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_milwall 가락은 문정역 법조단지 가끔 가는데 여기도 사무구역이라 주말에 오히려 사람 없는 느낌이고 마천은 너무 변두리라 거의 가보지를 못했네요 ㅋㅋ 특이한게 마천역이 대로변이 아닌 그냥 주택가 골목안에 있는 느낌이었죠 바로 옆에 저층주택이랑 학교입구있고....
상전벽해 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철도 중 하나가 인천공항철도... 초기 때만 하더라도 역도 그리 많지 않고 환승 할인도 적용되지 않아서 '이거 왜 탐?' 했지만 점차 공항철도 주변 지역이 개발되고 환승 할인도 적용되고 서울역까지 연장되고 9호선 신설되면서 출퇴근 시 사람이 미어터지는 철도로 떡상함.
섬이었던 잠실의 옛날 이야기 재미있게 정리하셔서 잘 봤습니다~ 2호선에 은근 환승통로가 긴 막장환승역이 많은데... 특히 역사가 아예 옆길로 따로 지어져서 잠실보다 한술 더 뜨는 충정로역(2-5) 잠실이나 충정로나 똑같이 경사로인데 곡선구조라 무빙워크도 못만들고 홍대입구도 (경-공은 개념환승이지만) 2-경/공 환승통로가 꽤 긴데 그나마 무빙워크 있어서 나음... 에스컬레이터 없으면 어떻게 환승했을까 싶은 지상2-지하7 대림역 헬도림은 나름 개념에 가깝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막장
@@Ycmjg37143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5호선 김포공항역에는 무빙워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5호선 방화 ~까치산이 96년 3월 개통, 8호선 모란~잠실구간이 96년 12월 개통했습니다. 착공은 5, 7, 8호선 동시에 하고 같은 해인 96년에 개통했으니 기술적으로 불가능한건 아니었습니다.
@@yjs-x5b 이미 설치해서 개통한 겁니다. 무빙워크가 바닥에 보도블럭 교체하는 것 처럼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무빙워크 하나만 설치 할래도 공간까지 확보해놔야 하는데 이미 건설 당시에도 무빙워크를 설치계획을 했습니다. 그래서 개통 당시에도 무빙워크 설치해서 개통했는데 이건 2기 지하철 건설 영상에 나옵니다.
좀 이기적인 생각이신 듯 하네요. 걷기 불편한 사람도 있고, 짐이 많아 이동이 힘들 수도 있고, 빠른 이동이 필요할 수 있는데 무빙워크 없이도 그정도 거리는 걸을 만 하니 걸어다녀라? 너무 본인과 몸상태가 건장한 청년층만 생각하는 발언 아닐까요? 나한테 겨우 200m이겠지만 다른 사람도 힘들지 않은 거리가 아닙니다. 그런 논리면 김포공항역, 수서역, 여의도역 등에 있는 무빙워크도 다 떼어내야겠네요.
@@gurorapid 음 뉴스 내용만 보자면 저 일대 지질 특성상 개착식 공법이 불가능했던게 아니라 지질특성만 놓고보면 오히려 개착식 공법을 사용해야만 했지만 주민들의 피해를 생각하면 그 공법을 사용하는게 불가능했다가 맞는거 같은데 그럼 저 기사 내용이 잘못된건가요?? 답변 감사합니다!!
구리역은 경의중앙선 구리역이 대로변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시내버스들도 걸어서 1~2분의 가까운 거리이기는 하지만 구리역 바로 앞이 아닌 경춘로 중앙차로 정류장에만 정차하고 있고 하여간 여러모로 골치가 아픈 위치 선정인 것 같습니다. 건설 주체였던 GS건설이 GS백화점 (현 롯데백화점) 밀어준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을 만큼 당시에도 지금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위치 선정이 아닌가 싶네요 ㅋㅋ 그나마 잠실보다는 나은 것이, 고저차가 있다고 해도 에스컬레이터의 비중이 높다보니 체감상 걷는 거리는 잠실보다 짧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공청회 당시 발표한 환승통로 길이는 157m라고 해요.
늘 유익한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6분 30초 경 설명에 오류가 있어 몇자 남깁니다. 1. 우선 잠실 북쪽의 왼쪽부분은 과거 청계천이 중랑천과 만나 동호, 용산, 인천으로 흘러가는 강이 있었고 자양동 광장동 쪽은 강북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사서를 보면 조선 광해군때 대홍수로 북쪽의 신천(새내)으로 물길이 나서 둑을 쌓아 물길을 막으려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일제시기인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오늘날 송파, 방이동 일대가 완전히 잠겨버린 일이 있긴했으나 신천 쪽이 일제시대 홍수로 완전한 강이 된 듯한 설명은 재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 시대 한강 주변 지도에도 잠실 북쪽 신천강이 정확히 표시되어 있고 조선후기 여행기에도 신천강쪽으로 배를 타고 유람하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2. 잠실섬은 현재보다 훨씬 큰 모래섬이었고 둑이 없어 홍수피해가 상당했습니다. 공유수면 매립과 모래준설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잠실일대에 높은 제방을 쌓아 현재의 잠실경계를 만들고 둑위로는 강변로(현재의 올림픽대로)를 건설하여 삼성 청담동과 연결하였습니다. 잠실섬 경계를 벗어난 곳의 엄청난 모래와 영동(현재의 반포 서초 강남일대)개발을 하며 발생하는 토사를 공유수면 매립에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백제토성을 건드리려했다는 이야기는 생소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영상에 말하는 쓰레기를 매립한 곳은 현재 동서울터미널 자리 강변역 부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석촌호수는 매립 이후 토지분양금액보다 매립비용이 더 커 수익성이 낮아 남겨둔 것입니다. 늘 좋은 영상 감사드리며 보다 좋은 콘텐츠를 응원하며 몇자 남겼습니다.
해당 내용은 잠실섬을 다룬 기사나 서울도시계획과 관련한 서적 등을 참고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신천강의 물길이 생겼다는 내용은 이를 다룬 기사마다 내용이 조금씩 달라 '홍수로 인하여 생겼다는 것' 정도로만 밝혀두었습니다. 공유수면 매립공사 당시와 관련된 내용들(몽촌토성/매립 과정)은 서울 도시 계획과 관련한 서적을 참고하여 확인한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궁금한게 홍수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면 지금 여의도랑 샛강이랑 똑같은데 왜 여의도는 그대로 남기고 잠실은 강북에서 억지로 강남에 붙인건가요? 그냥 원래있던 송파강쪽으로 물길을 정비하고 새내는 광해군때처럼 잘 막던가 하지... 구지 연약 지반을 만들면서까지 공사를 왜그렇게 일부러 크게 키운건가요?
@@rreinhardt2393 광해군때 신천물길을 막으려 승도들을 동원해 제방을 쌓았으나 유량이 늘어나 둑이 터져버렀고 광해군 이후 신천 물길은 강이 되어버립니다. 결론적으로 일제시대에는 잠실 북쪽 신천은 배가 다니는 강이었습니다. 부연설명을 드리면 광해군 때 물길을 막으려 한 이유는 신천물길이 선릉으로 직선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기 1960년 후반 서울 전지역이 개발되는 가운데 한강도 정비사업이 이뤄지며 한강을 준설하고 한강수로를 직선화하면서 송파강은 매립되고 탄천, 성내천등도 직선화 되면서 커다란 제방이 쌓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또한 잠실이 과거에는 양주군에 해당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