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입니다. 원작을 보고나서 이 영상을 봤는데. 너무나 편집을 잘하셨고 역사적 고증까지 완벽하십니다. 감탄 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아무런 대의명분도 없는 단지 권력을 쥐려고 했던 전투 입니다. 전쟁에 선악이 없지요ㅡ 단지 인간이 미치면 저지르는 악행이라고 생각합니다.
@@jjp5997 이자성의 난이 명나라를 끝장낸 건 맞지만 이미 그 전에도 거의 다 망한 수준이었습니다. 원숭환의 처형 이후에도 국경 방어가 이어지긴 했지만 홍타이지는 방어선을 우회해서 중국 본토를 신나게 약탈했고 명나라는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한족 장수들이 명나라를 계속 배신하거나 청나라에 투항한 게 다 이유가 있는 거예요. 국가 운영 시스템에 한계가 아주 많았습니다.
@@user-KangPyeong유럽의 농노 비율을 생각하면 조선의 노비제도는 대단할 것도 없다는 걸 알텐데... 게다가 저 시대는 전쟁을 제외해도 세금을 최소 절반씩 떼가는일본보다는 조선이 살기 좋았음 왜란 때 회유책으로 세금을 3할만 걷겠다고 선심쓰는척 했다가 의병이 더 일어났는데
대표적인게 딸인 코마히메가 처형당한 모가미 요시아키. 세키가하라 전투에 직접 참전하지는 않지만 이에야스에게 적대적이었던 우에스기 가케카츠를 다테 마사무네와 함께 붙잡아 놓는 역할을 함. 그래서 이에야스는 후방의 위험을 없애고 세키가하라에서의 한타싸움에 집중할수 있게 됨.
새가 울지 않는다면 울때까지 기다려라. 일본의 천하를 잡은건 불 같이 살다 불 같이 간 노부나가도 아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바늘장수 출신 히데요시도 아니고 힘 없는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볼모에 인질, 수족으로서 버티며 50년 동안 때를 기다린 다케치요.. 바로 이에야스 였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용맹하고 전쟁의 신 같았던 마쓰다이라 키요야스의 손자로, 그를 높이 평가한 외조부 미즈노 타다마사의 장기적인 안목으로 일본의 평화를 위한 목적만으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아버지는 예민한 성격으로 부하에게 죽임을 당하고 어머니와 생이별하여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볼모로 위험하고 어려운 어린시절을 보냈죠. 운명적인 만남으로 오다 노부나가를 만나 본시 적대적 관계인 배경임에도 일본의 통일을 위해 노부나가를 따랐고 노부나가가 변으로 죽고나서는 그 하인이었던 히데요시에게 까지 머리를 굽혀 일본의 통일을 도운 인물입니다. 조선 출병을 끝까지 만류하고 권력을 잡고 난 후 300년간 일본에는 전쟁이 없었죠.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리자 마자 메이지 유신으로 힘이 세진 일본은 러시아와 전쟁의 승리로 조선을 합병시켜버리고 청나라 까지 침공을 했죠. 토요토미를 숭상하는 탐욕스러운 일본정치인들은 끝내 미국과의 전쟁을 일으켰고 덕분에 힘없는 우리는 광복을 맞이합니다....
関ヶ原(세키가하라) 일본역사에서도 중요한전쟁이죠. 지금도 세키가하라의 흔적이 지명에 남아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난곳에서 서쪽을 세키가하라의 앞글자関를 따서 関西(간사이 관서 오사카,교토,고베가 있는 지방) 동쪽을 関東(간토 관동 도쿄, 요코하마, 치바가 있는 수도권)이라고 하죠.
제가 알기로는 세키가하라 기준으로 관동관서가 나뉘는건 맞는데 세키가하라 전투에 기인된건 아니고, 세키가하라라는 지명자체가 그렇듯이 그지역에 후와관문이라는 검문소 비슷한게 있어서 그때문에 관동관서로 나뉘는걸로 알고있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전에 관동 관서라는 용어가 쓰였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