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 #잔다르크 참고자료 Beaune, Colette: Jeanne d'Arc, Paris 2003 Krumeich, Gerd: Jeanne d'Arc. Die Geschichte der Jungfrau von Orleans, München 2016 Thomas, Heinz: Jeanne d'Arc. Jungfrau und Tochter Gottes, Berlin 2000
@@gongnam05 장 마리 르펜?... 알제리를 식민지로 다시 만들자고하고 프랑스 직업 뺏으러 이민온 아랍계 흑인계 동양계 때려잡으려고 한 놈이 프랑스 입장에서 국민 영웅이긴하지 비록 백인 우월주의에 반유대 정서로 홀로코스트 옹호하던 놈이었지만 아따 진짜 깨끗하고 진정한 보수랑께 ㅋㅋㅋ
여기서 주목할 점은 파리 대학이 당시 프랑크 왕국의 샤를 왕조에게 따르지않고 오히려 잉글랜드에 부역하여 적극적으로 잉글랜드에 도움을 준 사실입니다. 이는 당시 민족, 국가 등의 개념이 제대로 형성되기 이전임을 감안해야합니다. 흔히 영화에서 묘사되는 잉글랜드가 영국, 프랑크가 프랑스라는 이분법적 개념은 당시에는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굉장히 모호한 회색 지대가 많았습니다. 잉글랜드 왕 리처드도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했고, 실제로 잉글랜드와 프랑크는 사촌 지간으로 다리 하나만 건너면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잔다르크의 활동을 포함한 100년 전쟁은 영국-프랑스 대립이 아닌, 한 친족 내에서 누가 주도권을 쥘 것인지의 경쟁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것입니다. 실제로 전쟁의 원인도 잉글랜드가 프랑스 북부 일부 영토를 상속한 것이 적법하였으나, 리처드가 더 큰 욕심을 바라고 프랑크 샤를(영국식으로 치면 찰스) 가문의 상속된 영토를 빼앗은 것이 원인이죠. 상속 이전에는 사실상 같은 한지붕 사촌 지간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의 민족 개념으로 본다면 당시의 정확한 역사적 사실을 캐치하기 어려울 수 있죠.
당시에도 나라 개념이 있기는 있었죠. 다만 지금과 많이 달랐던 건 사실입니다. 1199년 봄에 리처드 1세가 '리모주 자작령'(Viscomté de Limoges)란 곳을 공격하다가 화살에 맞아서 사경을 헤매다가 죽었는데, 이것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그 당시의 프랑스 왕이 요즘으로 치면 UN사무총장 비슷한 위상밖에 갖고 있지 못했다는 점이죠. 하지만 분명히 '나라'도 있었고, '왕'도 있어서 영주들이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중세는 지금보다 덜 복잡했을 것이라는 전제가 잔다르크의 이야기를 공부하면서 깨져버렸습니다.. 왕족과 귀족들의 관계와 종교재판에 넘겨지기까지 지나온 과정은 여러가지 모략들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속에서 잔다르크는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낸 사람이 아닐까요.. 백년전쟁에서 그녀 혼자만이 승리했던 것이죠.. 이렇게 쓰니까 중2병 돋네여 ㄷㄷ
지상전과 해상전이라는 차이도 크게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이순신은 이미 수십년간 영토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한 적진으로 진격해야하는 잔다르크에 비해 크게 증강된 수군으로 연안과 도서의 지배권은 확보해뒀기에 병력을 이동하는데 훨씬 자유로웠죠. 사실상 영지도 병력도 없어서 매번 모든 병력과 보급을 왕에게 빌려야 했던 명함만 사령관인 잔다르크에 비해 이순신은 자기 수족처럼 부릴수 있는 함대가 있었고 둔전제를 통한 보급도 가능했고요
냉정하게 말하면 이순신장군은 해상 보급로 끊는 수준입니다 서해 해상보급도 끊겼어도 일본군은 함경도까지 진출했습니다 일본군이 한강이남으로 후퇴한 가장 큰 이유는 이순신장군의 보급끊기가 아니라 명군10만의 참전입니다 조선명예황제 만력제가 명의 총력을 다해 조선을 구원하다가 자기들은 망해버렸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잔 다르크는 영국에 의해 이단으로 화형 당했기에 지금과 같은 인지도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되네요. 오히려 살아남아서 프랑스 진영으로 들어가 전쟁을 끝 마쳤다면 국왕보다 지지도가 높은 영웅이 되었을 텐데 그런 인물은 인류 역사상 살아남기가 쉽지가 않았겠죠. 영국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기에 국민적 영웅이 된 것이지 살아남아서 전쟁을 끝냈다면 끝맺음이 좋지 않은 그냥 유명한 장군이 되었겠죠.
@미스타김 극우의 상징이 되어서 잔다르크를 공식적으로 예찬하기 불편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구요. 특히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대표인 '마린 르 펜'도 여성인데, 잔다르크 동상 앞에서 연설하는 등 스스로를 구국을 위해 몸바치는 여성인 잔다르크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식의 전략을 지속적으로 써왔대요.
@@user-wu4bx9po4g 소인배라는 뜻을 아시나요?? 진실과 상관없이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되거나 방해가 된다고 해서 상대를 음해하는 사람을 소인배라고 하는겁니다 국왕이 소인배인것도 맞고 필요할때 어린소녀를 이용해먹고 버린 파렴치한 인간이 맞습니다 지금도 소인배들이 자신들이 필요할때 써먹고 자신에게 필요없다고 해서 이용해먹고 버리는 파렴치한 인간들이 자신들은 그때 그래서 너를 배신할수 밖에 없다고 핑계를 대죠 자신이 소인배짓을 해놓고도 소인배인줄도 모르고 사는 인간이 되지 마시길 바랍니다
@@jhs9960 정치의 기본은 명분입니다 명분이있어야 백성의 지지를받죠 당시 잔다르크는 백성의 열렬한 지지를 받던 영웅이지만 왕은 급한불은 껏는데 거슬리죠 언제든 자기자리를 넘 볼 수있고요 이순신도 똑같은 인물이죠 영웅은 기득권의 눈에가시입니다 대인배라고 살려주면 나폴레옹이 혁명을 하는거구요ㅎㅎ
10대여자애 하나도 어찌 맘대로 못하고 이용해 먹을려고만 궁리하는 권력의 하이니에나들이란 생각이 든다. 그 10대 여자애가 좀 대단했긴 하다만 잘난 엘리트님들께서 그걸 어떻게든 이용해 먹지 못해서 안달인거보니 참 ㅈ같은 모습이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하시는 분들은 염치란게 없으신건가 없어야 정치를 할 수 있는건가
잔 다르크 생존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지금까지 10여년동안 이따금씩 고민했던 문제인데, 지금 시점에서는 두 가지 가능성 중 하나가 진실이 아닐까 잠정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하나는 역사에 알려진 그대로, 1431년 5월 30일에 루앙(Rouen)의 저잣거리에서 화형에 처해져서 만 19세 꽃다운 나이로 처참하게 죽었을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천벌을 겁낸 잉글랜드 수뇌부가 늑대가 우글대는 들판에 잔을 내버렸을 가능성입니다. 정사가 사실일 가능성이야 너무 당연해서 부연할 필요조차 없고, 정사의 진실성에 의문스러운 정황이 보이는데 정사가 거짓일 경우 거의 유일하게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가 잉글랜드 수뇌부가 잔을 들판에 유기했고 잔이 천신만고 끝에 살아났을 가능성입니다. 잔이 화형당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소위 '가짜 잔 다르크'라고 부르는 여인에 대한 사람들의 증언 때문입니다. 잔이 화형당했다고 알려진 1431년에서 5년쯤 지난 시기에 잔을 자칭하는 여인이 나타났는데, 잔의 가족, 전우 등 잔의 지인들이 모두 그 여인을 잔으로 인정했죠. 일단 잔의 전우들이 진짜 잔으로 인정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잔의 가족들이라면 어떤 이익을 위해서 사기를 쳤을 수도 있겠지만 잔의 전우들에게는 그럴 동기가 없죠. 더구나 잔의 가족들이 굳이 가짜 잔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이, 잔이 살아나면 잔의 가족들에게 이로울 건덕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잔 다르크의 가족들 품성이 굉장히 훌륭했다고 합니다. 루앙에서 잔이 종교재판을 받던 시기에 종교재판소가 잔의 고향 동레미로 사람을 보내서 잔과 잔의 가족에 대한 악평을 수집하려고 했는데 이웃의 평이 좋기만 하고 건질 것이 없어서 빈손으로 돌아왔답니다. 종교재판관들이 화가 나서 정보수집원에게 품삯을 안 줬다더군요. 애초에 잔의 가족이 죽은 딸 살았다고 뻥치는 허튼 짓을 할 사람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샤를 7세를 만나더니 대중 앞에서 자신이 가짜라고 고백하고 프랑스 동부로 가서 혼인해서 자식 낳고 살다가 죽었습니다. Robert des Armoises라는 사람과 혼인했죠. 진짜로 이 여인이 가짜였다면 그동안 속았다며 분노한 대중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텐데 그런 이야기도 없고요. 그래서 잔 다르크가 죽지 않고 살았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는데, 누군가가 탈옥시켰다는 설 등이 있지만 그건 현실성이 없습니다. 실제로 잔이 탈옥하다가 잡힌 적도 있어요. 잉글랜드 수뇌부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살려줬나 생각한 적도 있는데, 잔에게 썩은 음식을 먹이기도 한 사람들이 그랬을 것 같지도 않더군요. 제가 내린 결론은, 정사가 그대로 사실이든지 아니면 잉글랜드 수뇌부가 천벌은 두렵고 잔은 밉고 해서 늑대가 우글거리던 1430년대 프랑스 들판에 잔을 내버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늑대왕 쿠르토'가 활동하던 무렵입니다. 물론 이 가설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잉글랜드 수뇌부가 잔을 들판에 버렸다면 1431년 5월 30일에 저잣거리에서 화형당한 그 소녀는 누구였는지, 어떻게 바꿔치기가 가능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의문을 제기할 가치가 있는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이 영상에 이도형 님 댓글이 보이는데, 이도형 님과 다시 논쟁을 벌이고 싶지는 않으니 이 댓글을 보시더라도 그냥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잔 다르크 본인의 무언가를 지켜주기 위해서 가족과 동료들이 짜고 벌인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가짜 잔 다르크가 여기저기서 나타나서 본인의 명성에 흠집을 내게 생겼다던가(진짜 마녀처럼 활동한다던지) 혹은 잔 다르크 본인의 어떤 권리나 혹은 국가에서 필요한 상징성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명목상으로라도 본인이 살아있다는 식으로 꾸며야했을지도요. 사후에 여기저기에서 굉장히 많이 이용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왕까지도 참여한 짜고치는 판이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끝났을 때 '나 사실 가짜임' 하고 인정하고 보상을 받고 다 끝냈을지도요.
@@라크라크 다만, 그러기에는 이 '가짜 잔 다르크' 클로드가 진짜 잔 맞다고 증언한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하더군요. 입 맞추기에는 머릿수가 너무 많아요. 그리고 샤를 7세가 그럴 사람 같지도 않고요. 제 가설의 더 큰 허점은 사형수 바꿔치기가 사실이라면 1431년 5월 30일 그 날에 가짜 사형수임을 들키지 않고 화형을 집행할 수 있었을까 부분이지 말씀하신 쪽은 아니지 않나 조심스레 말해봅니다.
인류 역사 5천년 동안 이미 권력자가 존재하는데 다시 새로운 도전자가 나올때 그 도전자를 방치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정도로 권력의 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기존의 권력자는 반드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만한 후보들을 죽여야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엔 아빠와 아들같이 가족도 예외가 있을 순 없습니다
랭스를 점령한 것 까진 좋은데 홀로 파리로 진격하고 성모마리아 생일까지 전쟁을 지속한게 스스로 자멸하게 되는 계기였네. 자신이 아무리 뛰어나도 모두를 적으로 돌리면 제명에 못살지. 초패왕 항우 같군요. ㅎㅎ 그리고 시골에서 조용히 살던 소녀가 병법천재였다는 부분은 한신이랑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잔다르크가 억울하게 정치 보복을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독단적인 면이 분명히 있었네요. 내 생각이 맞아도 다 아니라고 하면 조용히 가만히 있는게 보신에 좋습니다.
@@jasonpark1750 왕한태 시기당하고 무능력한 동료땜에 선척 다 파괴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워 나라지키고 전사한 이순신장군님을 왜 비교함? 안타깝고 비극적인 영웅같다고 하면 100번 동의하지만 이순신 장군 이름을 거기서 왜 운운함? 비교할걸 비교하세요 어디 같잖은 사람하고 비교를해 ㅉㅉ
당시 잉글랜드군은 현재의 영국군이 아닙니다. 당시 잉글랜드왕 헨리5세는 모국어로 프랑스를 구사하고 혈통상 프랑스인에 가까웠고 왕가인 프랜타지넷 왕가 자체가 프랑스노르만계 입니다. 따라서 플랜타지넷 왕가의 본래 영지가 현재의 프랑스 서부 대부분이었고 오히려 프랑크 왕보다 영토가 더 넓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민족 개념과 정치 개념으로 백년전쟁을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구요~ 헨리5세의 군대는 잉글랜드에서 데려온 장궁병과 주력부대를 제외한 나머지는 프랑스 내 헨리5세의 영지 출신인 프랑스인었다. 그리고 잉글랜드군와 동맹이었던 부르고뉴도 지금은 프랑스의 한 지역에 불과했지만 당시에는 예전의 부르군트왕국을 이은 반독립국 상태였고 단지 프랑크왕국에 복속되어 공국으로 봉작을 받은 것이므로 이후에도 프랑스의 왕권이 약하거나 부르고뉴공국의 힘이 강성해지면 독립적 행보를 보였었다. 그러므로 당시 헨리5세의 편에 섰던 프랑스인과 부르고뉴공국을 매국노라고 하는것은 당시대의 상황과 맞지 않는 잘못된 인식이다. 백년전쟁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의 영토 침략전쟁이 아니라 방계 프랑크족 출신 프랑스왕과 그 친척인 프랑스 출신 잉글랜드왕과의 왕위 계승 전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잔다르크의 신성성은 샤를 7세와 축근들의 정통성 극복을 위한 연출이었을 것 같아요.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특히나 신학자들과 대등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적이고 군사학에도 재능있는 시골 평민 여성이라기보단, 군사학과 신학에 재능이 있는 귀족 소녀를 통해 상황을 타개하려던 왕의 큰그림이 아니었을까…
배경없는 시골출신이고 여성이라 와전된거 아닐까요. 성녀타이틀때메 만약 과장됬다고해도 전쟁의 승리를 이끌었던 사람이니 어느정도는 머리좋았을 거 같아요. 이단심문할때 높은 사제들이 어떻게든 몰아가려고 함정질문하는 데 너무 잘피해서 잘 대답해서 도리어 성직자들이 무안해졌다고하고
그 때 당시에 시대상으로 본다면 백년전쟁이 끝나면 잔다르크는 프랑스 구국 영웅 1등공신임에는 부정을 못하죠.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제가 볼 때는 여성에 대한 정치적 억압이면서 여성의 입장에서는 여성정치 참여의 방해로 그 정점에 잔다르크가 있었지요. 잔다르크 통하여 여성인권 신장한다는 움직임에 계산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