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7월 20일 서울 장충체육관. WBA 페더급 세계타이틀매치 15R. 13연승(10KO)을 달리던 인기복서 김사왕이 WBA 페더급 챔피언 에우세비오 페드로사를 불러들여 세계 도전에 나섰지만 압도적인 기량 차이로 8라운드에서 무릎을 꿇은 안타까운 경기입니다. 페드로사는 서울에서 9차방어에 성공하게 됩니다.
김사왕과 페드로사의 경기를 43년만에 다시 보게되네요 국민학교 4학년 일요일 오후였던것으로 기억하고 너무 많이 맞아서 금방 끝날것으로 생각했는데 8회에 와서 쓰러지길래 어린마음에도 저 정도면 잘한거라는 생각이 들어던거 같습니다. 쓰러진 김사왕 선수의 신발을 코치들이 벗기던 장면도 생각나고 마침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예전 mbc로고 기억이 납니다 그립네요 저 경기를 보지는 못했고 경기 며칠전부터 김사왕선수를 소개한 영상을 보고 그당시 어린마음에 김사왕 = 천하무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경기당일 친구들과 놀고난뒤 작은 아버지께 경기에 대해 물어보니 졌다고 하셨습니다 순진한 마음에 천하무적이 어떻게 질수가 있지라고 생각한게 기억에 납니다 16:27 저 제스처가 어린 꼬마 눈에는 멋있게 보여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영상으로 다시보니 왠지 가슴이 울컥합니다 영상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매번 잘보고 있습니다..귀한자료 놀라워요...80년대 초 중반 수준미달의 도전자들이 너무 많았던거 같습니다. 솔직히 중량급도 박종팔 백인철 이상호 등도 수준이하였다라고 봅니다. 길거리 스포츠잡지보면 맨날 박종팔 vs 해글러..황충재 vs레너드 이따구 기사만 보였던 기억이...현실을 모르고 우물안에서만 큰소리..막상 좀만 강자랑 붙여 놓으면 힘 한번 못쓰고 어이없는 KO패... 그렇게 줘터지다가 한물 다 간 선수들 데리고 와서 이상한체급에서 겨우 챔피언벨트 따고 아직도 그시절 KO왕이니 하는거 우습네요.. 도전자 중 그나마 자격이 있었던건 이승훈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제 기억에 남습니다.
이 경기 장충체육관 링사이드에서 친구와 봤는데 반갑네요. 그때 내 옆에는 가수 송창식씨가 계셨고, 그때 본 페드로사는 까만 반질반질한 피부에 지방이라곤 적혀 안보이는 진짜 근육만 보이고 키가 상당히 커보이는 선수였고 김사왕이 근처에도 못가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안타까운 경기였죠. 한마디로 처음 시작부터 바디블로 맞고 쓰러질때까지 한번도 혹시나 하는 희망이 안보이는 경기였습니다.
당시 김사왕 선수의 팬으로서 너무 무기력하게 져서 실망을 많이 했었지요. 하지만 오늘 다시 보니 본인 스타일로 최선을 다 한 것 만은 확실하네요. 너무 많이 맞아, 다시 보는 이 순간도 마음이 아픕니다. 나보다 한살 적은 선수가 벌써 고인이 되었다니 더더욱 맘이 아프네요. 영상 감사드립니다.
김사왕 선수 링위에 올라올때 로프를 잡고 덤블링하면서 뛰어넘는 장면이 너무 인상적 이고 가슴속에 남아있어 그 상황이 너무 환상적 이라 지금도 그게 사실인지 했는데 님께서도 그걸 기억하고 계시군요 다시힌번 그 환상적 인 장면을 보고 싶은데 다시 볼수가 없어서 늘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저도 김사왕선수를 제일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당시 국내 수준이 너무 낮았던거 같네요. 인파이터를 정통파로 보고 기교파를 변칙복서라고 불렀던 시각 자체가 잘못된거 같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 페드로사는 변칙복서가 아니라 흠잡을데 없는 테크니션이었네요. 후드웍과 짧고 간결한 펀치가 레전드네요 ㅠㅠ
경기 쭈욱 봤지만 페드로사가 풋웍이 김사왕에 비해서 조금 더 좋았고 ... 김사왕이 펀치를 날릴 기회를 잘 잡지 못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이 나네요 .... 복근 단련이 잘 되어 있다면 웬만큼 명치 맞아도 좀 버티는데 ... 호흡이 엇갈리면 명치 한방에 그냥 훅가는데 좀 그런 경기였던 거 같습니다 ... 당시 한국 복서들의 기량이 세계수준으로 보면 좀 상위권이었는데 김사왕은 페드로사에게 안되더군요 ...기량차이가 극복이 안되던 ...
김사왕 선수의 도전은 최선이자 최악의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만일 그때 도전기회를 놓지고 정말 엄격한 잣대로 성공 가능성을 따진뒤 도전을 허가했다면 국내든 국외든 검증된 강자를 꺾어야 가능했을텐데 당시 붙박이 세계랭커나 비슷한 체급의 국내 강자를 능히 제압할수 있었던건지.. 당연히 이길 상대한테 패한것도 아니고 패배의 충격때매 그다음까지 무너졌단건 조금 납득이..
벌써 그때가 1980년 이었구나!!!! 황현철님의BoxingM - KBM 도 대단합니다..이렇게 귀중한 자료를 다 편집해 주시고요....그때의 김사왕 선수와 생활인으로의 김사왕 선수도 궁금하네요.... 그때는 선수정보를 지금의 인터넷 시대가 아니라 흑백tv에서만 접했으니.....예전 영상 잘봤습니다.... 와 다시보고 있는데 관중들 진짜 많네요...40년전....와 이 많은 영상을 어디서 구하시고 편집도 깔금하게 잘 하셨네요....잘 봤습니다...
제가 초딩6학년때 이경기를 보았읍니다. 김사왕 선수가 무척 재미 있는 동작들을 많이 했는데 이경기에는 그런 동작이 없죠... 아무쪼록 제기억으로는 잽으로로 계속맞고 반격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ko패로 그억했는데 이 동영상을 보디 배에 가격을 받았읍니다. 정말 고맙읍니다.오랜전 기억 들이...하하
ㅠ_ㅠ 이 당시, WBA 협회장이 비리가 너무나 많았... 동양챔피언들이 사실상 해외 랭커들과 게임도 이루지 못한 상태임에도 OPBF(동양태평양)이라는 거대 타이틀로 부풀려 WBA나 WBC 랭킹1,2위라는 부작용(이승순, 김득구, 안래기, 백인철, 안경덕).임에도 ~ 사실상 상위 랭커들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 김득구 선수는 참 안타까운 기억입니다. 이 경기는 맷집좋은 김사왕도 어쩔수 없던.. 매에 장사 없습니다. 리치에 의한 쨉...
해설이 말이냐 방구냐...정신이 혼미하도록 맞아도 체력적으론 문제가 없단다. 흐이구...아버지랑 경기 봤는데 아버지는 이미 3회전 이후부턴 김사왕이 이미 졌다고 하셨고 난 오일룡 해설위원 말믿고 김사왕이 한방으로 페드로사 때려눕힌다고 우겼는데 결국 제대로 한방 맞히기도 못하고 허무하게 맞다 쓰러짐.
이미 본경기에 앞서 두선수 하이라이트만 봤는데도 스피드가 확연히 차이가 나서 게임이 안될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요. 김사왕도 여느 한국선수와 마찬가지로 복싱선수로서의 테크닉 그런 건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그냥 싸움꾼같이 큰거 한방으로 끝내겠다 그런 마인드. 그래도 70~80년대엔 국내서도 돈질로 다른나라 세계챔피언들을 저런식으로 안방으로 불러들여 홈텃새로 많이 세계챔피언 양산을 했던 열정이라도 있었지만..
황현철 해설위원 해설을 너무 정말 잘하시네요~~짱입니다 오일용님. 한보영님. 이철원님. 박병학님 정말 재밌게 해설 하신분들... 고1 80.7 복싱 . 김사왕 선수 애처롭고 측은한 선수...나름 소질은 있었지만... 너무나 높은 페드로사의 성벽 고1때 본 경기 -체육인 한때 복싱광- 지금 보니 테크닉이 많이 부족한 김사왕선수네요
이런 미스매치가 열릴수 있었던것은 당시, 프로스포츠는 권투가 유일했고 이런 대회를 유치하여 돈좀 벌어보려는 프로모터등의 농간질과 스포츠에 관대했던 그당시 군사정권의 합작품이었다. WBC 챔피언 산체스에겐 도전할 엄두가 나질 않고 왠지 만만해 보이는 페드로사에게 도전한 것이었는데 , 미국에서 7만달러 일본에서 스파이더 네모도와의 대전에서 10만달러를 받았던 페드로사를 15만달러나 주고 유치했다. 이때 국내에선 미스유니버스 대회가 열리고 있던중 페드로사는 입국하여 미스파나마와 전화통화를 하고 호텔방에서 포르노잡지나 보고 있으며 김사왕에 대하여 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며 비난 조소한다는 주간지 스포츠동아 기사가 기억이 나는데.. 이 대회를 기화로 무분별한 세계타이틀 국내유치에 대한 규제논의가 있어 해외 도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 헸지만 그것도 잠시뿐이고 실력 안되는 것들을 내세워 외화낭비만 일삼은것이 당시 프로복싱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다. 프로복싱이 인기가 있었던 이당시에도 프로복서로 활동하는 선수가 고작 3~400명이었다. 이런 인적풀에서 무슨 재능 있는 선수가 있었다고 세계 타이틀매치 유치를 그렇게 많이 했는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고 동남아 3류선수에게 승리하면 세계 챔피언도 이길수 있다고 혼동토록 유도한 테레비나 스포츠 신문 같은 상업매체의 부도덕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작전이 맞는 것이어서 무모했다는 점 관중들에게 지나치게 코믹하고 불량스럽게 보였다는 점 그러나 자세와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보면 기본기가 있었습니다 단, 더 세련된 작전과 훈련으로 다듬고 키운 후에 프로 링에 올려야 했습니다 프로로서의 마인드가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 경기 후에 재기하지 못한 것입니다 한국의 타이슨 이기는 방법과 지는 방법을 가르쳐 줄 스승을 만났어야..
김사왕 선수 경기를 보니 새록 새록 옛날이 생각이 납니다 그때 신군부 들어와 대학 휴교 했던 때로 기억 납니다 지금 보아도 아쉬고 안타까운 경기 였어요. 사왕선수 재능이 있는 유망주 였는데 14전 이니까 좀더 경험과 가량 쌓았으면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었는데....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선수별로 이렇게 회장님의 음성으로 소개하고 하면 정말 좋을 것 같네요. tv 에서 했던 그동안의 영상들을 보면 지들 멋대로 자막 계속 넣고 무슨 예능프로그람도 아니고 엄청 짜증났는데 이런 자료가 훨씬 퀄리티도 좋고 전문성에서도 당연히 뛰어나죠. 좋은 자료 여기 런던에서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교1학년때...그전 무슨 국내시합전에 이벤트쇼로 덩치큰선수?와 게임하며 아무리맞아도 끄떡없는 맷집을보여주길래 대단한가 생각했는데... 이후 저시합을 테레비로보았죠...멋진망토에 링을 훌쩍뛰어 멋지게 넘어 환호성은 받았는데... 1라운드부터 쓰러지는 라운드까지 한대도 못때리고 샌드백마냥 두들겨맞기에 맷집이 좋아 곧 반격하겠지하는 기대로 계속봤는데.... 그냥 쓰러지고 끝. 너무 허망한경기라서 아직까지 기억하네요...
이 시합에 에피소드가 몇가지 있죠. 우선 페드로사의 저당시 전적에서 3패가 있었는데 그게 전부 KO 패 였습니다. 그래서 맷집이 약하다고 판단했지만 그 3패는 밴텀급에서 뛰면서 패배한것 이었습니다. 너무 체중을 줄여서 체력이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사왕의 주먹에 걸리면 뻗을거라고 생각했었고 또 페드로사가 1차 계체에서 무려 2키로던가 3키로 가까이 오버 했다고 합니다. 김사왕 측에서 보기에는 다 잡은 고기라고 생각까지 했었지만 국내선수들이 그때까지 잘 몰랐던 '드라이 아웃' 즉, 수분을 섭취하지 않고 사우나에서 수분을 배출하는 방법으로 페드로사는 2 차 계체를 가볍게 통과하고 수분을 섭취해서 거의 2 체급 위의 복서처럼 펄펄 날았다고 합니다.
@@kokokoko-mt6wl 추가설명을 드리자면 페드로사가 했던 방법은 알몸으로 사우나를 하는게 아니고 땀을 배출하는 땀복을 입고 사우나를 했습니다. 1980년 저 당시 대한민국에는 옷을 입고 사우나에서 땀을 빼는건 거의 생소한 일이었습니다. 또 계체 후 하루 정도 지나서 시합을 했기 때문에 발란스 조절에 문제가 없었다는겁니다. ^^
@@user-ke9gq9yc4d 중학시절 매달 펀치라인 사서 보는 재미가 정말 좋앗거든요..김태식선수 프로필엔 좋아하는 복서가 누구냐고 물었을때 김사왕선수라며 이유는 나와 같이 KO왕이니까 하던 기억이 납니다..김태식, 김사왕 두분이 다 원진규철체육관이었죠? 아직 소장하신다니 부럽습니다..ㅎㅎ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한국선수들이나 동양선수들 조금 편을 들어주자면, 아시아권 선수들과 비아시아권 선수들과의 피지컬이 상당히 다릅니다. 똑같은 체급이라 해도 신장이 많이 차이 난다든지 근육이 훨씬 다부지다든지, 리치가 길다든지 하는 피지컬적인 차이가 큽니다. 인종간의 차이라고도 볼수 있는데 힘과 기술력, 체력외에도 기본적인 피지컬적인 차이가 존재하면 아시아권 선수들 비아시아권 선수들과 경쟁하기 굉장히 어렵죠. 더군다나 저때는 남미쪽이 WBA, WBC 쪽을 장악하고 있어서 한국 홈링에서 경기를 해도 남미쪽 선수에게 편파적인 판정을 해주는 경기도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박영균 VS 엘로이 로하스 2차전, 정순현 VS 리카르도 카르도나 1,2차전, 박찬영 VS 다니엘 사라고사, 이승훈 VS 다니엘 사라고사 경기를 들 수 있네요. 또 홈경기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소속기구 WBC, WBA 등 협회에다 상대측보다 더 높은 금액을 입찰해야합니다. 뭐 경기를 홈에서 치뤄서 유리하게 위해서, 인기나 흥행을 위해서 홈링을 추진하는 것이지만 그에 따라서 상당한 거액을 지불해서 상대측보다 더 높은 비용을 써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중남미 사람들과 키는 비슷해도 골격 자체가 다릅다.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은 말 할것도 없고, 정말 대단 한겁니다. "홍 수환웅 왈 비 아시아권(중남비나 미국 선수) 선수한테 한대 맞으면 대미지가 다르데요. 특히 흑인 선수한테는 스치는 주먹도 뻐속까지 울린다"는 얘기를 들은적 있어요 ㅋㅋ
저 시합 전에 이미 로얄고바야시, 헥토르카라스키야, 루빈올리바레스를 3~5차 방어전에서 연속 ko로 이긴 수준급 세계챔피언을 밴텀급시절 알폰소자모라에게 졌다는 이유로 솜방망이 유리턱 약체로 취급하며 프로전적이 13전 밖에 안된 김사왕이 맷집과 펀치력이 좋다는 이유로 100% 이길것처럼 여긴 당시 한국의 정보수준은 진짜 우물안 개구리였네요.
페드로사가 밴텀급으로 뛸때는 저 180센티 정도 되는 키에 중량은 겨우 53 키로를 맞췄어야 했죠. 자모라 에게 패할 당시에는 서 있을 힘 조차 없었다고 하더군요. 그 후에 의사가 '당신 53 키로를 계속 유지하다간 골격 발란스가 무너져서 사망할수도 있다' 라고 했답니다. 결국 밴텀급 보다 4 Kg 무거운 페더급으로 올리면서 일취월장 했죠. 하긴 저 키에 57 키로 맞추는것도 정말 힘들었겠죠 ^^
김사왕의 세계타이틀도전은 한국프로복싱 사상 가장 기량이 떨어진 한국프로복서가 세계타이틀도전에 나선 최악의 세계타이틀매치로 기억되며 세계참피온 페드로사가 4회전 복서 김사왕을 링으로 불러 복싱이란 이런것이다 하며 몸소 체험하게 한 스파링으로 생각할만큼 양선수 기량차이가 그만큼 차이가 많이 났고 김사왕은 1회부터 펀치를 내밀며 의욕적으로 접근했지만 펀치는 페드로사 근처에도 못갔고 김사왕은 줄기차게 맞다가 ko된 경기 김사왕과 김태식은 링이 두개였던 용산 크라운 체육관 쌍두마차였지만 그 당시 스파링이며 연습에 몰두했던것은 김택식이었는데 그 연습한 결과물이 루이스 이바라를 두둘겨 패고 ko승으로 김태식은 13전만에 세계참피온이 되었는데 스파링할때도 2-3체급 위 상위체급과 자주 하여 그 당시에도 김태식의 펀치력이 그만큼 강하다는것을 증명