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ll5850 당신은 중국인이라고 하였고 조선인을 사랑한다면서 어째서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 사진을 사용하고 있는것인가??? 잘못된 역사라는걸 모르고 있는것인가? 중일전쟁에서 일본군인들이 난징 민간인과 중국군포로 수십만명을 살해한 난징대학살 사건을 모르는것인가?
내 머리맡에 있던 요강속에 오줌이 꽁꽁 얼어붙었던 , 1950년 2월 황해도 구월산에서 할머니와 미인이셨던 막내고모님이 걸어서 그 삼엄했던 38선을 넘어 서울에 오셨다 되돌아가시자 6.25가 터졌습니다. 그때 내 나이가 8살로 마포구 용강국민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내가 손녀를 9년째 기르면서 자식과 손자들을 보고파 그 엄동설한에 ! 눈물이 앞을 흐리눈구료! 혈육의 정 ! 불구덩인들 내 못 들어가겠냐!
Imjin river's clear water Flows, flows down All kinds of birds, freely Fly across, but My hometown in the south Can't go, even if I want to Flow of Imjin river, Do you flow, carrying my wish In the fields across the river, Only the birds to leave cry In the barren fields, Digging out the grassroots but The fields, the sea of flowers Dancing like the waves The flow of Imjin river Cannot be divided My hometown in the south Can't go, even if I want to Flow of Imjin river, Do you flow, carrying my wish
first-time ever I've listened this song in Korean language. Beautiful ! it took me back to my youth days nearly 40yeras ago. I was a uni student and listening many fork songs that time. this was one of them. song was sung in Japanese by Japanese armature musician called fork crusaders. とても美しい、心に残る歌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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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인 부락 성장입니다.남북조선인의 부락이었습니다.영화의 팟치기가 그것 풍경이었습니다.어린 아이시에 의무 진강, 아리랑을 근처의 오모니, 아버지, 한 메이, 하이 베이눈물 흘리면서 노래하고 있었습니다.저희들은 왜 울어?(이)라고 (들)물으면 전쟁이 나쁘다고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어른이 되면 알아요.라고 말했어 생각해 냅니다.이 곡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옵니다.가라오케에서는 눈물이 넘쳐 나와 끝까지 노래할 수 없습니다.조국 분단은 일본의 패전이 원인이야라고 생각합니다.일본의 패전이 나쁜 것인지 지금은 복잡한 기분입니다.
岩田富可史 할아버지, 할머니가 "경상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가셨네요..즉, 서울 기준 표준말로는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나...경상도(한국의 대구, 부산 지역)에서는 한메이를 "할매", 하이베이를 "할배" 라고 발음합니다. 아마도...할배 (Hal bae), 할매(hal mae)라는 발음을 하면서 자랐을겁니다.
이 노래를 만들 때는 남한이 못 사는 것을 묘사한 곳이 2절에 "협동벌 이삭바다 물결위에춤추고 강건너 남쪽은 풀뿌리를 캔다"는 가사는 협동벌이라는 가사는 북한의 풍요로움을 말하는 것이고 강건너 남쪽에는 풀뿌리를 캔다는 것은 남한의 비참한 생활을 빗대어서 한 가사이다.이 노래는 1956년 월북 시인 박세영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에 고종환이 곡을 붙인 북한 가곡이다.50~70년대는 북한이 우리보다훨씬 잘 살았다.
양산도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면서 하나를 부연하자면 박세영 배재학당 선배님이 작사를 할때는 남북의 우월감이란 절대로 없었다고 이 늙은 후배는 확신 합니다. 임진강 남쪽에는 해병여단 수색중대가 주둔하는 곳으로 전역이 갈대밭으로 되있어, 우리 해병수색대원들이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도 했었지만 그쪽에서도 내려왔다가 올라가기도 하든 곳 입니다. 예비여 해병 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