자 핵심은 문화컨텐츠 유통사 중심의 생태계를 컨텐츠 제공자 중심의 생태계로 전환이란다... 즉 컨텐츠 제공자가 정당한 수익을 올릴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것이지.. 이때 음원법 저작권법등등이 만들어 졌고.. 3대 기획사니 어쩌니 하는것들이 비로소 생겨났다.. 이전까지는 정상적으로 돈을 벌수있는 구조가 아니였지... 이것이 대한민국 문화 역사에 가장큰 곡점이자.. 한류문화의 시작점입니다......
서태지 사건이후 문화계 인사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지지자가 된것과.. 김대중 대통령이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것이 사실상 오늘날 한류를 만들었다고 봐두 무방합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사에 정부예산1%를 대중문화에 투자한다고 했을때 미친짓거리 한다고 얼마나 손까락질 했습니까... 이돈을 몽땅다 대학에 관련 학과 세우고 예술고등학교등 전문 교육기관을 만드는것에 몽땅 다 쓰신거죠.. 이러한 전문교육이 지금의 한류문화의 배경이랍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 가수들 수익구조를 바꿨지요 가수들이 노래를 작곡해서 음반사에 가면 음반사가 노래수익이랑 판권을 가져가고 콘서트나 방송출연 수익으로 벌어먹고 살았는데 서태지가 내음악의 수익은 내가 제일 많이 가져가야된다 라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수익구조를 가진 음반사를 선택해서 엘범을 발매하니까 그영향으로 다른 가수들도 그렇게 할수있는 환경을 만든거죠 수익구조를 전부다 바꾸지는못했지만 바꾸는데 굉장히 큰역할을 했죠
작사 작곡 노래 연주 믹싱 아주 지혼자 북치고 박치고.. 초기때 앨범은 진짜 원맨밴드나 마찬가지였죠... 그걸 이정도 완성도 있는 앨범을 뽑아냈으니.. 미쳐도 단단히 미치지 않고서야.... 근데.. 남탕 여탕을 끝으로 가정에 충실하신건지.. 형님 보기가 아주... ㅜ.ㅜ
@@user-pullbang 남탕 발언은 잠실 주경기장 크리스말로윈 공연때 코멘트가 최초임 그 당시 직관중 이었슴 남자팬들 함성이 하도 크니까 남탕에 온 것 같아요~ 라고 해서 깔깔깔 웃었는데, 진짜로 머지않아 남탕 여탕을 실현시켜버림 ㅋㅋㅋㅋㅋ 그리고 2015년 펜타에도 나왔었잖아요,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단 Yo~기보~! 는 어디서 뭐하고 사시는지 궁금하군요..
맞는말이긴하지..서태지는 저 당시에 해외에 진출할수도 없었고..문화적으로 우리나라는 너무나도 열악한 상황이였지..시스템적으로도 허술했고...과거의 가수들이 차근차근 만들어놓은게 지금의 BTS,블랙핑크등등 해외진출을 해서 성공할수있는 밑바탕이 되었지..개인적으로 서태지시대면서 BTS를 보고있는 사람으로 서태지전성기의 인기,패션등 젊은사람들에게 끼쳤던 문화는 넘어설 가수는 없다고 본다....가장중요한건 서태지노래는 지금들어도 여전히 좋다
@@tricbumo1888 여기 같은 말을 또 써놨네요. BTS가 시도했던 시스템 중에서 타그룹이나 타기획사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건 없어요. 다 이전에 이미 K-pop의 범주 안에서 시도했던 시스템들이었어요. 그 시스템의 시작들과 발전을 가져올 수 있도록 성장동력을 만든게 서태지예요. 전무후무. 범접불가능한 수준이죠.
@@marzomaison25 그랬으면 다른가수들도 bts만큼했겠죠 왜 bts만 지금 서구권이나 전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을까요? 세계에는 어마어마한 그룹들이 많습니다. 일본,동남아,아시아,우리나라 서구권아이돌 그룹들... 왜 bts만 통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걸 이해를못하면..벽이랑 대화하는 느낌일거에요.. 님은 지금 수박 겉핧기식으로 bts를 알고있습니다.. 하나도 모르고요...
서태지는 문화였지... 하는 거 하나하나가 다 충격이고 유행이고 신드롬이고 종교였음... 우리나라에서 그런 음악을 도입한 사람이 처음이었어서 더 그런 거 같음... 그냥 다 새로웠으니까... 서태지 은퇴 발표했던 게 뉴스로 쫙 깔림. 그당시에 그런 파급력이 있는 연예인은 처음이었어 ㅎㅎ 나는 서태지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던 게... 내가 회사 다닐 때 서태지 이혼 스캔들이 떴단 말이야.. 모든 직원들이 일 멈추고 다 그 얘기를 하고 있었어 ㅎㅎ 이사부터 대리급까지 모여서 당연하다는 듯이 서태지를 안다는 가정하에 말을 한다는 거 자체가 이 사람은 활동 당시 연령을 초월하는 인지도를 가진 가수였다는 거야. 이 사람이 어떤 스타일에 연예인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인 거지... 이 사람의 팬은 아니라고 얘기하지만 그시절 서태지 노래 안 들어본 사람 없을거임. 팬덤으로도 대중성으로도 최고점을 찍은 가수지. 9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 1명만 뽑자면 그건 서태지라고 생각해.
컴백이라는 걸 서태지가 가장 먼저 만들었어요. 그 땐 인기 좋으면 쉼없이 가수를 활동시켰거든요. 지금처럼 활동기간을 정하고 끝나면 다시 휴면. 제가 75년생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이건 너무 놀랍네요. 컴백스테이지, 컴백스폐셜 이것도 이미 서태지가 만든 것. 컴백하면 방송국에서 특집으로 1시간동안 콘서트처럼 꾸며줌. 머리염색도 서태지가 처음. 방송국에서 이 머리색은 안된다고 했을 때 서태지 역시 그럼 나도 안나가겠다했죠. 결국 방송국이 꼬리내림. 서태지가 대단한건. 눈치보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다입니다. 눈치보는 순간 자기 정체성도 없어지고 한번 물러서면 계속 끌려다니니까. 음악이 곧 힘이라고 모든 방송사가 오히려 서태지 눈치를 보는 시대였어요. 가수가 컴백한다고 9시 뉴스에 나오면 말 다했죠. 그 시대를 풍미한 저는 너무행운아.
서태지는 아티스트로서도 멋지지만 그의 강직한 성품이 존경스러웠음 그어린나이에 거대 방송국과 싸우면서 화살을 다 맞았음에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질 않음 매번 새로운 앨범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능력까지 탁월해서 좋아하지 않을수가 없었음 얼굴은 웹툰 주인공같은데 성격은 완전 하드코어락임
매 앨범 낼때마다 음악 컨셉 모두 파격적이었고 가사도 그 당시 나올 수 있는 가사가 아니어서 여러모로 이슈가 되었죠. 요즘처럼 엔터를 끼고 활동하는 가수도 아닌데 그렇게 매번 새로운걸 해냈다는 것도 대단하죠. 활동시기 사진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스타일에 음악도 전혀 안촌스러움. 👍♥️
서태지가 나오기 전만 해도 아직까지 대세는 트로트에 간간히 대형 발라드 가수들이 인기있던 시대였죠. 힙합과 댄스가수들이 아예 없던거 아니지만 제대로 정착하게 된게 서태지와 아이들 덕분이었죠. 골프에는 박세리가 있고, 야구에는 박찬호, 축구에는 차범근이 있었듯이 서태지는 음악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고 파이를 키워준 당시에는 없던 시장의 선도자였죠.
80년생입니다, 직접 겪은 세대로써 썰 좀 풀자면~~ 라떼는 말이야~~ ㅎㅎㅎㅎㅎㅎㅎ 사실만 말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전국민 10대부터, 목숨 오늘 내일 하시는 어르신들까지도 서태지와 아이들 모를수가 없었어요, 예능,다큐,정치,문화,영화, 음악, 철학,역사 모든 영역에 서태지와 아이들을 항상 뉴스에서 신문에서 학교에서 거론하고 출연했으니까요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때부터 은퇴까지 제 나이 12살~ 16살이었는데, 10대뿐만 아니라 거의라 말하겠습니다 초중고대딩까지는 백퍼 서태지와아이들 팬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 파워랑 그 분위기는 지금의 BTS급은 갖다대지도 못합니다.. 예를들면,2002년 월드컵때 축제분위기에 감정이 고조되고 흥분상태고, 감수성을 어터케해야 할지 몰라 막 터져나오는 뭐랄까 그런것들이, 그때 당시,.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와서 방송을 하면 그와 같은 오묘한 감정들이 그 절정에 다다랐죠... 이건 겪어보지 않고선 절대 이해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전 너무 감사해요, 서태지와아이들을 저의 청소년기때 겪어보고 실감하고 누릴 수 있어서요 당시 인터넷도 없던 시절, 그 파급효과는 거의 뭐 나라를 들썩였으니까요 그때 당시 얼마 지나지 않아 이후에 터보나, 듀스도 나왔느데 저도 터보 듀스 엄청 팬이었고 좋아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은 뭐랄까, 항상 0순위였습니다, 그정도였여요,팬덤도 상당했지만, 우상이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당시 당대 최고를 달리는 배우나 가수, 정치인, 뭐 모든 국민들한테 뭐 할것없이 그사람들한테도 신비로운 존재 연예인이었고, 서태지와 아이들은 본인들이 출연하고 싶은 방송에만 출연(가수이미지, 컨셉 유지를 위해)하고 활동했음에도(그래서 방송사 PD들한테도 미움사기도했지만) 방송사들 서태지와아이들 모시려고 죄다 눈치만 봤던 시절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다면 없던 방송도 만들고 있던 방송도 홀딩하고 그랬을정도니까요 저 초딩때 중딩때 고딩때 서태지와 아이들은 뭐 그냥 전설이자 우상이었죠,,, BTS팬들께 죄송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과 BTS는 비교불과인거 같네요 나름의 공통점도 있지만, 끝으로, 대한민국 음악과 문화,패션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과 이후가 있다는 말이 괜히 생긴게 아닙니다. 지금의 Kpop이 있기까지, 서태지와 아이들이 없었으면... 글쎄요, 여전히 문화 암흑기에 여전히 미국음악 일본음악에 기대고 있었겠죠,, 우리만의 문화나 이런건 없었을거란 거에 불보듯 뻔한거라 생각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단순히 인기 그룹이나 가수가 아니었습니다. 고유명사나 대표명사로, 90년대 한국 대중문화나 시대를 거론할때 독보적인 위치였습니다~
@@sunmoon7945 글쎄요 서태지가 없었음 방탄이 세계의 수준을 만족시키는 음악을 아마 하지 못했겠죠..? 스티브 잡스의 첫 아이폰이 아이폰 13보다 성능이 떨어진다고 그 아이폰 13을 만든 개발원들이 스티브 잡스보다 대단한 것은 아니죠..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1과 요즘 개발자들의 아이폰 13비교할 때 성능을 기준으로 비교하는 건 애초에 비교 기준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서태지와아이들을 시작부터 끝까지 경험한 사람으로써 기억을 적어보자면, 서태지를 처음알게된기억은, 학교 교실에서 친구가 난알아요를 연습장에 가사를 적어서 따라부르는 모습을 본게 처음인거 같네요 ㅎㅎ 당시엔 정품음반을 사면 테잎안에 가사가 있어서 그걸 보면 됐지만, 라디오를 녹음하거나 길보드차트테잎을 산 사람은 가사가 없어 노래가사를 노트나 연습장에 적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ㅋ (당시엔 cd도 대중화되기 전이라 카세트테잎을 사는 사람이 훨씬 많았죠.) 영상에 1만원*170만장 이야기하셨는데, 당시에 정품카세트테입-서태지는 반도뮤직이었던거 같네요-이 4,500원 정도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서태지 시절엔 CD가 대중화가 되기 전이에요. 당시 짜장면이 1500원 2천원 하던시절인데...엄청 큰 금액입니다.. 정품테잎을 사는것도 좀 부담되던 시절이었죠. 지금처럼 잘사는 세상이 아니었으니까요. ...... 1집-2집이 정말 센세이션하고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고, 영상에선 휴식기와 사망설 같은거 언급했는데 1-2집땐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서태지는 3집때 이미지가 상당히 변했어요. 대중적인 노래만 만들다가, 사회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노래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죠. 발해를 꿈구며를 처음 들었던 기억은, 대한민국의 작은소년이 통일을 노래합니다~ 하고 소개하고 나왔던. 그리고 교실이데아로 인하여 좀 반항적인 이미지와 젊은이들을(당시X세대) 대변인 역할을 한다는 이미지가 여기서부터 생겼구요. 됐어!!됐어!! 족해!!족해!! 이런거 좀 학교에서 대화할때나 TV예능에서도 많이 따라하기도 했었다는 ㅎ 카세트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면 사탄의소리가 들린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었구요. 사실 서태지와아이들은 이때부터 신비주의가 생겨나기 시작한거 같네요 은퇴를 하네마네..컴백을 하네마네..대중적인 인기도 많은 그룹이지만, 열성팬들이 워낙많으니, 걱정을 많이 했죠. (요즘이야 유투브나 sns로 근황을 알리지, 당시엔 TV나 스포츠신문의 연예란이 소식을 알수 있는 전부였으니..) 4집 컴백홈 때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놀랐습니다. 스타일링도 어쩜 그렇게 생각을 잘했는지...ㅎㅎㅎ 스톰(292513..번호도 아직기억나네요)이랑 이주노 마스크 보이런던... 마스크가 다 멋있어 보인건 이때가 첨이네요 ㅋㅋ 3집이 대중성에서 약간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4집은 대중성과 음악적독창성을 다 잡은 최고의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시대유감과 Goodbye는 처음앨범 발매될때 보이스가 없이 instrument녹음버전으로만 삽입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보이스가 빠졌을때가 훨씬 좋았던거 같아요) Goodbye가 4집에 들어가서 이번에 진짜 해체하는거 아니냐고 소문이 돌기 시작했었죠. 끝내 은퇴한다고 발표가 나니, 충격에 빠진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정도로 젊은사람들에게 영향력이 많은 사람이 서태지였어요. ..... 음악도 음악이지만, 서태지의 외모도 여자들에게 인기받는데 한몫했었구. *95년인가 96년에 스피드011-012콘서트(sk텔레콤에서 주최했던)를 갔는데, 공연 시작전에 유명한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돌아가면서 틀어주는데, 화면에 인기많은 남자그룹이 나오면 여자들 함성소리가 엄청 컸었어요. 근데 서태지가 화면에 잡히니 R.ef이성욱, 솔리드 이준, 터보 김종국 등 당시에 여자들에게 최고 인기 많았던 가수들보다도 여자들 함성소리가 더 커지는걸 보고. 아~ 서태지가 여자에게 이렇게 인기가 많구나...하고 느꼈던 기억. 제목에 있는 BTS와 서태지는 비교대상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해요. 유투브 등등 사람들에게 온라인으로 알려질수 있는 시대적 배경도 한몫을 했지만, K-POP의 세계화에 큰 역할을 한 그룹이 BTS라고 한다면 서태지는 그 당시에 '매번 센세이션한 새로운 음악을 들고 나오는 아이돌, 작사작곡편곡 안무까지 스스로 해결하는 아이돌,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엄청나게 큰 영향을 줄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수 있죠. 좀 오버하면 젊은이들의 대통령이었다라고 해야하나...ㅎㅎ *지금과 반대로 저당시에는 인터넷같은 온라인이 제대로 깔리기 전이기 때문에 유투브나 SNS 대신 오로지 TV, 라디오, 스포츠신문의 연예페이지(지하철역이나 동네 번화가, 서점에서도 판매하던)가 연예인을 볼수 있는 미디어의 대부분였던 시절이니.... 이런 배경이 사회적인 분위기를 흔들수 있는 정도의 위치까지 만들어 줬다고 생각해요.
서태지는 연예계를 넘어서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든 전무후무한 인물임 정치인들까지 서태지를 지지하거나 견제하거나..교실이데아때는 종교계에서도 난리였고ㅋㅋ 요즘 뉴스는 연예인들 소식도 자주 다루지만 90년대에는 지금과 달리 9시 뉴스에서 연예인에 대해서는 거의 안다뤘는데 그때 9시 뉴스에 서태지와 아이들 컴백 소식이 메인뉴스로 나왔음
시나위. 엑스재팬의 타이지 이름를 따오고 아이들은 비스티보이즈에서 따왔을 거임. 서는 자연스럽게 넣은 것 같고 서대문구 연희동 살아서 넣었을 수도 ㅋㅋ 연대 음대 교수였던 집안 내력에서도 볼 수 있듯 자연스럽게 음악을 소화했을거고 빅뱅이든 bts든 해외 샘플링 하는 거보면 서태지가 이 역사의 시초임.:..
서태지 데뷔때 고딩이었습니다. 지금의 가요계 모든 문화를 서태지가 시작했지요. 예를 들면 컴백이라는 개념, 저작권 개념, 초상권 개념은 기본이고 장르의 다양성과 애국심 고취, 국악기 접목 등등.. 그냥 지금 케이팝을 만든 사람이라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일일이 나열하기가~~ 그냥 뭐든지 최초 최고~
저작권 개념요? ㅋㅋ 적당히 .... 아니 그건 아닌거 같습니다 케이팝의 개념도 싸이라봐야지 그냥 음악계의 조희팔입니다 그와같은 음악을 한사랍은 그 이전에도 있었고, 사실 그들이 인기를 끌었던건 이주노의 춤과 퍼포먼스의 힘때문이었어요 이제 인터넷도 뚫린지 몇십년이되어가는데... 그가 음악을 사랑한 사람이란건 비슷한 음악적 성향을 가진 내 개인적인 느낌으론 알겠는데 그의 부정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지금 문제되고있는 과거에 우리나라 뮤지션들이 밥먹듯 저지른 표절 저작권 개무시등의 행테를 없앴수있고 진정한 오픈된시대에 개쪽 안당해요 요즘 줄줄히 과거의 잘못으로 그간의 저작권료를 토해내는 소송을 당하는 작곡자들이 많아요 서태지의 그런 과거를 그냥 모르쇠로 뭍고 넘어간다는건 아직도 친일매국하는놈들이 득세하고 되려 큰소리 치고 사는걸 어찌하지못하는것과 다를바없어요 정보를 더 얻어 보시길 바랍니다 서태지의 음악은 당시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던 혹은 단절됏던 인터넷이 뭔지도 모를때 생긴 운좋은 사기의 결과물입니다 마치 일본이 독일의 워크맨 카메라 미국의 케릭터 과자 자동차를 카피하여 경제대국이 되어버린것과 같은겁니다 소니가 작년에 그소송에서 졌지요? 10년의 소송끝에? 그럼 뭐합니까 항소해서 또 10년 끌면 ,,, 그냥 그렇게 사는겁니다 좋은 케이스가 아니에요 서태지1집 b면 마지막곡에 락앤롤댄스란 곡이 있죠? 엘버캄이란 믹싱맨이 만든 아이 워너 펑크 란 곡을 아예 그냥 첨부터 끝까지 집어넣고 백킹은 신대철을 불러 백인블랙이란 엄청난 명곡이죠? 그거를 씌워서 만들어요 이건 창작이 아니죠?? ac dc의 back in black은 너무 슈퍼곡이니까 초판에선 아예 없다가 후판부턴 앵거스 영이 작곡했다고 그곡을 자기가 샀다고 적어는뒀더라고요 그곡은 그한곡만으로도 삼대가 먹고 살고도 남는곡인데 그걸 당시 듭보잡 한국애한테 미국애들이 판다고요? 거짓말도 정도껏해야죠 히트곡이 아니라서 그정도로 넘어간 케이스구요 그리고 애초에 그곡은 메인이 i wanna funk입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곡이라고 그곡에 대한 저작권 설명은 아예 없어요 그곡은 기억이 잘 안납니다만 앨버캄도 리메이크 한 60년대 곡이에요 저같은 한때 음악에 미쳐 살던인간들 아니면 잘모를 곡들이죠 당시에는 ac dc의 음악은 한국엔 메니아들만 아는곡이고요 근간엔 cf 영화 예능에 많이 삽입되어 들어보면 아 그곡? 이러지만요 교묘하게 두곡을 섞어 만든겁니다 뭐든 최고 최초 .... 이건 아닌거 같네요 귀하의 환상을 깨긴 싫지만,,, 사실은 그러합니다 추가로 본인이 만들엇다는 무슨 장르가 있던데 ㅋㅋ 아주 완전 대폭소했지요 이미 유럽에서 성행하다 조금식 뭍힌 드젠트한 락 장르인데 ,,., 그냥 기타플레이를 조금 소프트하게 바꾼 리프플레이가 주가되는 장르죠 그걸 자기가 만들었대요,, 역시 우리나라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것들이죠? 이놈 참 이런 패턴 또 써먹네 근데또 먹히네? ㅋㅋ 이러고 실소하던 기억도 있습니다 귀하같은 분들의 순수한 마음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무슨 종교 교주처럼 이용하는데 우리같은 사람들이 보기엔 참 지저분하고 양심없어보입니다 이완용이도 첨엔 독립협회도 만들고 충신소릴 들었다죠? 하지만 돈앞에 나라까지 팔아먹었습니다 다를거 없어보입니다 말이 쓰다보니 길어졌군요 건강하시길
내 소원이 서태지 실물 영접하는거였는데 나이먹고 서태지랑BTS콜라보 콘서트때 처음 봄...그때 서태지BTS를 실물영접했다는게 지금도 잊지못할 추억이네요 ! 진찌 서태지와이이들 컴백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컴백이 무색하게 활동은 짧게하고 잠수타고 진짜 미치는줄 알았는데 ㅠㅠ 나이먹으니 이젠 뭐....ㅋㅋ 그래도 나의우상이지 대장!!서태지 또 음반 나왔으면 좋겠다!
지금은 방송국이 갑이 아니라 대형 기획사가 갑이죠! 그래서 초창기 돈도 빽도 없던 빅히트는 방탄소년단을 메인 방송사에 꽂아서 홍보해줄 수가 없었고요 이게 서태지 시대였으면 그냥 도태됐거나 망했을 텐데 SNS라는 새로운 매개체가 있었고 빅히트와 방탄소년단은 이걸 이용할 수 밖에 없었죠. 결과는 뭐 다 아는 바와 같죠.
@@user-rw7fz1zg3h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동할 당시에는 공륜에서 직접 표절 심의하고 판정했는데 아시는지? 그때 꽤 많은 노래가 표절 판정을 받았는데 물론 서태지는 없었지요. 공륜 심의가 사라진 이후에 서태지가 표절 논란이 있었던 원곡자들이 표절 아니라고 직접 확인까지 해주는데도 표절이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신기하죠? 만든 사람이 들어보고 아니라는데 표절이래ㅎㅎ 어찌나 전문가들이 많으신가 다들 음악의 신이죠. 그 시절 공륜보다 원곡자들보다 더 잘 안다니깐 그리고 난알아요는 빌보드와 롤링스톤지에서 선정한 역대 보이밴드에 각각 11위 36위에 올랐죠. 피치포크에서는 한국 음반 중 평점이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그런 권위 있는 잡지에서도 표절 노래인 줄 모르고 선정했겠어요? 밀리바닐리 노래는 91년에 빌보드 1위까지 한 노래입니다.
팬덤문화? 그전에도 있었어, 조용필때도 있었어. 아이돌 문화는? 소방차때도 있었다. 억지를 부리고 뭐든 다 서태지가 최초냐? 현진영이 춤추고 랩하고 댄스하는건 서태지보다 몇 년이나 먼저했어. 공일오비 엘범에 한국말 랩이 먼저 나와. 신해철 조차도 자기음악에 랩을 먼저 넣었음. 좀 착각 좀 하지말자. 서태지팬이 서태지를 너무 과장해놓았다. 심지어 뮤직비디오애 스노우보드 타는거 나왔다고 스노우보드도 서태지가 우리나라 최초 들여왔다는 글 쓰는 놈도 본적 있음. 서태지도 국내 스노우보드 강사한테 레슨을 몇 일을 받았는데
9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저도 서태지 세대인데요. 우리나라 가요계는 서태지 이전과 서태지 이후로 나뉩니다. 92년도에 데뷔해서 80년대 칙칙한 발라드 일색이었던 가요계를 확 뒤집어 엎은 인물입니다. 가요계 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전반에까지 그 영향력이 파급되었습니다. 서태지 이후로 좀 더 자유롭고 개성있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죠. 예를 들면 그 시절 즈음 해서 길거리 간판도 화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80년대 간판 보면 죄다 남색 바탕에 흰색글씨로 거리 분위기가 우중충했었는데 간판들이 화려해지고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게 서태지 이후였죠. 가요계뿐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전반에 걸쳐 변혁을 가져왔기 때문에 문화대통령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BTS 비롯한 아이돌들도 이런 문화적 변혁을 토대로 가능했기 때문에 서태지가 없었다면 BTS도 없었다고 하는 것이고 저도 이 말에 동의합니다.
업적을 남긴 많은이들 중 패러다임을 바꾼 이들이 어나더레벨에 서게됨. 서태지는 정신세계ㅡ팬과 아티스트 와 사회 물질세계ㅡ방송국과 엔터시스템 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이라 차원이 다른 의미임 서태지와 그 팬들에게 bts와 그팬들은 너무나 고마운 동료이자 후배고 앞세대인 서태지팬들은 그들이 더욱 세계무대에서 위상을 떨쳐주기를 바라고 응원함.
인기있는 가수정도가 아니라 인터넷, 폰 없던 시절인데도 전국의 10대들이 하나같이 열광했을 정도로 파급력, 전파력이 엄청났음. 9시뉴스, 신문1면에 단골로 나올 정도였음. 요즘 아이돌은 기획사 교육시스템으로 훈련받고 곡받아서 데뷔하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은 기획사없이 혼자 팀꾸려서 작사, 작곡, 안무 자기들이 다했음. 저때 발라드 가수들 신승훈, 이범학이 1위하던 시절에 엄청난 비트에 춤을 겸비한 난알아요, 하여가, 교실이데아, 컴백홈, 필승으로 매 앨범마다 파격적으로 변신했음. 가수들이 앨범끝나고 휴식기 가지는 것도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 해서 보편화됐고 80년대 갓 지난 92년에 한국 문화 수준에서는 엄청 세련된 미래형 가수 느낌이었음. bts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많은건 사실인데 같은 조건으로 인터넷, 폰없던 시절에 기획사없이 데뷔해서 서태지만큼 영향력을 끼쳤을까 생각해보면 쉽지않을거 같음. 서태지는 최초, 열악한 환경에서 자수성가한 케이스라 비교불가고 당시 대단했다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됨. 컴백홈때 무대의상, 노래 보고 오면 저게 30년전인걸 믿기가 힘듬.
90년대 중반 서태지라는 가수가 나타나서 1집 대성공이후 사랑타령 감정 타령 따위 음악이 아닌 시대상을 비판하는 노래로 검열에 걸리고 이를 빌미로 방송사와 유통사들은 갑질을 하기 시작.. 이때 서태지는 자신의 싸움에 문화계 전체를 끌어들이는 신의 한수를 보여주지... 문화계 전반의 부조리와 방송 유통사의 부조리를 수면 위로 들어내고.. 여기에 문화계 인사들 까지 동조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진다... 이때 당시 야당 대표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이들과 직접 만남을 가지고 이들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면서 문화 개혁이 시작된다.. 여기서 쟁점이자 핵심은 문화컨텐츠 유통사 중심의 생태계를 컨텐츠 제공자 중심의 생태계로 전환이란다... 즉 컨텐츠 제공자가 정당한 수익을 올릴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것이지.. 이때 음원법 저작권법등등이 만들어 졌고.. 3대 기획사니 어쩌니 하는것들이 비로소 생겨났다.. 이전까지는 정상적으로 돈을 벌수있는 구조가 아니였지... 이것이 대한민국 문화 역사에 가장큰 곡점이자.. 한류문화의 시작점입니다.
서태지의 가장 큰 의미는 음반 시스템 전체를 뒤흔들어버렸다는 점에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화적 충격같은 거야 표현하자니 혁명이란 거지 이건 말 그대로 가요계 시스템 자체를 흔들어버린 혁명이었거든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내가 만든 곡으로 내가 번다"는 개념이었어요. 이전까지 가수는 음반사나 기획사에 소속되어 활동하면서 제대로 정산을 받지 못했거든요. 판매량을 알려주지 않고 알려줘도 그걸 정확히 배분해주지 않아요. 그때 사장님 마인드는 이거였죠. 내가 너 띄워줬잖아? 어디서 은혜도 모르고 분배 얘기야? 넌 나 덕분에 이름값 얻었으니 행사로 돈 벌면 되지. 이거였거든요. 그런데 서태지는 자기가 전곡을 프로듀싱한데다 전국적 인기를 끌게 되죠. 그래서 이를 거부합니다. 내가 곡 만들고 부르는 노래니까 저작권 관리를 내가 다 하겠다. 이게 바로 기성 음악계에 충격이었던 거예요. 마음대로 스케줄 잡는 매니저도 교체해버리고 자기 곡의 인세를 전부 자기가 관리하게 됩니다. 서태지가 없었으면 BTS도 없었다. 이건 문자 그대로 사실이에요. 만일 한국 가요계가 지금까지도 낙후돼 있었다면 지금처럼 재능있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지 않았을 테니까요. 정당한 분배 없는 성장은 없거든요. 물론 서태지가 대번에 관행 전부를 없앤 건 아니지만 인식이 흔들리면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기성 체제는 위기감을 갖게 되겠죠.
교육비판에 대한 곡을 서태지가 처음으로 발표했고, 그 이후에 많은 가수가 교육비판에 관한 곡을 냈죠. 그런데 서태지가 교육비판에 있어서 진정성이 있는 이유는 그 자신이 교육제도에 대한 반발로 자퇴를 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자퇴를 한다? 사람취급을 안했던 시대입니다. 자퇴생도 성공할 수 있다는걸 보여줬죠.
서태지와 아이들과 BTS는 서로 다른 의미로 대단하다고 할수가있다. 서태지는 말 그대로 노래를 작곡해내는 천재에, 그가 부르는 가사, 추는 춤 자체가 그냥 하나의 혁명? 문화가되는 엄청난 가수다. 기존의 한국 가요계의 장르 판도를 뒤집어버린 가수다. 90년대 초 한국의 학생수는 무려 1500만명에 달했다. 지금보다 거의 3배가 많았고 국민의 대다수가 학생들과 젊은 사람들이었으니 말 그대로 나라가 들썩들썩할만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래서 서태지는 문화 대통령이라 부를수있다. 90년대 K팝이 세계화는 되지않았지만 이미 현재 보이듯이 K팝이 세계 최고의 팝이듯이 한국 최고가 세계 최고인셈. 반대로 BTS는 음악성에서는 서태지와 비교가되지않는다. 말 그대로 그냥 단순히 인기 많은 아이돌이다. 그래도 BTS도 역사적으로 기록될만한 업적은 유튜브의 발달과 자막의 발달로, 다른가수들과 달리 유튜브로 세계 공략을 나섰다는점. 그로인해 K팝이 전 세계화로 퍼지는데 큰 역할을 한 아이돌이라는점이다. 결론적으로 서태지의 성공에는 힙합과 랩을 국내 대중음악으로 퍼트렸다는점, BTS의 성공에는 유튜브와 가사 자막의 발달이있다. 결국 서태지나 BTS처럼 성공하는 가수들은 결국 남다른 시야로 주변의 음악 장르나, 매체를 잘 이용해 음악의 판도를 바꾸는 선구자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다. 물론 단순히 선구자라고해서 되는게아니라, 국민들이 인정할만한 실력을 갖췄을때 그때 인정받게되는거다.
외국 케이팝 다큐에서 공통적으로 현대K-POP의 시조라고 다루는 레전드가 서태지 1. 트로트와 발라드가 주류였던 한국대중음악 장르 혁신 2. 대중문화 향유계층의 주역이 30대 이상에서 10대 청소년, 20대 위주로 바뀜 3. 다음 앨범까지의 휴식기와 컴백 개념의 형성 - 이전까지 가수는 절대갑인 방송국PD한테 쉴틈없이 끌려다니며 코메디프로까지 출현함 4. 가수 패션의 변화 - 서태지 이전 가수의 염색, 장발은 금기시 되는 등 패션의 규제가 많았음 5. 사회부조리에 대한 저항 - PD의 갑질, 가수협회와 음반제작사의 착취에 저항하여 현대 K-POP가수들이 성공에 대한 제대로 된 정산을 받는 기틀을 닦은게 서태지, 서태지 이전의 레전드였던 조용필도 수익의 착취 구조를 벗어나지는 못했었다 6. 가사 주제의 다양화 - 군사독재 시절 대중문화규제로 사랑타령 일색이던 노래 가사의 주제가 기성세대 비판 등으로 다양화, 시대유감은 가사의 과격성으로 수정을 요구 받았지만 가사를 아예 삭제하고 수록함으로서 사전심의제 폐지를 이슈화 시키고 결국 달성함 BTS도 대단한 그룹이지만 서태지가 한국 대중음악계에 남긴 발자취는 BTS 등장의 밑거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BTS 멤버들도 서태지의 팬이라 밝혔음
Bts가 아니라 한류가 없었다. 맞습니다. 드라마 음악 영화 뷰티 등 모든 문화 사업의 시작점입니다. 방송계 정부의 권력과 싸웠어요. 서태지는 음악만 했는데 서태지가 음악 대통령이 아니라 문화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이유 입니다. 현실의 폐단을 영화 음악 드라마로 말한다?? 있을 수 없는 것이죠. 전투에서 져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 했지만 전쟁에서는 이겨서 지금의 한류를 만들 었습니다. 방송은 공중파 밖에 없는데 서태지는 대부분 출연정지 당했고 뉴스에 사회 악영향이라는 듯 말 했어요. 당시 최고의 가수를 방송에 안내보내는 것이 방송계와 정부의 권력이었어요.
아 맞다.. 제가 예전 잠실종합운동장 서태지콘서트 갔었는데, 당시 서태지가 실력있는 어린후배님들이라고 게스트세워주고, 많이들 응원해주시라고 왠 잘 알려지지도않은 팀 하나 게스트무대와 자신도 같이 합동무대해주며 응원해줬던 팀이 있었는데 그것이 그러고보니 지금의 방탄소년단..ㅋ
4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서도 영상 제목에 서태지라는 글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로 클릭하게 만듦. 티비를 별로 안 좋아해서 티비를 거의 안 봤었는데 서태지를 보기 위해 티비를 봤었음. 유투브는 고사하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서태지를 볼 수 있는 게 티비밖에 없었음. 나의 젊은 날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가수임.
서태지가 이루어놓은것들 1.스타일리스트 제도(서태지 스타일리스트가 그당시 영국유학파였고 지금은 그분야에서 거물급 되어버렸음) 2.사전 녹화 제도 3.잠정휴식 제도 4.저작권 권리 5.방송계 두발염색 자유화 6.가요방송 최초 눕방 시전하면서 노래부른 최초의 가수 7.사전심의 제도에 상당한영향을끼침 다른건 너무 많아서 까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